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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터 발굴 구슬땀…흙 걷어내자 계단·주춧돌 고스란히 -한겨레 2014/07/14-

思美 2014. 7. 2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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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터 발굴 구슬땀…흙 걷어내자 계단·주춧돌 고스란히
[지역 쏙] 북한산성 유적복원 어떻게 되고 있나

조선 숙종 때 축조된 북한산성은 행궁과 누각, 사찰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하지만 남한산성이나 수원 화성과 견줘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산성이 경기도와 서울시에 걸쳐 있어 복원이 늦어진데다, 국립공원 지정, 군부대 주둔 등으로 규제가 많았던 탓이다. 좀 늦었지만 경기도와 고양시는 북한산성의 문화유적 복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목표다. 문화유산 발굴 작업이 한창인 북한산성을 찾았다
한겨레 박경만 기자 

 

 

경기도와 고양시, 경기문화재단이 꾸린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이 11일 북한산성 복원·발굴 사업의 하나로 행궁터 발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역 쏙] 북한산성 유적복원 어떻게 되고 있나

조선 숙종 때 축조된 북한산성은 행궁과 누각, 사찰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하지만 남한산성이나 수원 화성과 견줘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산성이 경기도와 서울시에 걸쳐 있어 복원이 늦어진데다, 국립공원 지정, 군부대 주둔 등으로 규제가 많았던 탓이다. 좀 늦었지만 경기도와 고양시는 북한산성의 문화유적 복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목표다. 문화유산 발굴 작업이 한창인 북한산성을 찾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잇따라 겪은 조선의 왕들은 언제 다시 외적이 침략해 올지 몰라 늘 불안했다. 위기 때 나라와 사직을 지켜줄 것으로 기대했던 남한산성이 청나라의 화포 공격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수모를 당한 터라 도성 방비를 위해 더 튼튼한 성이 필요했다.

숙종은 한양 도성과 가까우면서 지세가 험준해 방어에 유리한 환경을 갖춘 북한산을 주목했다.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군사요충지로 꼽혀온 북한산은 백제 개루왕 5년(132년)에 처음 토성을 축조했고, 고려 때 거란과 몽고의 침입을 막기 위해 증축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산성 축조를 두고는 숙종 즉위 이전부터 수십년 동안 수많은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막상 공사를 시작하자 승려와 군인, 주민들이 총동원돼 불과 6개월 만인 1711년(숙종 37년) 천혜의 요새가 완성됐다.

백운봉과 인수봉, 만경대를 중심으로 영취봉, 원효봉, 의상봉, 문수봉, 보현봉 등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를 연결해 12.7㎞에 이르는 성벽과 13개의 성문과 3개의 수문이 세워졌다. 성 내부 면적은 6.2㎢로 여의도(윤중로 안쪽 2.9㎢)의 2배가 넘는 규모다. 현장을 답사한 숙종은 대서문 쪽이 취약해 보이자 산성 안에 중성문과 성곽을 이중으로 쌓아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11일 오전, 대서문을 통해 숙종이 행차했던 길을 따라 진입한 북한산성 안쪽 등산로는 평탄했다.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이란 기네스 기록을 보유한 산답게 평일인데도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중성문을 지나 태고사 인근의 백운동계곡 가에서는 가림막에 가려진 채 산영루의 막바지 지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산 그림자가 물에 비치는 곳’이란 뜻을 가진 산영루는 수원 화성의 방화수류정과 남한산성 수어장대에 견줄 만큼 아름다운 조선 후기 건축물로 꼽힌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이 누각은 1925년 대홍수로 10개의 주춧돌만 남긴 채 건물이 유실됐다. 경기도와 고양시는 5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상 1층, 연면적 50㎡의 팔각지붕 형태로 산영루를 복원해 다음달 준공을 앞두고 있다.

 

북한산성 안에 있는 행궁. 고양시 제공

 

산영루의 옛 모습. 고양시 제공

임진·병자 양란 겪은 뒤 절치부심
300년 전 숙종 때 완성한 요새
일제때 2차례 장마에 와르르
한양도성·남한산성에 가려 방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리자”
고양시 중심 5개년 복원계획
행궁·성벽 조사발굴 50% 진척
계곡 옆 ‘산영루’ 다음달 준공

산영루에서 대남문 방향으로 20분 거리인 상원봉 아래 깊숙한 곳에 유사시 임금이 머무는 장소인 행궁터가 나타났다. 불볕 아래에서 연구원과 대학생, 인부 10여명이 중장비 등을 동원해 발굴 작업에 한창이었다. 숙종과 영조, 세자 시절의 정조가 다녀갔던 행궁터에서 1~2m가량 흙을 걷어내자 기단석과 계단, 주춧돌뿐 아니라 용과 봉황이 새겨진 기왓장, 온돌, 구들장, 아궁이, 수로 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산성을 쌓은 이듬해(1712년) 완성된 북한산 행궁(양주행궁)은 내전 정전 28칸, 외전 정전 28칸, 부속건물 68칸 등 모두 124칸으로 지어졌지만 1915년 7월 대홍수로 휩쓸리거나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행궁 등 산성 내부 전체와 성벽 3분의 2가 속한 경기도 고양시는 2011년 경기도,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을 꾸려 5개년 계획으로 행궁과 성벽, 성랑지 발굴조사에 나서 현재 50%가량의 진척을 보이고 있다.

