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중구청에서 운영하는 골목투어라는게 있습니다..
골목이 간직한 재미 있는 이야기를 통해
살아있는 삶의 흔적과 숨어있는 역사이야기를 알아보자..
라는 취지인 것 같습니다...
얼마전 1박2일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이 다녀가서
잠시 유명세를 띠기도 했는데 대구시 중구청에서
매월 2,4주 토요일에 문화해설사와 같이 골목을 탐방하고 있습니다..
1,2월달은 추운 날씨관계로 하지않고 3월달 부터 재개 한다고 합니다..
저는 3,1만세운동깋 --> 선교사주택 --> 계산성당 -->
이상화,서상돈 고택 --> 대구제일교회 --> 약령시문화관 -->
진 골목 (정소아과) --> 화교소학교 코스로 탐방을 했습니다..
중구청에서 하는 코스와 동일하긴한데 순서는
그냥 제 마음대로 정했고 대충 2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입니다...
먼저 3.1 만세운동길에서 출발을 합니다..
대구의 3.1운동은 일본 경찰의 감시가 워낙 심해
3월 1일보다 7일 늦은 3월 8일 오후 2시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당시 서문시장에서 모인 학생과 일반 주민 등 800명이
이 길을 거쳐 대구 도심으로 진출하면서
3.1만세운동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처음에 이길을 잘 못 찾는 사람이 있는데
대구동산병원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길 시작부분에 이렇게 현판이 있고...
벽에 삼일절노래가 새겨져 있습니다..
옆면에는 독립선언문과 민족대표 33인을 새겨 놓았습니다..
길따라 쭉 올라가면 좌우로 선교사 주택이 있는데
좀있다 보기로 하고 90계단을 먼저 봅니다..
1박2일에 나왔던 장소 입니다..
선조들이 만세를 부르면서 독립을 외치며
지나 갔던 바로 그 길입니다...
벽에는 그 당시의 사진들이 액자처럼
전시되어 있습니다...
좌측위에서 시계방향으로
계산성당,성당옆 빨래터,서문시장모습입니다..
지금의 신명여고 전신인 신명학교 모습입니다..
3.1만세운동길인 90계단에서 본 계산동성당입니다...
바로 길 건너편에 있습니다...
잠시후에 가보기로 합니다....
90계단을 다 내려와서 다시 올려다 봅니다..
혼자 올라가는 저 여자분은 왜
계단을 밟지않고 그냥 경사면을 밟고 올라가는지...
암튼 다시 90계단을 올라와서 3.1만세운동길 좌우에 있는
선교사 주택을 찾아봅니다...
1910년대 우리나라,대구에 와서 기독교 선교를 한
선교사들이 지은 집인데 대구 유형문화재 24,25,2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의료선교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3채의 선교사 주택 중 제일 왼쪽에 있는
스위츠(Switzer Martha C)가 살았던 집으로
대구 유형문화재 24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스위츠는 독신여성으로 교육선교활동을 하다가
49세이던 1929년에 대구에서 순직했다고 합니다..
스위츠가 살던 이집은 현재 선교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안내에 있는 시간대에 가면 내부를 관람 할 수 있습니다..
스위츠 주택 안에 들어가면
1910년대 대구 사진들과 의료활동,기독교와 관련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스위츠 주택 옆에 있는 대구 유형문화재 35호 선교사 챔니스 주택입니다
역시 1910년대 지어진 서양식 2층 주택입니다..
1박2일엔 이집만 나왔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의료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항상 문이 잠겨 있는 것 같은데 스위츠 주택에 상주하시는
관리자 분께 말씀하시면 문을 열어 드립니다..
챔니스 주택 내부에는 그 당시에 사용하던
의료기기들과 그 당시에 진료소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사용하던 마취기구입니다
의료 기구들과같이 챔니스주택 거실에 있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피아노라고 합니다..
의료선교사 존슨의 가족이 사용하던 피아노인데
부산에서 대구 화원까지는 배로 화원에서 이 곳까지는
가마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안과진료도구입니다...
수술에 필요한 도구들....
X-RAY촬영기입니다....
인공호흡기도 있네요...
챔니스주택 2층입니다...
드라마촬영도 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동산병원 원장으로 재직했던 마포화열이란 분이
숙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1948년에 우리나라에 왔다고 하는데.....
이분 아직 생존해 있다고 합니다...
미국이름이 하워드 마팻인데
그냥 우리식으로 마포화열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마포화열 원장 재직시에 사용하던 텔레비젼과 침대...
대구유형문화재 26호인 선교사 블래어주택입니다..
챔니스 주택 옆에 있습니다..
현재는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블래어 주택 1층에 전시되어 있는 것 들입니다...
책가방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저런 가방 들고 다닐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걸 실감합니다...
블래어 주택 1층이 교육박물관이고
2층은 역사박물관으로 꾸며져있습니다..
아래 전시물 옆에 버튼이 있는데 누르면
설명과함께 만세운동 하던 경로가 보입니다..
3.1만세운동 당시의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의 혼인증서입니다..
당시에 상류층 집안인 모양입니다..
선교사 주택을 나와 주변을 둘러봅니다..
예전 동산병원의 현관부분만 보존을 해 놓았네요..
1박2일에서 강호동이 이야기 한대로
여기엔 웬만하면 100년 된 것들입니다..
보존하고 있는 구 현관도 1899년에
지어진 것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밑에 있는 사진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100년전에 이렇게 병원을 시작했답니다...
