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cm 기적’을 보고 싶었다. 열암곡 마애석불 말이다.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한다. 갓 사이의 골짜기라고 새갓골이라 부른단다. 산 사이 골짜기라 그렇다는데 골짜기야 모두 산 사이에 있는데 말이다. 옛날에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열암곡(列巖谷)이라고도 하는데 바위가 줄지어 있다고 그리 부른 것 같다.
오르는 길가 노루발풀이 반갑다.
열암곡 1사지를 들렀다가 열암곡 마애여래입상 있는 곳으로 가려했는데 1사지 입구를 모르고 지나쳤다.
열암곡 마애불상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근데 주변공사중이라 펜스를 쳐 놓았다.
울타리 너머로 열암곡 석조여래좌상은 보인다. 비닐에 싸여 계시다.
혹 마애불을 세우는 공사인가 싶어 남산연구소에 전화했더니 80톤이나 되는 마애입상을 세우지는 못하고 주변정리만 하는 공사라고 한다. 1월 9일까지 완료하려던 공사는 5월 말까지는 계속할 거라고 한다.
‘ 5cm 기적’을 직접 보지는 못하고 그때 한겨레에 실린 기사를 찾아보았다. 2007년 9월 10일 자 한겨레에 실린 사진과 기사이다.
‘5㎝ 기적’이 신라의 얼굴 1300년 고스란히 지켜 : 문화일반 : 문화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열암곡 1사지 찾아가는 길을 물어보니 가이드 없이 혼자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온 길을 다시 내려가며 오른쪽에 난 길을 조심스레 찾아본다. 조금 가다보니 나무에 빨간 노끈 하나가 묶여있고 조그마한 오솔길이 보인다. 그 길로 한 200미터 들어가니 열암곡 1사지가 있었다. 별로 넓지 않은 절터다. 흩어진 석조유구들을 한곳에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다. 산산조각난 불상을 보면 안타까웠다. 불교를 억압하던 조선시대 때 그리되었는지 몰라도 머리 없는 불상이 늘 보기 안쓰러웠다.
열암곡 1사지에서 쉬고 있는데 불자 한 분이 찾아와 산산조각난 불상에 절하였다. 포항에 사시는 교사인데 자주 남산을 찾는단다. 남산 곳곳을 다니며 불두도 찾으신단다.
얼마 전 TV에서 본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란 시가 생각났다.
산산조각 /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이 시를 접한 후로는 '산산조각을 얻을 수도 있구나.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도 있구나.' 하며 덜 안타깝다. 산산조각난 불상을 그냥 부처님 대하듯 하는 교사도 그러한 모양이다.
이 조각은 어느 부분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 앙증맞다.
이제 무너진 석탑이 있다는 열암곡 3사지를 향했다. 가는 길에 기와조각이 보이는 걸 보니 절터가 가까운 모양이다.
지도를 보면 골 건너편인데 그쪽에는 길이 잘 안 보여 그냥 오르다 보니 계곡 건너편에 3사지가 보인다.
골짜기를 건너 조릿대 숲을 겨우 지나서 와보니 꽤 큰 석탑 부재들이 널려 있다.
석탑이 있던 자리에는 산소가 하나 있다. 설마 석탑을 무너트리고 묘를 쓰진 않았을 테지. 1사지에도 산소가 하나 있었다. 절터, 탑 있던 자리를 다 명당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침식곡 석조여래좌상을 찾아 나선다. 능선을 따라 오르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있다는데 능선길이 희미하다. 몇 번을 오르내리다 이정표를 만났다. 정말 반갑다.
한참을 내려오다 저 아래 보이는 부처님 뒷모습이 더욱 반갑다.
이 부처님도 불두가 없다.
운동을 좀 하신 부처님이신 듯 몸이 아주 좋다.
좀 내려오다 보니 절에서 쓰던 석조물 같은데 그냥 땅에 박혀있다.
날이 많이 풀려 봄 날씨다. 계곡은 다 녹았다. 개구리가 나올 것만 같다.
출발할 때는 내차 하나였는데 주차장에 돌아오니 산행 온 차들이 몇 대 더 보인다. 공사가 끝나 열암곡 마애여래입상 주변이 정리되면 다시 한번 찾아야겠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경주 남산 6. 열암곡 1사지 산산조각난 불상 < 주주여행길 < 연재 < 기사본문 - 한겨레:온 (han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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