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불곡 마애여래좌상를 찾았다. 아껴놓았던 예쁜 옷을 꺼내 입는 기분이랄까. 유홍준선생님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 권에서 ‘고신라불상의 백미’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 찾아갈 때 첫날은 못 찾고 다음날 서너 시간을 헤매다 겨우 감실부처님 앞에 설 수 있었다 하여 정신 바짝 차리고 찾아 나섰는데 이젠 워낙 유명해지셔서 그런지 이정표가 잘 되어 있었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남산 부처골에 있다. 남산 골짜기 골짜기 부처님이 안 계신 곳이 없건만 여기가 부처골짜기, 불골, 불곡이라 불리는 것이 이 감실부처님 위상을 이야기해 준다. 남산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불상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7세기 전반 선덕여왕시절에 제작되었다고 추정한다. 보물이다. 보물 제 198호이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이 정식 이름이고, ‘할매부처님’, ‘감실부처님’는 별명이다. 암만 봐도 할머니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한세기 전까지만 해도 30대에 다들 할머니가 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선덕여왕을 닮았다고도 한다.
남산에서는 조릿대가 나타나면 절터가 가깝다. 큰 길에서 마을 지나 조금만 오르다 보면 조릿대사이로 데크가 나타난다. 잘 정비된 데크를 조금 걸어가면 큰 바위 감실에 앉아계신 부처님이 보인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이다.
생각보다 크다. 높이 약 3m, 너비 3.8m 바위에 깊이 1m, 높이 1.42m정도로 삼각형 감실 안에 부처님이 계신다. 머리는 일반 불상처럼 원형조각에 가까운 고부조인데 신체와 대좌는 얇게 조각되었다.
얼굴을 약간 숙여 아래를 보는 건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건지 모를 표정이다. 그냥 그동안 죽 보아 온 이웃에 사는 인자하신 아주머니 같다.
오늘은 남산을 더 오르지 않고 다시 내려가 가까운 보리사로 향했다. 미륵곡 석조여래좌상과 보리사 마애석불을 보기 위해서다. 넓은 주차장에 홀로 주차하고 보리사로 들어선다. 대웅전 왼쪽 언덕 위 높은 곳에 불상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아래 스님 한 분이 꽃밭을 다듬고 계시다. 고요하다. 스님께 합장하고 석불에게로 조용히 올라갔다.
앗, 부처님께서 날 보시더니 빙긋이 웃으신다. 참 인자하신 미소다.
보리사지석불좌상이라고도 불리는 이 불상은 보물 제 136호이다. 남산에서 광배에 대좌까지 가장 온전히 남아있는 불상이다.
광배 뒤에는 약사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은 8세기에 조성되었고 광배 뒤 약사여래좌상은 9세기에 새겨졌을 거란다.
부처님이 내려 보시는 서라벌을 같이 한번 바라보고는 인사드리고 내려왔다.
보리사 마애석불을 찾아간다. 안내를 잘 해주고 있다.
가는 도중 커다란 바위를 자르다 만 흔적이 보인다.
금방 마애석불에 도착했다. 앞으로 좀 기울어진 바위에 광배 모양으로 감실을 파내고 얕게 여래좌상을 새겨놓았다.
보리사지석불좌상은 입으로 미소를 지으셨는데 이 마애석불은 눈으로 미소를 짓고 계신다.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는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경주 남산 9. 불곡 마애여래좌상 < 박효삼 강산들 이야기 < 주주여행길 < 연재 < 기사본문 - 한겨레:온 (han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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