발굴작업을 지휘하는 박현욱 경기문화재단 연구원은 “행궁터가 비좁지만 배산임수, 삼문삼조 등 궁궐 건축원칙에 충실하게 잘 지어졌으며, 현장 보존이 잘돼 역사적·학술적으로 활용 가치가 크다. 특히 돌을 갈아서 만든 성벽은 끼움돌 없이도 종이 한장 들어갈 틈도 없이 완벽하게 쌓아 300년이 지나도록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가사적 162호로 지정된 북한산성은 이밖에도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 유영지, 군량미 보관 창고, 태고사·중흥사·삼천사 등 사찰 18개, 명승터를 비롯해 우물 99개, 저수지 26개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하지만 남한산성이나 수원 화성과 달리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규제를 받는데다 1994년까지 군부대가 주둔하며 출입을 통제해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개방 이후에도 성벽 일부를 제외하고는 문화유적 정비와 복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600주년을 맞은 고양시는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과, 2012년 잠정목록에 오른 한양도성에 이어 북한산성을 세계문화유산에 올리고자 도전장을 내고 발굴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양시 관계자는 “고양시 하면 이제 20년 된 일산새도시만 생각하는데, 북한산 백운대·인수봉이 속한 600년 역사를 가진 땅이란 걸 널리 알리기 위해 북한산성 발굴·복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경기도와 서울시의 집중 지원을 받은 남한산성과 한양도성에 이어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문화유산적 가치가 충분한 만큼 서울시와 경기도·문화재청이 협조하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성태 북한산성문화사업팀장은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은 연관이 매우 깊은 만큼 ‘남한산성의 연속 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또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별도로 북한산성의 조사·연구·정비와 복원·활용이 세계문화유산의 요구 수준에 맞게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향토사학자인 정동일 고양시 역사전문위원은 “지금도 등산객들이 성벽을 밟고 다녀 성벽이 낮아지고 무너져내리는 등 훼손이 진행되고 있어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성벽과 등산로를 분리해 등산로를 정비해야 한다. 행궁의 경우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당장 복원하기는 어렵더라도 발굴 뒤 덮지 말고 현장을 보존해 교육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양/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북한산성의 성벽은 화포 공격에 대비해 낮고 두껍게 쌓았다. 돌 쌓는 기술이 최고조에 이르러 300년이 지나도록 원형대로 보존된 곳이 많다.

고양시 옛돌, 서울시 두부모양 새돌
성벽복원 구간별로 달라 원형 훼손

“남한산성이 활과 창·칼 등 근력무기시대의 마지막 산성이라면, 북한산성은 화약무기 공격에 대비한 최초의 산성이고, 그 종결판은 수원 화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만난 박현욱 경기문화재단 연구원은 조선 후기 성곽사적 관점에서 본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의 특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남한산성은 화살을 막기 위해 성벽을 얇고 높게 쌓은 반면, 북한산성은 화포의 공격에 견딜 수 있도록 성벽의 두께를 2~5m가량 두껍고 낮게 쌓았다. 산성 안 행궁의 위치도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의 ‘홍이포’에 당한 경험 때문에 성 밖에서 공격할 수 없도록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 왕실 보전에 만전을 기했다.

남한산성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협곡에 축조한 북한산성은 거주공간이 부족해 주민이 많이 살지 않았지만 삼국시대 이래 역사·문화의 중심지답게 문화유산들이 즐비해 산 전체가 종합박물관이라 부를 만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북한산성에는 행궁지와 태고사 원증국사탑 등 국가지정문화재 5건과 경기도지정문화재 7건이 있으며, 서암사지·중흥사지·부왕사지 등 사찰 문화유산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산성의 문화유산적 가치가 높은데도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은 행정구역 분산과 컨트롤타워 부재, 국립공원 지정, 군부대 주둔과 민간인 출입통제 등 규제가 겹친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남한산성은 광주·성남·하남시에 걸쳐 있지만 경기도립공원이라 경기도가 사업주체가 된 반면, 북한산성은 산성 내부 99.3%, 성벽 69%가 고양시에 속하고, 나머지 구간은 서울시 은평·강북구 등 4개 구에 걸쳐 있어 어느 한 곳이 주체가 될 수 없는 구조다.

실제 성벽 복원 과정에서 고양시와 서울시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복원해, 같은 시기에 동일한 방법으로 축조된 성이 구간별로 다른 모양을 띠어 문화유산적 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동일 고양시 역사전문위원은 “성벽 주변에 흩어진 옛 돌들을 최대한 이용해 복원해야 하는데, 대남문~백운동암문(위문) 구간은 서울시가 외부 돌을 헬기로 실어 날라 한양도성 쌓던 방식으로 복원해 북한산성의 원형을 잃어버렸다. 서둘러 복원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철저한 고증과 관리주체 간의 협조와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양/박경만 기자


기사등록 : 2014-07-13 오후 08:31:04 기사수정 : 2014-07-13 오후 09: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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