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전 반장선거
지난 11월 친하게 지내는 초등학교 친구들과 고향에서 모였다. 뭘 하며 놀까 하다가 모교에 가서 생활기록부를 떼어보기로 했다. 환갑이 넘은 졸업생들이 행정실에 가서 신청했다. 먼지 쌓인 창고를 뒤져 원부를 가져와 복사해줄 줄 알았는데 졸업 연도와 이름만 말하니 컴퓨터에서 바로 찾아 출력해 주었다. 모두 스캔해서 저장되어 있었다. 서로 출력된 생활기록부를 보며 오랜만에 한참을 웃었다. 요즘에는 상상도 못 할 내용들도 적혀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1972년 6학년 때였다. 6학년쯤 되면 1학기 때 반장, 부반장은 누가하고, 2학기 때는 누가 할 것이다 쯤은 다 안다. 좀 더 통솔력이 있고 인기가 좋은 친구가 1학기 때 먼저 반장, 부반장을 한다. 투표 결과 모두의 예상대로 1학기 반장, 부반장이 뽑혔다. 2학기에는 A가 반장을 할 거라고 반 아이 모두가 생각했다. 2학기 반장 선거가 가까워져 오자 담임선생님은 A를 좋지 않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B가 참 착하고, 반을 잘 이끌어 갈 거라고 강조했다. 반 아이들은 B를 부반장은커녕 분단장 감으로도 여기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계속된 선생님의 강요에 결국 B가 반장이 되었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돌았다. B 아버지가 큰 공장을 하는 부자인지도 그때 알았다. 그 시절 우리 학교는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선생님도 오고 싶어 하는 학교였다. 돈을 써서라도 왔다고 한다. 본전은 금방 뽑는다고도 했다. 그때는 그랬다.
집권여당 대표 선거전이 한창이다. 50여 년 전 초등학교 우리 반 반장 선거가 생각났다. 요즘 만일 초등학교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학부형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인터넷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난리가 날 것이다. 형사 처분받을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요즘 초등학교에서 일어난다고 해도 어린이들이 자기 반을 이끌고 갈 반장을 제대로 뽑을 것이다. 집권여당 당원들도 그러시길 바라본다.
편집 : 박효삼 편집장
친구들과 모교를 찾았다 < 박효삼 강산들 이야기 < 여행속으로 자연속으로 < 연재 < 기사본문 - 한겨레:온 (han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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