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사람사는세상

창덕궁(옥류천) -2009/09/05-

思美 2009. 9. 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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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용지(芙蓉池)와 부용정(芙蓉亭)

 

 1959년 Smothers 촬영 


조선의 궁궐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사상에 의해서 조성되었다.
부용지도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연못 속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만들었다.
연못의 동남쪽 모퉁이 돌에는 뛰어오르는 형상의 물고기 한 마리가 새겨져 있다.
부용정(1792년 건립)은 十자형을 기본으로 하되, 남쪽으로 양쪽에 한 칸씩 보태 다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정자이다.
1795년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에 다녀온 뒤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부용정에서 규장각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주합루(宙合樓)

주합루는 1776년(정조 즉위년)에 지은 2층 누각이다.
아래층은 왕립도서관인 규장각 서고이고 위층은 열람실이다.
초기 왕실도서관으로 출발한 규장각은 점차 정책연구기관으로 기능하여 정조의 개혁 정치와 조선 중기 문예 부흥의 산실 역할을 하였다.
채제공, 정약용, 이가환, 박제가, 유득공,이덕무 등 적서(嫡庶)의 구별 없이 다양한 인재들이 여기서 활동하였다.
주합루라는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다.

주합루의 정문인 어수문(魚水門)에는 임금을 물에, 신하들을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의 융화적 관계를 함축한 뜻이 담겨 있다.

어수문은 임금이, 그옆의 작은 문으로는 신하들이 출입했다.

 

 

 

 불로문(不老門)

불로문은 하나의 통돌을 깎아 세운 문으로 임금이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애련지(愛蓮池)와 애련정(愛蓮亭)

숙종18년(1692년)에 만들어진 연못과 정자이다.

숙종은 『애련정기(愛蓮亭記)』에서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연꽃을 사랑하여 새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이라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관람정(觀纜亭)


관람정은 평면이 부채꼴 모양으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태의 정자이다.
관람정 앞 연못은 대한제국 말기나 일제 초기에 현재와 같이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람은 닻줄 즉 배 띄움을 구경한다는 뜻이다.

 

  존덕정(尊德亭)과 폄우사(砭愚榭)

존덕정(1644년 건립)은 육각정자 형태로 겹지붕이 특이하다. 내부에는 '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정조의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다.
옛날에는 다리 남쪽에 일영대(日影臺)를 설치하여 시각을 측정했다고도 한다.
폄우사는 순조의 세자 효명세자가 독서하던 곳이다. '砭愚'란 어리석음을 경계하여 고쳐준다는 뜻이다.

 

 옥류천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 북쪽 깊숙한 곳에 흐르는 개울을 가리킨다.
인조 14년(1636년)에 커다란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둥근 홈을 만들어 옥과 같이 맑은 물이 바위 둘레를 돌아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들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여기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
근처의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청의정(淸漪亭) 등과 함께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하여 많은 임금들에게서 특히 사랑받았던 곳이다.
소요암에는 인조의 玉流川이라는 어필 위에 숙종의 오언절구시가 새겨져 있다.

飛流三百尺 폭포는 삼백척인데
遙落九天來 멀리 구천에서 내리네
看是白虹起 보고 있으면 흰 무지개 일고
飜成萬壑雷 골짜기마다 우뢰소리 가득하네

 

 소요정

 

 

 태극정앞 개울내 태극무늬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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