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제 등산복 상의 왼쪽가슴에 포켓이 꼭 있어야 했습니다.
담배와 라이터가 들어갈 자리였었죠.
정상에 올라 쉬며 한모금 빨아보는 담배맛을 어디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몇 해전인가 1월 1일 새해를 맞으러 용지봉에 오른 적이 있죠.
집을 나서며 책상 위 담배 한갑을 무심히 들어 포켓에 넣고 열심히 산을 올랐죠.
정상 바로 밑에서 저 멀리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헬기장엘 가니 몇몇 분이 담배를 피고 있었습니다.
저도 한 대 생각이 나 포켓에서 담배를 꺼내었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빈 갑이었습니다.
얼마나 허탈하던지. 담배피시는 분들은 그 때 제 심정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 때 많이 망서렸습니다. 누구에게 한 개비 빌려달랠까? 아니 정월 초하루부터 그런 말을 어떻게 해..
결국 말을 못 꺼내고 엄청 참으며 내려온 기억이 나네요.
허나 요즘엔 담배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등산복 상의에 포켓이 없어도 상관 없습니다.
지난 해 아들내미가 수능보는 날부터 담배를 끊었습니다.
이제 곧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래도 아직 유혹을 느낄 적이 있는 걸 보면 니코틴의 위력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며칠 전 비가 뿌리는 날 김부장이랑 용지봉을 올랐습니다.
우산쓰고 산을 오른 것이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비오는 설악산을 오르고 첨이었습니다.
산불초소 옆 가창이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쉬면서 김부장이 담배 한대를 피었습니다.
한개비를 맛나게 피우고 나서는 배낭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조그마한 하얀 약통으로 만든 재털이였습니다.
아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김부장은 등산하는 내내 요즘 많이 올라오고있는 버섯들을 등산스틱으로 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첨엔 취미도?? 하다가 왜그러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누군가가 따먹으면 어쩔까 걱정이 되어서 그렇게 한답니다.
정말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부터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져간다면 얼마나 따뜻한 세상이 될까 생각해 봅니다.
김부장 배낭에서 나온 아름다운 재떨이.
수성구청장님도 담배를 싫어하신답니다. 지금 구청장인지 전 구청장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