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어머니집에 며칠 있었다. 어머니집에는 인터넷이 없다. 내 휴대폰은 2G다. 내가 가진 스마트폰은 와이파이가 없으면 스마트하지 못하다. 스마트해지기 위해서 가끔 용학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운 좋게도 '재레드 다이아몬드' 신간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원제: Upheaval)을 만났다.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로 우리나라에서 너무나 유명하여 이번 <대변동>은 영문판과 한글판이 동시에 출판되었다. 스마트하지 않은 집에서는 독서가 최고다. 뉴스 시간에도 어머니는 드라마만 보시니 더욱 그러했다. 덕분에 6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을 대출기간 연장 없이 다 읽고 반납하고 왔다. 물론 재미도 있었다.
<대변동>은 7개 나라(핀란드,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중대한 위기를 맞아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했는가를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 중 핀란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굉장히 긴 국경을 맞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초 소련은 핀란드에게 부동항등 영토를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한다. 이에 핀란드가 거부하자 1939년 11월 핀란드를 침공한다. 일명 '겨울전쟁'이다. 핀란드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처음에는 버텨내었지만 워낙 대국인 소련을 영국, 프랑스 등 동맹국 지원 없이 핀란드 혼자 상대하기는 무리였다. 결국 1940년 3월 12일 거의 10%의 영토를 소련에 넘겨주는 ‘모스크바평화조약’으로 전쟁을 마무리한다.
그 후 나치독일이 소련과 싸우며 핀란드와 같이 하자 하니 1941년 6월 다시 소련과 전쟁을 하게 된다. 일명 '계속전쟁'이다. 다 아시다시피 여기서도 소련이 이긴다.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산업시설과 주거지는 초토화되었다.
여기서 핀란드는 현실 직시와 냉정한 자기평가로 위기를 극복하고 자립한다. 이를 위해 지도자들은 역설적으로 소련과의 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춘다. 신뢰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소련 지도자를 수없이 만나 설명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핀란드는 자기 연민과 원한 때문에 소련과의 관계를 무력화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어야 했다. 핀란드는 작은 나라로서 러시아와 긴 국경을 맞대고 있다. 동맹들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기에 생존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국에 있었다.'라는 현실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정직한 자기평가를 했고 생존을 위해 현실을 인정하고 유연한 대응을 했던 것이다.
몽고군 침략 후 원나라에 대한 고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대한 조선을 생각나게 하고, 강대국 틈새에 있는 우리 조국도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을 읽은 후 우연히 <언노운 솔저>라는 영화를 보았다. 제2차 소련-핀란드 전쟁 즉 '계속전쟁'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였다. 영화에 아무런 지원도 없이 소련의 막강한 화력에 맞서 싸우는 핀란드 군인들의 외로운 전투이야기가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주인공은 '겨울전쟁'에 이어 '계속전쟁'에도 참전하게 된다. 많은 전공을 세우지만 전쟁은 계속된다. 고향서 임신한 몸으로 혼자 밀을 수확해야하는 부인 걱정이 늘 앞선다. 명령에 불복하며 나만의 전투를 하다가 야단도 맞는다. 같은 마을에서 같이 입대한 전우와의 이야기도 눈물겹다.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핀란드가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 영화는 말해준다.
책에서는 마지막에 국가들은 어떻게든지 위기를 극복하는데 지구가 위기를 만나면 어떡하나? 참고할 이웃행성도 없는데 하는 의문도 던졌다.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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