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思美 세상

근심어린 눈길 거두시고 편히 사세요 -포스코신문 2010/05/27-

思美 2010. 6. 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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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7

 포스코신문은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와 가족에 대한 추억을 담은 독자 여러분의 글을 공모해 게재합니다. 지난 한 달 동안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보내주신 많은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근심어린 눈길 거두시고 편히 사세요

 

 

한 소녀가 있었대. 열여덟 살에 어미 손에 이끌려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노총각에게 울며 시집간 한 소녀가 있었대. 나이 든 신랑이 무서워 매일 밤 눈물로 지새우면서 도망갈 궁리도 여러 번 했었단다. 그런데 하나, 둘, 셋, 넷 혹처럼 새끼가 하나씩 생겨 그냥 발목 잡혀 살았단다. 날개옷을 잃은 선녀처럼.

 

장군 같던 첫아이가 열병으로 다리에 힘이 풀리던 날. 그 여자는 아들이 평생 온전치 못한 몸으로 살 바엔 차라리 같이 죽자고 마음먹었대. 뱃속에서 또 다른 생명이 꿈틀대지만 않았다면 미련 없이 이 세상과 하직하려고 했대. 그 뒤로 내리 셋을 낳아 모진 마음으로 키우면서 세상 사람들 손가락질을 다 견뎌 냈대. 낮이고 밤이고 억척스레 일만 하면서 이 악물고 다짐했대. 남부럽지 않게 키워 보겠다고, 병신 소리 듣지 않게 누구라도 우러러보게 키워 보겠다고….

 

세월이 흘러 다리 절룩이던 자식은 성한 사람도 어렵다는 시험에 합격하고 어엿한 법관이 됐대. 그 여자는 천하를 얻은 듯 자랑스러웠지. 하지만 아직 해피엔딩은 아니야.

 

천금 같던 그 아들이 병에 걸렸대. 의사도 못 고치는 원인도 모르는 병에. 진초록 얼굴에 퀭한 눈. 힘없는 다리가 젓가락처럼 변해 갈 때도 ‘내 자식은 절대 죽지 않는다’ 며 어미는 목놓아 기도했대. 곡기를 끊으며 울부짖었대.

 

1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아들은 기적처럼 나았대. 아들은 자신을 살린 어머니의 기도처럼 살겠다고, 의로운 일 많이 하며 세상의 빛으로 살아갔다지. 그 아들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따르며 우러렀대. 나라의 중한 일 맡아 달라며 가슴에 금뱃지도 달아 줬다지.

 

이제는 아쉬울 것도, 손가락질받을 일도 없는 의원님 모친이 된 그 여자. 편하게 여생을 보내며 이야기는 여기서 행복하게 끝이 나야지 암만!

 

그런데 그 여자에게는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딸이 있었어. 어릴 때부터 유난히 별난 탓에 어미 속을 꽤나 썩였다는 그 딸년이 시집가서 또 늦둥이를 낳았다지 뭐야! 지가 좋아서 낳았음 지가 책임지면 될 것을 애는 할미에게 맡기고 바쁘게 왔다갔다 설쳐 댔다지. 애 학비며, 집 대출금을 벌어야 한다며.

 

이제는 쇠약해진 노친네가 개구진 손자 거둔다고 허리는 더 휘고 손은 부르텄다지. 그래도 손주 재롱에 위안을 받으며 ‘너희만 잘된다면 나는 괜찮다’며 공기처럼 바람처럼 자식 곁을 지켰다지.

 

어느덧 손자도 잘 자라 더 이상 할미가 돌보지 않아도 됐을 때, 이제는 온전히 내 인생을 살아 보겠다고 친구들과 어울려 산에도 가고, 온천도 가고 다시 소녀처럼 신나게 다니려 했대. 그런데….

 

아뿔싸, 얼마 못가 그만 다리에 병이 났대. 무릎병이 생겨 맘대로 다니지도 못한다지. 그 못된 딸년은, 병원에 몇 번 모시고 가며 효도 좀 하는 척하다가 고향으로 내려가려는 어미를 ‘이제 엄마도 편히 사셔야죠’하며 붙잡지도 않았대. 말은 그렇게 했다만 보내면서 ‘우리 집에 계시다가 더 아프면 내가 어떻게 책임지지?’ 요런 꿍꿍이도 있었을 거야. 어휴, 썩을년!

 

공도 없이 보답도 없이 고향으로 간 그 여자, 아니 그 할머니는 그래도 여전히 손자 걱정하며 ‘내가 없어도 잘 지내나’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었다지.

 

딸년이 어쩌다 전화하면 ‘고향집이 편하고 친구들이 좋아’ 안심시키며 여전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기도를 올린다지.

 

“내 자식들 편히 잘 지내게 해 주세요. 어미 걱정 안 하고 살게 해 주세요.”

그래서 그 딸년이 정신을 차렸냐고? 글쎄, 이제라도 인간이 되면 정말 좋으련만 지도 자식 키우는데 뭐 조금은 느끼는 게 있겠지. 지도 자식 키우면서 아무것도 못 느낀다면 그건 사람도 아니지.

 

바람 같던 그 여자의 일생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여자가 피를 토하며 지킨 자식들은 엄마에게 받은 사랑만큼 새끼들을 키우며 사랑을 전해 주고 있더라는 어떤 옛날이야기란다.

 

박연순<yeon0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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