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녹원맨션 뒤편에 "무학산"이라는 뒷동산이 있습니다.
경찰청 북쪽, 황금아파트(골드캐슬)남쪽이 자리한 자그마한 야산이지만 이름은 멋집니다. 학이 춤추는 산 "무학산"
자그마한 옹달샘, 계곡이 있어 구청에서 방생한 고라니, 꿩들도 자라고 있습니다.
이 무학산이 요즘 하얀 꽃들로 한창입니다.
아카시아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었는데 며칠전 돌풍을 동반한 비바람에 많이 떨어졌습니다.
등산로가 하얗게 아카시아 꽃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아카시아 꽃이 질 쯤 찔레꽃이 수줍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꽃보다 향이 먼저 다가오는 꽃입니다.
찔레꽃을 보면 "하얀 찔레꽃"이란 노래 때문인지 마음이 착 가라앉습니다.
오래전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술에 취해 엄말그리워하며 이 노래 흥얼거리는 걸 보고 코끝이 찡했던 기억도 납니다.
예부터, 그래요 지금까지 엄마 아빠 아침에 들일나가시는 길섶엔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있죠.
엄마가 돌아와야 저녁을 먹을텐데 엄말 기다리는 그 순간 배도 고픕니다.
아카시아 꽃도 먹는다지만 아이들에겐 너무 높은 곳에 핀 꽃입니다.
찔레꽃이야말로 아이들 눈높이에 딱 맞는 꽃이죠.
엄말 기다리며 새순을 따 씹어보고도 하고 꽃도 따 머리에 꽂아보기두 하구..
이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찔레꽃을 보면 엄마를 떠올리나 봅니다.
무학산 오르는 길에 핀 찔레꽃
하얀 찔레꽃 너머로 대우트럼프월드가 보입니다.
능인고 뒷길에 아름답게 핀 찔레꽃
찔레꽃 / 이연실
엄마 일 가는 길엔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엄마 혼자서
하얀 팔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2007. 5. 30. 한겨레신문에서.
[곽병찬칼럼] 찔레꽃 향기로 남은 인연 | |
곽병찬 칼럼 | |
곽병찬 기자 | |
앞서 세상을 떠난 이오덕은 그를 잊을 수 없어 당신의 무덤가에 그의 시비를 세우도록 했고, 권정생은 그가 떠나자 한동안 사람도 원고지도 마주하지 않았다. 이오덕은 그의 작품과 삶을 세상에 알리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삼았고, 권정생은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제가 여태껏 살아올 수 있었을까요”라고 고백하곤 했다. 둘은 서로에게 살아가는 이유였다. 이오덕이 안동 일직면 조탑리로 권정생을 찾아간 것은 1972년 가을. 환상과 허구로 도배질한 동화들 틈에서,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삶의 진실을 건져낸 동화 <강아지똥>을 읽은 뒤였다. 시골교회 종지기였던 지은이는 결핵이 골수에 스며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했다. 이오덕은 그에게서 ‘우리 동화의 희망’을 발견했고, 권정생은 그에게서 진실로 믿고 의지할 사람을 찾았다. “바람처럼 오셨다가 많은 가르침 주시고 가셨습니다. 일평생 처음으로 선생님 앞에서 마음 놓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 선생님을 알게 돼 이젠 외롭지 않습니다.”(권정생) “산허리 살구꽃 봉오리가 발갛게 부풀어 올라,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걸 보고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괴로울 때마다 선생님을 생각해봅니다.”(이오덕) 이후 이오덕은 그의 작품을 알리고 그를 지키고자 서울로 대구로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다. 당시만 해도 원고료를 주는 출판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워낙 제가 무능해 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저 용서를 바랍니다.” “우편환으로 7천환을 부쳐드립니다. 급한 대로 양식과 연탄 같은 것을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 더 보내주시면, 상경하는 길에 어느 잡지에나 실리도록 하겠다”고 욕심을 내곤 했다. 이오덕 덕분에 권정생은 창작에 몰두했다. 전신결핵으로 하루를 버티는 것도 기적만 같았던 그였다. “누워 있지도, 앉아 있지도 서 있지도 못하는 상태가 16일간 계속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른다던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몽실언니> 등을 썼다. “이틀간 가까스로 원고지 20장을 썼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비참해서 쓰기가 고통스럽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이오덕은 “사람 같지 않게 살아가는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진다”며 자책하곤 했다. 3년 전 이오덕은 떠났다. 권정생을 두고 떠나는 게 못내 걱정됐던지 이런 유언을 했다. “괴로운 일, 슬픈 일들이 많아도 하늘 보고 살아갑시다. 부디 살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담에 때가 되면 선생님이 걸어가신 그 산길 모퉁이로 돌아가서 거기서 다시 만나 뵙겠다”고 답했던 권정생. 그도 엊그제 이승의 모퉁이를 돌아섰다. 권 선생의 유골이 뿌려진 조탑리 빌뱅이 언덕, 이 선생의 무덤이 있는 충주 무너리 마을 어디에도, 이제 두 분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살구꽃은 지고 없다. 대신 그 산모퉁이 숲 그늘에, 찔레꽃이 한창일 것이다. 가난한 아이를 닮은 꽃, 포근한 향기로 그 아픔을 위로하던 꽃. 사랑과 헌신, 눈물과 감동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두 분은 찔레꽃 향기로 남았다. 우리는 언제 다시 그런 인연을 볼 수 있을까. chankb@hani.co.kr |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의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에 그려진 찔레꽃.
양지바른 뜨락 큼직한 괴석 곁에 찔레꽃 향기로운 날, 나비며 벌들 꽃 찾아 분주한데, 어진 암탉이 병아리 떼를 돌본다. 어머니 사랑이
야 금수인들 다를 건가? 자애로운 어미 닭의 눈빛이 또로록 구르는가 했더니 어느 샌가 부리 끝에 벌 한 마리를 꼭 물었다. 동그마니
모여든 병아리는 모두 여섯, 하나같이 예쁜 새끼들이 주둥이를 꼭 다문 채 모이 노느이길 기다리고 섰다. 병아리 몸은 어미 닭의 십분
의 일도 못 되지만 눈망울들은 아주 커서 또랑또랑하니 마치 사람의 어미와 자식인 양하다. 정약용은 같은 화가의 다른 닭 그림을 보
고 이런 시를 지었다. "어미 닭은 낱알을 찾고도 쪼는 척만 하고 있어 새끼 사랑 한 맘으로 배고픔을 참아내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그림'중에서-
찔레꽃 화사한 봄날 꿀찾아 찔레꽃에 모여든 벌, 나비들. 그 중 한마리 벌을 어미닭이 잡았다. 이 벌을 병아리에게 나눠주는 아름다운 광경을 이리도 멋지게 그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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