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한겨레온

예천 선몽대

思美 2021. 1. 2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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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송마을에 있는 명승 제 19호 선몽대(仙夢臺)를 찾았다. 도청신도시에서 10분 거리다.

 

우암 이열도(1538~1591)가 1563년 26세 때 지은 누정이다. 이열도의 할아버지 이하는 이황(1501~1570)의 둘째 형으로 예천 박심의 딸과 결혼해 예천 용문 금당실에 살았다. 이열도의 아버지 이굉이 백송마을로 들어왔다. 이열도는 이황의 종손이자 제자였다. 꿈에 선몽대 자리에 신선들이 노니는 걸 보고 정자를 짓고 선몽대라 하였다. 이황이 직접 선몽대 편액 글씨를 쓰고, 시도 지었다. 경관도 수려하지만 그 덕에 더욱 유명해졌다. 그 후 당대 내로라하는 학자들도 방문하여 많은 글을 남겼다. 대표적인 사람이 김성일, 류성룡, 정탁, 김상헌, 이덕형, 정약용 등이다. 먼저 퇴계 이황의 시를 보자.

寄題仙夢臺(기제선몽대) : 선몽대라 이름 짓다 -퇴계 이황-

松老高臺揷翠虛(노송고대삽취허) : 노송과 높은 누대 푸른 하늘에 솟아있고

白沙靑壁畵難如(백사청벽화난여) : 강변 흰 모래와 푸른 절벽은 그리기조차 어렵네

吾今夜夜凭仙夢(오금야야빙선몽) : 나는 이제 밤마다 선몽대에 기대서니

莫恨前時趁賞疏(막한전시진상소) : 예전에 이 멋진 경치 감상 못함을 한탄하지 않노라

 

정말 먼저 멋들어진 노송들이 선몽대로 가는 길을 인도해 준다.

 

높은 누대 푸른 하늘에 솟아 있다.

 

강변 흰 모래와 푸른 절벽은 사진으로 보자.

 

대갓집에 있을 듯한 2층 솟을대문이 손을 맞이한다.

 

정자로 올라가는 길은 자연암반을 깎아 만든 계단이다.

 

이 돌 계단을 오르면 바위를 깎아 만든 길이 나오고 그 왼쪽에 문이 둘 있다. 이 문으로 정자를 드나든다.

 

유년주일학교 시절 반석위에 지은 집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 선몽대가 정말 반석위에 지은 집이었다.

 

아궁이도 한참 높았다. 서서 불을 때야 한다.

 

안평대군(1418~1453)이 꿈에서 본 신선세계 도원(桃園)을 안견에게 이야기해줘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하고 발문을 적었는데 그 중 바위를 깎고 골을 뚫어 집을 짓는다는 게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구나! 참으로 도원이도다(架巖鑿谷 開家室 豈不是與 實桃源洞也 가암착곡 개가실 기불시여 실도원동야)’라는 부분이 있는데 우암도 몽유도원도를 보거나 못 보았어도 이야기는 들은 거 같다. 바위를 깎고 집을 지어 선몽대라 이름 붙인 걸 보면 말이다.

 

이웃 하회마을 서애 류성룡(1542~1607)도 선몽대에 올라 시 한 수 읊었다.

 

謹次仙夢臺韻(근차선몽대운) ; 감히 이황의 선몽대시 운을 이어 본다 -서애 류성룡-

고대등조약빙허(高臺登眺若憑虛) : 높은 대에 올라 보니 허공에 기댄 것 같구나

어조생애아불여(漁釣生涯我不如) : 고기 낚으며 사는 삶 나는 그러질 못 하네

화락반정춘사만(花落半庭春事晩) : 꽃 떨어져 뜰을 반이나 채우니 봄도 이미 깊은데

벽렴송영갱소소(碧簾松影更蕭疎) : 푸른 주렴, 솔 그림자가 다시 고요하고 쓸쓸하도다

 

봄에 다시 와 복사꽃도 피는지 봐야겠다. 코로나가 좀 숙지면 하회마을, 병산서원 둘러보고 돌아가시는 길에 선몽대도 꼭 들러보시길 권해본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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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송마을에 있는 명승 제 19호 선몽대(仙夢臺)를 찾았다. 도청신도시에서 10분 거리다. 우암 이열도(1538~1591)가 1563년 26세 때 지은 누정이다. 이열도의 할아버지 이하는 이황(1501~1570)의 둘째 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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