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도의 봉황문양 ; 어진 임금이 출현하면 나타난다는 상상의 새. 임금만이 가마에 탄 채 이 답도위를 지날 수 있다.
정도전이 부지런히 천하를 다스리라는 뜻으로 근정전으로 이름을 정하였다 함.
새들이 앉지 못하게 삼지창이 있다.
근정전 마당의 고리 : 즉위식, 세자책봉, 왕족의 혼례, 회갑연, 외국사신 영접등 행사를 위해 차양막을 칠 때 끈을 매었던 고리.
일월오봉도가 둘러쳐진 어좌. 임금님께서 공식 업무를 보실 때는 항상 일월오봉도가 설치된다.
근정전 북쪽에 위치한 쥐상. 사방신(청룡, 백호, 현무, 주작)과 개와 돼지를 제외한 십이지신상이 근정전을 외호하고 있다.
드므 - 드므는 불귀신을 쫓기 위해 만든 것이다. 옛 사람들은 불귀신이 아주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드므에 물을 가득 채워 놓으면 불귀신이 드므를 지나가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도망쳐 버린다고 믿었다. 불귀신을 쫓기 위해 겨울에도 드므에 있는 물이 얼지 않도록 잘 살폈다한다.
사정전의 운룡도 : 현명한 임금과 어진 신하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사정전은 임금과 신하가 머리를 맞대고 정사를 논하는 편전이다.
사정전내 일월오봉도와 어좌
해시계 - 사정전 앞에 있는 이 해시계는 앙부일구라고 한다. 솥이 하늘을 보고 있는 모양의 해시계란 뜻. 오목한 안쪽에 막대기를 세워 놓고, 막대의 그림자로 시간을 알아냈다.
천상의 선계 경회루 : 누각 서쪽 연지에서 뱃놀이를 즐길 때 오르내리는 계단이 보인다.
연못 너머 보이는 정자는 이승만대통령이 낚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용마루 없는 교태전 : 왕비의 침전으로 '교태'란 음양이 서로 통하여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용마루는 지붕의 제일 높은 곳에 있어 땅과 하늘의 경계선을 이루어 천지간의 교통을 차단하는 장애물 역할을 한다. 천지음양간의 조화로운 '교태'를 방해하는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았다.
또한 용은 왕을 상징하는 상상 동물로, 옛 사람들은 왕이 머무는 곳에 용마루가 있으면 한 곳에 두 마리의 용이 머문다 하여 좋지 않게 여겨 설치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궁궐을 지키는 기와, 잡상 - 궁에 있는 건물 추녀에는 잡상이 있다. 잡상은 중국의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의 모습을 본떠 만든 장식용 기와이다. 추녀에 잡상을 세우는 것은 오랜 옛날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당나라 태종은 매일 밤 꿈 속에 귀신이 나타나 기왓장을 던지며 괴롭혀 편안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이에 태종은 신하들에게 방문 앞을 지키게 하였고, 이것이 유래가 되어 잡상이 만들어졌다. 옛날 사람들은 잡상이 나쁜 귀신으로부터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지켜 준다고 믿어 궁궐뿐만 아니라 오래된 우리 건축물에서도 잡상을 흔히 볼 수 있다.
경복궁은 1392년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이성계에 의해 세워진(만들어진) 첫 궁궐이다. 그러나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창덕궁 대부분의 건물들이 소실되었고, 그 후 창덕궁, 창경궁은 복구되나 경복궁만은 273년간 재건되지 못한 채 빈 터로만 남아있다가 1865년(고종2)에 흥선대원군 주도로 중건에 착수, 1868년(고종5)에 다시 복원됨으로써 왕조의 법궁으로 써 면모를 되찾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1895년 8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왕비살해)이 일어나고 이듬해인 1896년(고종33)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이동, 1897년 경운궁(덕수궁) 에 기거하시니 주인 없는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으로서 개국공신 정도전으로 하여금 <시경(詩經)> 주아편의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 만년에 큰 복(景福)을 누리리라’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궁궐의 이름을 경복(景福)이라 정하게 했다고 한다.
한때, 이방원 (태조의 5번째 아들 - 후에 태종)주도의 왕자의 난으로 조선 2대왕 정종(태조 2째 아들) 등극 및 정종의 개경환도로 잠시 경복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으나, 3대 태종의 한양 재환도와 4대 세종의 즉위를 기점으로 법궁으로 써 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3대 임금인 태종의 한양환도 때에 또 다른 궁궐인 창덕궁이 제2의 궁궐로 창건되어 궁궐이 2개로 늘어났으며, 그 후 9대 성종 조에 이르러 창경궁이 중건되니 궁궐의 수가 3개로 늘어나게 된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궁궐의 수가 늘어났으나 그 중에서도 경복궁은 조선왕조의 명실상부한 「제1의 궁궐」로 통치자의 권위의 상징이자 국권의 중심부로 역사의 표면에 떠오르게 된다.
집은 그 의미를 잃듯이 경복궁 역시 빛을 잃게 된다. 그 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궁궐은 크게 훼손되어 고종
중건 당시의 10%정도의 전각만이 남게 되는 비운을 겪으며 공원화 되는 위기를 극복하고 현재 장기복원 계획에
의해 본래 모습을 되찾는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경복궁은 사적117호로 종로구 세종로 1-56 번지에 위치, 규모는 연 면적 약 127,000평 (416,990㎡)에 이르며, 궁궐 내에 근정전, 경회루의 국보와 자경전, 아미산 굴뚝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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