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유적·문화 답사로 보는 '대구의풍경'

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헐티재 넘는 길' -2011/05/16-

思美 2011. 7. 1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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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헐티재 넘는 길'
역사유적과 문화유산 답사로 보는 '대구의 풍경'(24)
정만진 (daeguedu) 기자

 

▲ 헐티재 가는 길 헐티재 가는 길은 물을 따라 흐른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고, 길은 그 물을 따라 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 흐르니, 이 또한 얼마나 멋진 아름다움인가.
ⓒ 정만진
 

2007년 8월 10일, 지금은 국토해양부로 명칭이 바뀐 건설교통부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을 발표했다. 남해의 삼천포대교, 서울의 덕수궁 돌담길,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 하동의 쌍계사 벚꽃길, 부산의 광안대로, 문경의 새재 과거길 등이 바로 그것이다.
 
대구에서는 동대구역에서 수성못까지의 도로가 '젊음과 도약의 동대구로'라는 부제를 달고 거기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대구 인근에서는 경북으로 분류된 '팔공산 한티재 고갯길'도 100선에 뽑히는 명예를 누렸다.
 
하지만 국토해양부 홈페이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올려져 있는 사진들로 미루어볼 때, 동대구로와 한티재 고갯길은 다른 대도시와 광역지자체들이 자랑하는 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심지어 동대구로는 '대구의 길도 한 곳은 넣어주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지역할당(?) 때문에 거기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겨졌다.
 
대구에 사는 사람으로서 차마 말하기 민망한 일이지만, 영남일보사 앞의 히말라야시다 가로수 군집이 그런 대로 눈여겨볼 만할 뿐, 그 외는 주로 식당들로 채워진 동대구로가 한국 100곳의 아름다운 길 중 한 곳이라는 것은 정말 어불성설이다. 만약 동대구로를 걸어본 외국인이라면, 그는 덕수궁 돌담길 등에 대해서도 '가볼 가치가 없는 곳'이라고 지레짐작을 할지도 모른다.
 
건설교통부의 100선에 동대구로를 넣은 선정위원들은 아마도  대구의 지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을 것 같다. 혹 건설교통부가 대구시의 신청을 받아 그리 선정했다면, 심미안이 부족한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이 낳은 오류로 지적받아 마땅하다. 대구에는 동대구로와 한티재보다 훨씬 아름답고, 고즈넉한 역사도 깃든 길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동대구로는 좌우가 고층 상가로 가로막힌 대도로에 불과하니 더 이상 재론할 가치도 없다. 한티재 고갯길 또한 한쪽은 산비탈에 막히고 다른 한쪽은 나무에 막혀 아무런 풍광도 볼 수가 없는 데다, 거듭되는 급경사에 급회전을 반복해야 하는 사정상 길손의 마음은 줄곧 불편하다. 길을 따라 소리내며 흐르는 계곡물도 없어 별 정취를 느낄 수도 없다.
 

▲ 가창댐 대구 수성구 파동에서 헐티재를 넘어가는 멋진 드라이브 길의 관문
ⓒ 정만진
 

그러나 이 길은 다르다. 아마도 이 길이라면 외지인들과 외국인들도 "뷰티풀!"을 연발할 것이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에서 경북 청도군 각북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흔히 '헐티재'라 부른다.
 
헐티재 가는 길은 가창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대구시 수성구의 끝인 파동과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곳이 바로 달성군 가창면 소재지인데, 거기서 불과 300미터 정도만 더 나아가면 곧장 우회전하여 가창댐 아래로 들어갈 수 있다. 상수원이기 때문에 지저분한 찌꺼기나 탁한 빛깔이 있을 수 없는 가창댐 시원한 물바다를 가슴으로 느끼며 길은 시작된다.
 
길은 헐티재 정상에 오를 때까지 줄곧 푸르게 흐르는 계곡 물과 나란히 이어진다. 길과 물이 방향만 같을 뿐 가운데에 논밭을 두고 떨어져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다정한 정인들이 두 손을 맞잡고 걷는 듯 둘은 살을 맞대고 누워 있다.
 
