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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있는 대구도심] 음악감상의 역사는? | |
민중들은 민요나 잡가 등으로 생활에서 나오는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광대나 기생 등 공연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이 부른 잡가는 지역에 따라 노래 풍이 달라 서도소리, 남도소리 등으로 나누기도 했다. 판소리는 18세기에 나타나 민중들에게 널리 사랑받았지만 19세기 들어서는 양반들은 물론 궁중에서도 즐겼다. 민중음악은 근대음악과 서양음악이 자리를 잡은 1920년대까지도 사람들의 곁을 떠나지 않아 판소리나 잡가를 실은 유성기 음반도 많이 제작됐다. 근대화 이후 도입된 서양음악은 음악 감상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홈을 새겨 놓은 음반을 돌려 소리를 듣는 유성기는 “어떻게 그 작은 기계 속에 사람이 들어앉을 수 있느냐”는 신기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유성기는 1890년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대한제국이 1899년 처음으로 유성기 시청회를 열어 노래와 피리, 거문고 등의 소리를 들려줬으며 1907년에는 첫 음반이 제작됐다. 1920년대에는 이른바 유행가가 등장했다. 독자적으로 불리지 못하고 연극무대의 막간이나 활동사진 반주음악, 주제가 등으로 시작했지만 인기는 대단했다. 지금까지 불리고 있는 ‘황성옛터’와 영화 ‘아리랑’을 히트시킨 배경이 된 주제가 ‘아리랑’ 등이 대표적이다. 1935년에는 대구의 영화관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인들이 처음 생겼다. 바이올린, 플루트, 북 등을 연주하던 이들은 최초의 악우회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 |
기사 작성일 : 2010년 02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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