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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맞아 대구를 찾은 친구랑 달성공원을 둘러보았다.
관풍루.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각.
대구문화재자료 3호. 경상감영의 정문으로 1601년(선조 34)에 건축된, 정면 2칸, 측면 2칸의 중층누각 겹처마 팔작지붕건물이다.
1601년(선조 34)대구에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선화당(宣和堂)의 남서쪽에 포정문(布政門)을 세우고 그 위에 문루(門樓)를 만들어 관풍루라고 불렀다. 현재 달성공원 북쪽에 옮겨 세워져 있는데 1906년 당시 관찰사 박중양(朴重陽)이 대구읍성 철거할 때 건물만 옮긴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며,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화강암 외벌대에 전(塼)을 깐 기단 위에 세워졌다. 하층은 어칸이 양협칸보다 넓으며, 상층은 통간을 우물마루로 꾸미고, 사방에 30cm폭의 쪽마루를 돌출하여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돌렸다. 상층에는 배면 어칸 바로 앞에 1칸 크기로 반 칸 너비의 나무계단 18단을 설치하여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지붕의 내림마루에는 잡상(雜像)이 장식되었다.
구조양식은 화강암 정평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주두(柱頭)와 함께 연화를 투각한 앙설(仰舌)과 돋을새김을 한 쇠서 및 봉두가 장식된 이익공양식이다. 상층의 가구(架構)는 5량가(五樑架) 대들보 위에 대접받침을 얹고, 초각한 양봉과 첨차 및 소로를 결구하여 각기 보와 종도리 및 장여를 받도록 하였다. 천장은 연등천장이고, 단청은 모로단청이다.
관풍루의 원래 명칭은 폐문루(閉文樓)로 새벽 5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는 것을 알리면서 풍악을 울렸다고 한다. 지금의 관풍루란 이름은 ‘감사가 누상(樓上)에서 세속을 살핀다(觀風世俗)’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달성공원의 출입문을 들어서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최제우동상이 있는데, 그 뒤편에 설치된 돌계단 34단을 오른 높은 언덕 정상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이상화 시비.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다.
제첨(題簽)은 서예가 오세창이 썼고, 싯구는 이상화의 셋째아들 태희가 썼는데 그 때 11살이었다는데 글씨가 아름답다.
토성.
향토역사관에 재현해놓은 대구읍성.
1960년 2월 29일자 대구매일신문. 경고생은 데모했고, 수성교에서는 군인이 패싸움, 오토바이 한대 도난 당했고, 복 잘못먹고 병원갔다는 소식도 있다.
3.15부정선거 보름전 풍경이다.
봄은 구충의 계절. 명성사진관 광고도.
대구대 졸업식한단다.(영남대 되기전인)
서문시장 납작만두.
양말골목.
저녁 고등학교 동기 모임. 토기안에 오매락이란 술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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