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한겨레온

경주 남산 8. 남산동, 국사골, 지바위골 삼층석탑들

思美 2021. 4. 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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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중에 남산 경주 남산동 중앙에 서출지라는 연못이 있다. 삼국시대 때부터 있던 오래된 못이다.

삼국유사 기이(紀異)편에 사금갑(射琴匣)이야기가 있다. 신라 21대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날 행차를 하는데 까마귀가 울어 왕이 기사를 시켜 따라가게 하였는데 중간에 놓치고 근처를 배회하던 중 한 노인이 못에서 나와 편지를 한 통을 주며 이 편지를 열어보면 두 명이 죽을 것이요. 열어보지 않으면 한명이 죽는다.’고 하였다. 왕은 한명만 죽도록 열지 말라 했는데 일관(日官) 두 명은 평민이요, 한명은 왕이다하여 편지를 열어보니 사금갑(射琴匣)‘ 3자 즉 거문고갑을 쏴라란 글이 있었다. 궁에 돌아와 거문고갑을 쏘니 그 안에 역모를 꾀하던 왕비와 중이 있었다 한다. 이 때부터 정월 대보름에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대접하였는데 이것이 요즘 오곡밥이 되었다 한다. 편지()가 나온 못이라 하여 서출지(書出池)라 하였다.

조선 현종 5(1664)에 임적(任勣)이 연못가에 이요당(二樂堂)이란 정자를 짓고 연꽃과 배롱나무를 심어 자연을 즐기며 선비정신을 닦았다. 배롱나무는 나무 속과 겉이 같아 선비들이 좋아하던 나무이다. 병산서원에도 류성룡 아들이 심은 큰 배롱나무가 있다. 연근을 수확하느라 그런지 서출지 물이 거의 빠져 있었다. 못에 물이 차고 연꽃과 배롱나무 꽃이 피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서출지에서 남쪽으로 오백 미터쯤 가면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이 있다. 보물 124호이다.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서로 다른 형식의 두 탑이 쌍을 이루고 있다. 서탑은 일반적인 신라석탑 형식이고, 동탑은 벽돌탑을 모방한 모전석탑이다. 동탑은 직사각형 돌 8개를 2단으로 쌓아 받침돌을 만들었다.

서탑은 위층 받침돌 4면에 팔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새겼다. 팔부신중은 천룡팔부중, 팔부중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힌두의 신인데 불교에서 수용하여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이 되었는데 천(), , 야차(夜叉), 건달바, 아수라(阿修羅),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摩睺羅伽)를 가리킨다.

남산동 마을을 지나 국사골로 올라간다. 각시붓꽃이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한다.

계곡을 막아 세워놓은 거대한 축대가 절터가 가까웠음을 알려준다.

조금 더 오르니 축대위로 삼층석탑이 보인다. ‘국사곡 제4사지 삼층석탑이다.

주위에 연화대로 보이는 서로 다른 크기 석재 조각들이 있어 적어도 2구 이상의 불상이 있었을 것이다.

금오정 옆에는 복사꽃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소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가 전설로 깃든 거대한 상사바위이다.

경주남산을 관광화하기 위해 군인들을 동원하여 1966년 남산관광일주도로를 완공하고 사자봉에 팔각정을 지었다. 얼마 되지 않아 벼락을 맞아 정자는 없어지고 그 터만 남아있다.

사자봉에서 지바위골로 조금 내려오다 보면 부처님 머리를 닮은 거대한 바위가 또 다른 큰 바위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석이다. 부석이 부석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바위골로 들어서서 조금 오다 보면 마애불이 하나 있다. 남산 안내 지도나 책자에 나오지 않는 마애불이다. 조각된 지가 오래지 않아서 그런지, 작품성이 떨어져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아무런 안내가 없다.

조금 더 내려오다 보면 삼층석탑이 또 하나 나온다. 자연석위에 세워진 지암곡 제3사지 삼층석탑이다.

이제 마지막 지암곡 제2사지 삼층석탑을 만나러 간다. 이정표도 잘 표시되어 있고 가는 길에 화살표 표시가 몇 개나 있어 이번에는 아주 쉽게 찾아갔다. 고맙다.

탑이 서 있는 자리가 좁아 보였다. 절터와 탑이 있는 곳 사이에 나중에 계곡이 생겨서 그런 거란다.

남산에서는 이제 벚꽃이 지고 있다. 벚꽃엔딩을 즐기며 시원한 계곡물로 땀을 씻었다.

다시 내려와 보니 남산동 동서삼층석탑옆에도 못이 있다. 양피지(讓避池)이다.

이 못 둔덕에 산수당(山水堂)이라는 정자가 있다. 원래는 이요당을 지은 임적의 동생 임극이 경주 배반동 능지촌에 있는 선대의 송암정을 산수당이라 하였는데 그 건물은 없어져 후손들이 양피지 둔덕에 산수당을 다시 지었다 한다. 요산요수(樂山樂水)에서 형 임적이 이요(二樂)를 동생 임극이 남은 산수(山水)를 우애 좋게 나누어 가졌다. 형제가 모두 자연을 벗해 산 모양이다.

서출지에서 시작해서 멋있는 삼층석탑 여럿보고 양피지에서 산행을 마쳤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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