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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 대신 골목길 보존했더니 ‘100년전 역사여행’ 북적 -한겨레 2013/11/11-

思美 2013. 11. 1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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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 대신 골목길 보존했더니 ‘100년전 역사여행’ 북적
[현장 쏙] 도시혁신, 우리동네를 찾아서 ④ 근대와 현대 공존하는 대구 중구
한겨레
 

대구 중구 도심의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는 야경투어에 참가한 탐방객들이 등롱을 든 채 지난달 18일 중구 계산동2가 계산성당 앞을 지나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현장 쏙] 도시혁신, 우리동네를 찾아서 ④ 근대와 현대 공존하는 대구 중구

대구 중구 반월당 네거리는 대구의 중심 가운데 중심지다. 대구의 동맥이라는 왕복 10차로 달구벌대로가 펼쳐져 있다. 반월당 네거리에서 서쪽 계산 오거리로 500m를 걸으면 오른쪽으로 백화점과 고층 아파트 등이 늘어서 있다.

 28층 주상복합 아파트 옆에 골목길이 북쪽으로 나 있다. 1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들머리다. 골목길을 따라 북쪽으로 50m가량 들어가면 기와집으로 지은 고택들이 나타난다. 길 왼쪽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민족 저항시인 이상화(1901~43) 선생이, 오른쪽엔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던 서상돈(1850~1913) 선생이 살았던 고택이 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100m쯤 가면 90개로 된 돌계단이 보인다. ‘3·1 만세운동 길’로 불리는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청라언덕’이 나온다. 대구에서 태어난 작곡가 박태준이 만든 가곡 ‘동무생각’의 배경이 된 곳이다. 서울에서 왔다는 최현주(54)씨는 “1988년까지 이 근처에서 살다가 서울로 옮겼다. 이번에 처음으로 혼자 와봤다. 고층 건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옛날 골목길과 건물이 꽤 많이 남아 있어 과거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든다. 대구 도심에 옛 건물이 이렇게 보존이 잘 되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대구 중구는 인구 7만5000여명, 면적 7.06㎢인 작은 지방자치단체다. 면적만으론 기초자치단체 228곳 가운데 부산 동구(2.83㎢) 다음으로 작다. 조선 선조 34년(1601년) 영남지역 사법을 관장하는 경상감영이 옮겨온 이래 구한말까지 영남의 중심지였다.

 

민족저항시인 이상화 선생의 고택(대구 중구 계산동2가).
 

1919년 3월8일 대구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사람들이 달려갔다는 ‘3·1만세운동길’(동산동).

낡은 도심 철거형 정비사업을
근대유물 많은 지역특성 살려
보존정책으로 틀며 도심 재생
이상화 고택과 3·1만세운동길…
골목투어에 작년 6만명 다녀가

 60년대 이후에는 압축성장이 이뤄지면서 중구에서 낡은 건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없어져갔다. 빈자리는 백화점과 영화관, 빌딩, 쇼핑센터가 채웠다. 수익을 추구하는 건설업체와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주민들의 욕망이 맞물려 대규모 철거와 재개발이 거듭됐다. 재개발에도 한때 21만명에 이르던 대구 중구 인구는 1987년 이후 급격히 줄어들었다.

 2001년, 스물일곱살 청년이 이런 방향과는 사뭇 다른 움직임을 시작했다. 사라져가는 것에 관심을 가진 청년은 2년 뒤 시민단체 ‘거리문화 시민연대’를 만들었다. 대구 도심 골목문화 답사 운동을 펼치며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오래된 골목, 곳곳에 산재한 낡은 건물들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다시 조명해보자는 것이었다. 2007년 1월 거리문화 시민연대는 <대구신택리지>라는 책을 펴냈다. 골목답사를 바탕으로 대구 도심의 근대 역사와 생활, 골목길 이야기 등을 담은 해설서였다. 이 청년이 지금은 사단법인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를 맡고 있는 권상구(39)씨다. 권 이사는 “대구 도심에 흩어져 있는 민족지사들의 고택과 선교사 주택, 골목길들은 지금 이 도시에 사는 우리가 이곳의 최초 사용자도, 최종 사용자도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다음에 올 도시의 사용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도시의 과거 궤적을 남겨두는 작업을 중구 근대골목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의 도심 보존 운동은 2006년 7월 대구지역 첫 여성 단체장인 윤순영 중구청장이 취임하고부터 속도가 붙었다. 지방자치단체도 대구 도심 활성화 정책을 ‘개발’에서 ‘보존’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방치되던 도심의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내 보존하고 거기에다 이야기를 입혀 다시 사람들이 찾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윤 구청장은 “낡은 건물을 밀어버리고 새 건물을 짓는 것보다 적절한 보존을 병행해야 한다. 중구에는 근대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이를 보존하며 도심을 정비하는 것이 지역 정체성을 살리는 방향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민족운동가 서상돈 선생의 복원된 고택(계산동2가).
 
