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의 머리를 벴더니 흰 젖이 솟아나 한 길이나 되었다.'
삼국유사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에도 똑같이 나오는 구절이다. 유교적 합리주의자인 김부식조차 삼국사기에서 이차돈의 순교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신라인이라면 누구나 이차돈의 순교에서 일
어난 이적(異蹟)을 진실로 믿었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인 설화적 내용이지만 집단이 함께 꿈꾸고 믿으면 진실이 된다. 신라 불교는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가장 어렵게 공인됐지만 우리나라 불교의 원류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바로 이야기의 힘, 이야기를 믿는 집단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대구에는 이야기가 많다
고대 대구의 중심지는 달성공원 일대였다. 달성에 토성을 쌓을 정도로 발전했던 이들은 정치적`사회적 이유로 점차 중심지를 현재의 도심 쪽으로 옮겨왔다. 신라와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자 대구는 교통 요충지로 급부상했고 경상감사가 머무는 본영이 됐다. 17세기에는 돌로 쌓은 성과 함께 도시의 체제도 견고해졌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대구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조선 때 서울과 평양, 근대화 이후 서울과 부산에 이어 세 번째 도시로서의 면모를 유지한 데는 수천년 동안 쌓인 대구의 역사가 바탕이 됐다.
최근에는 대구 곳곳에서 역사시대 이전의 유물들이 심심찮게 발견되고,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는 현장마다 역사시대 이후의 유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도시로 성장하기 이전부터 숱한 이야기들이 대구 곳곳에 쌓여 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세월이 덮어온 황토먼지의 두터운 층을 한꺼풀만 벗기면 찾아낼 수 있는 대구의 이야기가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뿐인가. 지금까지 숨 쉬는 생생한 이야기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손만 뻗으면 만날 수 있는 대구 사람들의 기억 속에, 원형을 고스란히 보존한 대구 도심 구석구석에, 시작했다 하면 숨도 크게 쉬지 못할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대구에는 이야기가 없다
지난해 7월 ‘스토리가 있는 대구 도심’ 시리즈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감이 넘쳤다. 2008년 10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7개월에 걸쳐 ‘대구도심재창조’ 시리즈를 연재하며 대구 도심 곳곳을 취재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소재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대구 도심 스토리를 중심으로 시리즈 계획을 세우고 석 달을 준비 기간으로 잡았다. 7월 7일 본지 창간 기념일에 맞춰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도심 전체를 가운데에서부터 시계 방향의 달팽이 모양으로 구획한 뒤 가운데인 종로와 진골목부터 취재에 들어갔다. 만날 수 있는 주민들은 최대한 만나 그들의 기억을 더듬었다. 관련 자료들을 최대한 그러모았음은 물론이다. 시리즈가 시작되자 고맙게도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옛 자료나 책자를 보내준 독자도 여러 분 있었다. 자료 검토와 현장 답사, 주민 인터뷰가 병행됐고 전문가들의 도움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취재가 계속되면서 자신감은 자꾸만 떨어져갔다. 자료와 현장, 증언을 온전한 삼각구도로 만들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료에 나오는 현장은 제대로 보존돼 있지 않고, 현장을 기억하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고, 증언을 입증할 자료는 구할 수 없는 불균형을 피할 길이 없었다.
일부 연구자들이 정성을 쏟은 작업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도심 전체로 놓고 보면 지나치게 광범위하거나 단편적인 내용들이었다. 대구시 차원에서 자료를 집대성하고, 현장을 보존하고,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 특히 심각했다. 문화의 시대, 감성의 시대에 아직도 산업공단을 만들고, 기업을 유치하고, 도시를 부수고 짓는 데만 몰두하는 대구시의 개발시대적 발상이 대구를 이야기 없는 도시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이야기가 흐르는 대구로
시리즈 연재 도중 대학에서 도심 스토리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다. “대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라는 첫 질문부터 “대구 도심 1천 개의 골목에 수천 개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마지막 결론까지 3시간 가까이 계속하는 동안 손을 들고 자신이 아는 대구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대구시민 열에 아홉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쇠퇴하는 도시,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도시라는 부정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이 사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을 잃은 지 오래다.
벨기에 브뤼셀 관광의 대명사인 ‘오줌싸개 소년’ 동상은 자체로는 볼품없지만 브뤼셀 시민들의 사랑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벨기에를 방문하는 외국의 국가 원수들이 이 동상에 입힐 옷을 가져오는 관례까지 생긴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시민들의 사랑에는 바로 스토리가 깔려 있다. 전쟁으로 불타는 마을에서 불을 끄기 위해 오줌을 눴다는 이야기, 브뤼셀을 포위한 적군을 향해 유유히 오줌을 눴다는 이야기, 폭설 속에 죽어 가는 아버지를 찾아 오줌의 온기로 살려냈다는 이야기 등이다. 평화와 사랑이 담긴 스토리는 브뤼셀 시민들의 소망을 담은 집단의식을 형성했고, 이는 곧 자신들이 사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의 상징이 됐다.
대구의 스토리를 찾아내고 시민들에게 퍼뜨려 도시 전체에 흐르도록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행히 도심의 더딘 재개발이 대구 스토리의 경쟁력을 높여 주는 호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료를 모으고, 현장을 정비하고, 사람들의 기억을 기록해 시민들의 꿈과 소망을 담으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대구만의 이야기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놓쳐버린 경제`산업 3대 도시의 허상을 깨고 서울과 평양 못지않은 한반도 문화`감성 3대 도시로 도약하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스토리는 그 길로 가는 출입증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사진 ·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