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읽은 책에서 단골 이야기가 나왔다. 나에게도 단골이 있었는데.... 첫 단골은 아무래도 동네 점빵이었다. 십환 동전이라도 생기면 늘 달려갔었다. 동전이 없어도 우린 점빵 앞에서 놀았다. 점빵 아저씨는 우리 식구를 다 알았다. 엄마심부름으로 가면 외상으로도 물건을 주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문방구가 단골이 되었다. ‘청구당’이란 간판도 멋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청구대학교 옆에 있어서 그런 상호를 가졌던 거 같다. 전과라도 사면 지우개, 사탕 같을 걸 덤으로 듬뿍 주었다. 살 것이 없어도 집에 가면서 꼭 들리는 곳이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교회 앞 초등학교동기집이었던 슈퍼였다. 교회 오가는 길에 친구들이랑 여름에는 하드를 겨울에는 호빵을 사 먹었다. 무거운 걸 옮길 때나 큰 일이 있으면 도왔던 기억도 난다. 단골이니까.
대학 때는 ‘미성씨 났었요!’를 외치던 단골 당구장도 있었고, 대학 후문에 자주 가던 칼국수집도 있었다. 지난겨울 수다에서 한 친구가 ‘너 대학시절 도서관 사서 아가씨랑 사귀었지’했다. 자주 가다보니 대출이 잘되는 책은 미리 얘기하면 챙겨놓았다 주기도 해서 오해한 모양이었다. 단골이 되면 그랬는데 말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단골이 없어진 거 같다. 언제부터인가 구내식당, 편의점이 단골이 되어버렸다. 이젠 인터넷몰이 단골인 듯하다.
요즘도 대구에 가면 꼭 찾아가는 식당들이 몇 있다. 미성당, 둥굴관, 진골목식당 등이다. 동아백화점 앞 미성당은 골목 쪽으로 지금 반의 반 정도 크기였을 때부터 갔었다. 그 동아백화점이 먼저 없어진단다. 시청 뒤 둥굴관은 고등학생 때 엄마심부름으로 냄비 들고 가서 복매운탕을 사 오던 곳이다. 그 대구시청도 이제 달서구로 옮길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단골로 생각하지만 1년에 한두 번 가니 그 식당에서는 그렇지 않다. 단골은 주인이 날 알아 봐주는 곳이다. 얼마 전 송도에 사는 친구가 단골로 가는 포차에서 부추전에 막걸리를 마셨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단골집이었다. 자주 오는 손님끼리도 서로 다 아는 그런 단골집 말이다.
지난달부터 노량진 학원을 다니는데 학원가는 길에 꼭 들러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는 커피집이 있다. 며칠을 지나니 말을 안 해도 내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시럽도 알아서 넣어주고. 나에게 새로운 단골이 생기나 기뻐했다. 헌데 얼마 후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알바생이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 얼굴을 익힐 만하면 다른 알바생으로 바뀌었다. 다들 힘든 세상이다. 학원을 마치면 국회도서관에 가서 점심을 먹고 복습한다. 근데 그 도서관식당에 단골 어르신이 계셨다. 식당 입구에서 배식구까지 굽은 허리로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걸어가셨다. 어느 날은 식탁에 앉으신 채로 주무시기도 했다. 근데 그 분을 식당 아주머니들은 다 아셨다. 식판을 대신 준비해 가져다주는 날도 있었다. 그 어르신은 과연 얼마나 이 식당을 이용하신 걸까? 구내식당도 단골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신 어르신이다. 점심때 도서관 식당을 가면 그 어르신이 늘 앉으시는 쪽을 먼저 보게 되었다. 열람실에서 마주치면 괜히 반가웠다. 언제 또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선현들의 경험을 책에서 배운다고 한다. 이제 나보다 어린 저자들 책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심보선 시인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는 나에게 단골을 생각하게 하였다. 이 책은 여러 지면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낸 것인데 삶을 얘기하고 있었다.
1부에서는 저자 개인 일상을, 2부에서는 시를, 3부에서는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였다. 저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폈던 책이었는데 교수, 시인으로의 삶뿐만 아니라, 세월호 피해가족, 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하는 삶의 이야기가 가슴에 조용히 와 닿는 책이었다. 이런 책을 또 만나고 싶다.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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