1차선 도로인 이 길은 양옆으로 울창한 가로수들과 백화만발한 꽃들로 한결같이 단장이 되어 있어 작고 말끔한 아이와 나란히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헐티재 정상 바로 밑에 가면 그래도 제법 가파르지만, 길이 전반적으로 평탄할 뿐더러 굽은 곳도 그 선이 유연하여 길손의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준다.
 
이 길은 처음에는 도로가 왼쪽, 수로가 오른쪽에 있지만, 중간쯤 가면 둘은 서로 돌아눕는다. 길과 물이 그렇게 교차되는 지점 바로 턱밑에 대구미술광장이 있다. 대구미술협회가 폐교를 빌려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곳이다. 길에 바로 붙어 있어 뜰의 조각들이 폐교 안에 들어가지 않고도 훤하게 다 보인다. 교사(校舍) 안은 작가들의 작업 공간과 상설 전시장으로 꾸며져 있다. 그림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이곳으로 가라.
 

 

 

 

 

▲ 두 곳의 미술관 대구미술광장(왼쪽)과 동재미술관(오른쪽). 동재미술관은 가창댐 끝부분에 있고, 대구미술광장은 한참 더 들어가 조길방가옥 진입로 입구에 있다.
ⓒ 정만진
 
이 길에는 미술관이 한 곳 더 있다. 대구에서 출발하여 이 길을 들어서면 곧장 가창댐을 타고 왼쪽으로 돌아드는데, 그 넓은 호수 끝자락에 동재미술관이 있다. 야생화 농원이 있는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헐티재로 가고, 우회전하면 마을 입구에 동재미술관이 나타난다. 길손은 동재미술관 상설 전시장에서 그림으로 눈을 즐겁게 할 수도 있고, 겸비되어 있는 카페에서 차 한 잔의 여유와 허허로운 시장기를 해결하는 포만감도 맛볼 수 있다.
  

 

 

 

 

▲ 대구와 경북의 경계 헐티재 정상은 대구와 경북의 경계 지점이다. 탐스러운 '감'이 여기부터 청도군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말해준다.
ⓒ 정만진
 
이윽고 헐티재 정상에 닿는다. 여기서부터는 대구광역시가 아니라 경상북도이다. 경상북도 중에서도 청도군이다. 그것은 대뜸 알 수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 경계에 "씨 없는 감 청도 반시"라고 새겨진 조형물이 버티고 있고, 그 안에 커다란 감이 하나 당당하게 얹혀 있으니 '여기부터 청도구나' 하는 실감이 '팍' 소리를 내며 다가오기 때문이다.
 
청도는 '씨 없는 감'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따라서 청도의 감은 먹기에 아주 편리하다. 그것이 바로 전국적으로 이 고장의 감이 유명해진 까닭이다. 그런데 신이한 일은 이곳의 감나무를 다른 지방에 옮겨심으면 씨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 용천사 최고의 생수가 샘솟는다고 해서 절의 이름이 '용천사'가 되었다. 용천을 보호하고 있는 비각(사진 좌상)과 이 절의 부도군(좌하). 물이 좋은 이 용천사는 그래서 마당의 물을 긷고 가두어두는 장치도 여느 절보다 각별하다(사진 우).
ⓒ 정만진
 

헐티재를 넘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역사유적들이 길손을 기다린다. 동대구로와 한티재가 아무런 역사유적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과는 다르다. 물론 한티재도 본길을 벗어나 샛길로 들어서면 가산산성과 천주교 순교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직진을 포기했을 때의 일이다. 헐티재의 역사유적인 용천사와 봉기리3층석탑은 도로에 바로 붙어 있으니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용천사(湧泉寺)는 670년(문무왕 10)에 의상법사가 창건한 절이다. 이 절의 본래 이름은 옥천사(玉泉寺)였다. 용천사의 용(湧)도 '샘솟을 용'이고, 옥천사라는 본명에도 옥(玉)이 쓰인 것만 보아도 절 안의 약수가 얼마나 효험이 있는지는 바로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용천사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물건'이 하나가 있으니, 바로 샘[湧泉]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비각이다.  
 
또 이 절은 1267년(고려 원종 8)에 <삼국유사>의 일연스님이 중창을 한 유래를 지녔다. 한때 승려가 1천여 명이 되었고, 주변에 암자가 47개나 있었다는 용천사에 들러 약수 한잔을 들이키고, 절 뒤의 부도군을 잠시 둘러보는 것도 이 길의 맛깔스러운 재미이다.
 