미국약방....
구 현관 옆에 있는 동무생각 노래비입니다...
사진에 설명이 다 되어 있습니다....
선교사 주택 주변에 있는 은혜정원..
구한말..우리나라가 아직 발전하지 못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못 살던 시기에
우리나라에 와서 많은 도움을 줬던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비록 선교를 위해서 왔다고는 하지만...
종교를 떠나서 우리 선조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신 분들입니다..
근 100년이 지났지만 이런 사람들의 봉사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그런 공간인 듯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주택 주변에 있는
사과나무와 종탑....역시 100년....
설명은 사진으로 확인 바랍니다...
선교사 주택 주변에 있는 제일교회입니다..
설명에 제일교회도 100년 된 거라고 하는데
너무 현대적 건물입니다...
알고보니 원 제일교회는 따로 있고 여기는
새로 지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상징적인 의미는 있는 것 같습니다...
웅장한 걸로.....
제일교회에서 보이는 큰길 건너편에 있는 계산성당입니다...
계산성당은 고종 23년에 프랑스와의 조약을 계기로
포교를 위해 한식목조로 십자형 성당을 건축했다가
1918년 현재의 모습으로 건축한
영남지방 최초의 고딕양식 건축물이라고 설명서에 나와 있습니다..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계산성당에 있는 이인성 감나무입니다...
설명은 아래 사진에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인성화백의 계산동성당..이란 그림입니다..
성당 내부를 들어가 봅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인 성당답게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두분이 기도를 하고있네요...
방해가 안되었는지 걱정이 되기도합니다..
전면에 있는 스태인드글라스가 아름답습니다...
성당 주 출입구입니다....
보통때는 출입이 안되고 옆문으로 출입합니다..
출입문위에 있는건 파이프오르간 같습니다...
양쪽 벽에 있는 스태인드글라스입니다...
평상시에 출입할 수 있는 옆문입니다...
문위에 동그란 스태인드글라스도 이쁩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이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말라 옷자릭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넘어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
간 밤 자정이 넘어 나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작은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지지마라 맨드레미들 마을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잦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움 푸른 설음이 어울어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로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접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李相和) 시집에서....
계산성당 바로 옆에는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이 있습니다..
성당에서 이상화 고택 가는 길 보도블럭에는
시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시의
첫 소절과 마지막 소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상화 시인의 고택입니다...
고택 내부에는 시인의 시비가 2개 서 있습니다..
나머지 한개는 이상화 시인에 대한 것입니다...
마루에는 시인의 동상도 있고
방안에는 시인이 쓰던 책상도 있습니다..
이상화 고택을 둘러보고 나오니 벽에 이런게 붙어 있습니다...
이 벽을 이야기 하는것 같습니다..
고택 문앞에 도착하면 갑자기 스피커에서
시가 흘러나옵니다...
이 장치 때문이랍니다..
이상화 고택 바로 앞에있는
일제시대에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선생의 고택이 있습니다..
이쪽이 원래 출입구인데...
지금은 문 바로앞에 아파트가 있어서 출입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이상화고택과는 달리 여기는 문을 다 닫아놓아서
안을 볼수는 없습니다..
이상화,서상돈 고택을 나와서
5분정도 걸어가면 있는 대구제일교회입니다...
대구유형문화재 30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1898년 기와집 4동을 구입해서 교회당으로 사용하면서
경북지방 최초의 교회인 남성정교회가 창립된 곳입니다..
1933년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개축하면서 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제일교회 바로 옆에는 약령문화관이 있습니다...
제일교회,약령문화관이 있는 길을 약전골목이라고 부르는데
약령시가 서는 거리를 말합니다..
매년 5월초에 이거리에서 대구한방약령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아래는 약령문화관의 입구역할을 하는 약령문입니다..
약전골목길에서 약간(한5미터정도??) 벗어난 길에 있는
진골목길입니다..
진=긴의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그러므로 풀이하면 긴골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사실은 길지않고 짧은 골목길입니다..
근데 골목이 지닌 내력은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05년 대구읍성 지도에도 골목이 표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시기에 대구의 부자들이 여기 살았다고 합니다..
대구 중구청에서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골목길 벽에 이런 것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골목길을 쭉 따라 걸어가다보면...
진골목육계장이라는 식당도 나옵니다..
이집 육계장과 더불어 육국수라는 메뉴가 아주 맛있습니다..
사진이 있는줄 알았는데 밥만 먹고 사진은 안찍은 모양입니다..
사진이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골목길을 쭉 가면 정소아과의원이 나옵니다..
1박2일에도 나온 대구최초의 2층 양옥집입니다..
진골목길 근처에 있는 화교소학교입니다..
화교학교답게 장개석 흉상이 있습니다...
학교안에 중화상회라는 건물도 있습니다...
대구 골목투어....
골목투어를 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대충 설명도 하는데 거의 1주일 이상이 걸렸습니다..
뒷쪽으로 갈 수록 정리하는 것도 힘들고 해서
그냥 대충대충 하게 됩니다..
혹시 골목투어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직접 한번 탐방해 보는 것을 권해 봅니다..
2시간 정도를 투자하면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골목길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을겁니다..
골목투어를 하면서 짧은 지식으로 인해
대량의 사진만 올린려서 스크롤 압박이 심할텐데
여기까지 보느라고 수고했습니다..
이상 골목투어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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