1910년 지어진 미국인 선교사 챔니스 주택(동산동).

 대구 도심 정책의 변화는 ‘대구시 도시·주거환경 정비 기본계획’에서도 엿보인다. 2006년 6월 고시된 기본계획을 보면, 중구에서 도시정비 예정구역으로 지정된 면적은 1.80㎢(67곳)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도심 정책 방향이 개발 일변도에 맞춰져 있었다. 올해 4월 고시된 기본계획에서 도시정비 예정구역은 1.22㎢(33곳)로 줄었다. 면적이 7년 전의 68%로 축소된 것이다.

 주민들의 개발 기대가 완전히 꺾인 것은 아니다. 옛 건물을 보전하는 것보다 새 빌딩을 짓는 게 경제적으로 낫지 않으냐는 주민들도 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대구 부도심으로 달서구와 북구가 개발된 이후로, 기존 개발 방식만으로는 쇠퇴 일로의 옛 도심을 살릴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본격화한 2000년대 후반 이후엔, 철거 및 재개발 방식으로 도심의 재기를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수그러들었다.

 그사이 대구 중구는 시민단체 등과 함께 3·1 만세운동 길,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 등 문화유산과 이를 연결하는 골목길을 재단장하고 이야기를 입혔다. 100년 전에도 있었지만 대구 사람들조차 잘 몰랐던 오래된 것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모습을 드러냈다. 2008년엔 문화해설사의 안내와 설명을 따라, 탐방객들이 근대문화유산들을 촘촘하게 둘러볼 수 있는 ‘골목투어’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첫해엔 골목투어 참가자가 287명뿐이었지만, 지난해엔 무려 6만2199명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엔 8월까지 6만3294명으로 벌써 지난해 참가자 수를 넘었다.

 탐방객들이 늘어나면서 대구 중구 지역사회의 분위기도 꽤 달라졌다. 골목투어 문화해설사 55명이 도심 골목길을 누비고 있고, 도심 거리에도 사람들이 몰려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골목길 주변 일부 가게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어나며 매출도 크게 올랐다. 한때는 낮설었지만 지역 살림살이가 조금씩 나아져가자 이런 옛 도심 재생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길도 차츰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중구는 ‘도시대학’을 열어 주민들의 제안을 골목투어에 반영하는 등 주민 참여를 끌어내고 있다. 2010년 도시대학에서 나온 주민 제안 가운데 하나가 천주교 순례길인 남산화원 둘레길이다.

 도심 근대문화유산 보존 시도가 입길을 타면서, 대구를 가리켜 ‘근대도시’라고 일컫는 이들도 생겼다. 대구 중구의 근대 골목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한국관광의 별’과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곳’에 선정됐다. 지난 7월 도시재생 네트워크가 연 1회 전국 도시재생 우수사례 발표회에서, 대구 중구는 “대구다운 특징을 가장 대구답게 되살려놓았다”는 평가와 함께 우수상을 받았다. 도시재생 네트워크는 지역개발·도시재생과 관련한 지식·정보를 공유하자며 정부와 자치단체, 연구기관, 시민단체가 만든 조직이다.

 권상구 이사는 “도시를 재생하는 방식은 단순히 무너뜨리고 짓는 것이 아니다. 잠재된 지역의 여러 자산을 활용해 독자적인 재생 방법을 고민하고 펼쳐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기사등록 : 2013-11-10 오후 08:38:27 기사수정 : 2013-11-10 오후 09: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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