▲ '보물' 봉기동 석탑 이 탑이 길의 끝이다.
ⓒ 정만진
 
이 길의 끝은 봉기리3층석탑이다. 보물 제113호인 이 탑은 용천사를 떠나 각북면 소재지를 지난 후 직선 도로를 잠시 나아갔을 때 도로에 붙은 잔디밭 복판에 서 있다. 절은 없어졌고, 탑도 쌍탑이던 것이 하나만 외로이 남았는데, 석가탑을 빼어닮은 그 자태가 아름다우면서도 장중하여 홀로 서 있는 것이 진정 의아할 지경이다.
 
게다가 이 탑에는 상당한 역사가 깃들어 있어 더욱 길손을 마음을 붙잡는다. 본래 이곳의 절에 신라 법흥왕이 전란을 피해 잠시 몽진해 있었는데, 왕은 체류하는 동안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자 그를 기려 절에 정전사(停戰寺)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정전사! 참으로 특이한 사찰 이름이다. 이제 되돌아 가려고 하는 절터에서 정전사라는 절 이름을 들으니, 대구를 출발하여 약 30km에 이르렀던 헐티재 길의 심상(心像)만큼이나 마음에는 평화가 깃든다. 어디에서 또 다시 이렇게 참신한 절 이름을 들어볼 수 있으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은 '길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면서 인간의 생활 환경을 변화시키고 문화 창조의 기반이 되어 왔다.'고 말한다. '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헐티재 길을 오가며 지루한 일상에 변화의 기운을 불어넣어줄 청정 산소를 한껏 들이켜보는 이 상쾌함을 국토해양부에 추천하고 싶다.
 
헐티재 넘는 길의 '옥의 티'

 

▲ 옥의티 어지럽게 나붙은 현수막들은 교통사고의 위험까지 초래할 것이다. 게다가 맞춤법도 틀렸다.
ⓒ 정만진
 

 

헐티재 넘는 길은 정말 아름답다. 그러나 이 길에도 옥의 티는 있다. 헐티재 정상에서 청도군으로 넘어가는 곳곳에 어지럽게 붙어 있는 현수막들이다. 불법 현수막들! 위의 사진은 그 중 하나. '밀양, 창녕 막는 철탑 청도인듯 못 막겠냐!' 그런데 맞춤법까지 틀렸다. '청도인들'이나 '청도라고'로 해야 할 것을 '청도인듯'으로 썼다.

 

헐티재 길에는 천연기념물 나무도 있다

 

▲ 천연기념물 나무 헐티재 넘어 식당가가 끝나는 지점 쯤의 오른쪽 개울 둑에 있다.
ⓒ 정만진
 

보통의 버드나무와는 달리 청도 덕촌리의 이 왕버들에는 가지와 입자루에 털이 있다. 그래서 천연기념물로 지정을 받았다.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4.9m인 이 천연기념물 나무는 용천사에서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의 도로변 개울에 있다. 

 

 

헐티재 정상이나 용천사에서 비슬산으로 등산

 

▲ 비슬산 용천사 옆에는 비슬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있다. 그리고 헐티재 정상에도 비슬산으로 직행하는 등산로가 있다. 달성군 유가면까지 가지 않고 이곳에서도 비슬산 정상과 대견사지에 닿을 수 있으니 얼마나 멋진가!
ⓒ 정만진
 

국가 지정 중요민속자료 '조길방 가옥'
 
▲ 조길방 가옥 대구미술관 뒤에 난 길로 들어가면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인 조길방가옥에 닿는다.
ⓒ 정만진
 

덧붙이는 글 | 지금까지 이어쓴 "역사유적과 문화유산 답사로 보는 '대구의 풍경'"은 시대순 일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시대순에 따라 현장을 답사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일반인들이 한 곳을 방문하면 시대 구분 없이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대구의 역사유적과 문화유산을 지역별로 살펴볼까 합니다. '길'을 따라가면서 보려는 것입니다. 이번 글이 '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제재로 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2011.05.16 10:25 ⓒ 201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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