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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석산꽃
[중앙일보] 입력 2011.09.01 00:23 / 수정 2011.09.01 00:23
석산 Lycoris radiata
석산꽃 - 박형준(1966~ )한몸 속에서 피어도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해
무덤가에 군락을 이룬다
당신이 죽고 난 뒤
핏줄이 푸른 이유를 알 것 같다
초가을
당신의 무덤가에 석산꽃이 가득 피어 있다
―나는 핏줄처럼
당신의 몸에서 나온 잎사귀
죽어서도 당신은
붉디 붉은 잇몸으로 나를 먹여 살린다
석산꽃 하염없이 꺾는다
꽃다발을 만들어주려고
꽃이 된 당신을 만나려고
상사화처럼 석산도 잎 없이 훌쩍 올라온 꽃대궁 끝에서 꽃을 피운다. 우리말로는 ‘꽃무릇’이라고 부른다. 붉은 꽃잎 사이로 삐죽이 뻗어 나온 꽃술이 아슬아슬하다. 아무 기별도 없던 꽃무릇은 가을 내음 풍겨오면 순식간에 50㎝까지 꽃대궁을 키운다. 그 끝에 피어난 꽃은 화려하지만 여느 꽃보다 서글프다. 잎사귀가 없어서다. 꽃 져야 올라올 잎은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눈보라 맞으며 긴 겨울을 나야 한다. 꽃을 만나지 못해도 핏줄이 하나인 이유다. 지금 땅속에서 꿈틀거릴 잎새의 장한 아우성이 고맙다.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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