추억/심인

흙반죽에 안착한 우주공학도

思美 2007. 6. 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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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21 사람이야기

흙반죽에 안착한 우주공학도

우주선을 만드는 것이 꿈이던 공학도 조현권(37)씨는 요즘 경기 여주의 시골에 틀어박혀 흙반죽과 씨름하느라 하루 해가 짧다. 2월4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열릴 첫 개인전인 '조현권 도자조각전' 준비 때문이다.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출신인 그가 ‘엉뚱하게도’ 흙반죽을 주물러 빚어 내는 것은 로켓이나 우주선이 아니라 우리 옛날이야기 속의 단골손님인 익살스런 표정의 호랑이다.

조씨가 늦깎이로 도예의 길에 들어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지난 85년 고향인 대구에서 방위로 근무할 당시 취미삼아 흙으로 인형 등을 빚어 대충 연탄난로에 구워 친구들에게 선물한 것이 한 도예품상의 눈에 띈 것이다. 평소 손재주가 있다는 평을 듣던 그는 상품가치가 있다는 도예품상의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새로운 가능성을 본 그는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도예의 고장인 여주로 올라와 도예공장에 일자리를 구했다. 유약과 가마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려는 의도였다.

그가 그처럼 쉽게 ‘우주선’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있었던 것은 80년대 초의 시대상황과 관계가 있다. ‘우주선’에 대한 꿈은 졸업 뒤 ‘취업’이냐 ‘운동’이냐의 갈림길에서 ‘운동’을 선택하고 공단으로 들어가면서 사실상 정리했기 때문이다. 4개월여 만에 도예공장을 나와 직접 가마를 제작해 1년여 동안 작업에 몰두해오던 그는 젊은 나이에 너무 외곬수가 돼가는 것 같은 생각에 ‘경험 삼아’ 한 통신회사에 취직을 했다. 88년이었다.

전공을 살려 항공사에 들어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거기 들어갔다가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말뚝을 박게 될 것 같아서” 일부러 전공과 직접 관련이 없는 곳을 골랐다. 그리고 취직할 때 마음먹었던 대로 5년 만인 93년 사표를 던지고 여주군 강천면 도전리에 ‘두메공방’이라는 작업장을 마련했다. 그의 여주행에는 누구보다 그를 잘 이해하고 사표를 내기 전부터 그와 함께 공방을 열 터를 구하러 다닌 아내가 큰힘이 됐다.

그가 요즘 몰두하고 있는 것은 흙으로 조각상을 빚어 가마에서 구워내는 ‘도자조각’이라는 생소한 분야다. “우리 옛 초상화를 설명하는 말 가운데 ‘전신’(傳神)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림에 그 그림 속 인물의 인품과 정신까지 드러나는 경지를 말하는 것이지요.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같이 느낄 수 있는 작품,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모두 하나씩 가져갈 만한 그런 작품을 만들어 낸 ‘장인’으로 불리고 싶어요.” ‘우주선’이 자리잡았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그의 새 꿈이다.

여주=김정수 기자

한겨레21 1998년 02월 05일 제1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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