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스토리가 있는 대구 도심(매일신문)

[창간특집] 이제는 스토리 경쟁이다…세계 도시들은 스토리 전쟁중 -090707

思美 2010. 4. 1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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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이제는 스토리 경쟁이다…세계 도시들은 스토리 전쟁중
 
대구 중구 동산은 우리나라 의료선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많은 스토리들을 발굴할 보고로 꼽힌다. 지난달 17일에는 가곡 ‘동무생각’ 속 ‘청라언덕’이 동산으로 밝혀져 노래비 제막식이 열리기도 했다. 이채근 기자
오늘 대구를 대표할 스토리는 무엇인가. 세계인들에게 대구를 알릴 콘텐츠는 과연 있는가.

세계 도시들의 경쟁이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로 향하고, 감성과 문화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스토리의 중요성이 급격히 떠오르고 있다. 부수고 새로 짓는 물리적 방식에 익숙한 우리 현실로는 따라잡기 버거운 상황. 더욱이 스토리를 출판,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문화콘텐츠 산업으로 확장시키는 움직임까지 활기를 띠는 터라 발걸음은 더 바빠졌다.

매일신문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6개월여에 걸쳐 도심재창조 시리즈를 연재하며 여론조사, 아이디어와 사진 공모 등을 통해 대구 도심재생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힘을 쏟았다. 그에 이어 스토리를 통해 진정한 대구 도심재창조를 모색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번에는 도심 구석구석에 대한 답사와 주민 및 이용자 구술조사를 한층 강화하고 소설가, 화가, 건축가, 영상제작자 등과 함께 도심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작업들까지 병행하고 있다. 지면뿐만 아니라 인터넷 홈페이지, 현장 공연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시민들께 선보일 예정이다.

◆스토리의 위력

영국의 작은 해안 마을인 스카보로는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이 영화 ‘졸업’에서 부른 ‘스카보로의 추억'(Scarborough Fair)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마을에 대한 관심도는 적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상황은 확 달라졌다. 이야기꾼 한 사람 덕분이다. 언덕 위 작은 교회의 테일러 목사가 주인공이다. 그는 스카보로에 부임한 뒤 이곳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스토리의 나라 영국에 걸맞게 모든 집들이 각자의 역사를 갖고 있었으며 사연이 무궁무진했다. 그는 이 이야기들에 자신의 생각을 더해 소설을 썼다. 판타지 소설 ‘섀도맨서(Shadormancer)’는 그렇게 탄생했다. 책을 출판할 곳이 없어 자신의 오토바이를 팔아 2천500부를 찍어 나눠준 뒷이야기까지 소문 나 세계 20개 언어로 번역돼 3억부 이상이 팔리면서 스카보로는 세계인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세계 최초로 물을 상품화한 에비앙은 알프스의 작은 마을 이름이다. 물을 약처럼 팔기 위해 에비앙은 스토리를 만들었다. 1789년 한 귀족이 에비앙에서 요양하면서 미네랄이 풍부한 에비앙의 생수를 마시고 병을 고쳤다는 단순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물이 약이 된다는 브랜드 스토리는 기적처럼 성공했다.

스카보로의 나라 영국은 지난 10여년간 스토리와 영화, 게임과 음악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문화 부분의 국민총생산 점유율이 무려 8%다.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문화산업이 영국의 재도약을 이끄는 신산업혁명의 선두에 있는 것이다.

◆왜 스토리인가

그러고 보면 사람이 사는 곳에 이야기 아닌 것은 없다. 우리가 사는 공간, 우리가 만나고 웃고 다투고 헤어지는 모든 일이 이야기가 된다. 교통이 발달하고 각종 매체들이 세계 구석구석을 비추면서 사람들은 이제 단순한 물리적 공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영남대 국문과 박승희 교수는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공간 전체에 퍼져 있다고 보면 된다. 이것을 어떻게 장소성과 연결해 매력적인 스토리로 만들어 내느냐가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거나 옛 유적에 지식을 얻으려는 의도로 어딘가를 찾아가지 않는다. 장소가 지닌 이야기에 자신의 체험을 더해 자신만의 기억을 갖기 원한다. 경기도 이천 도자기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은 단순한 도자기 구경을 넘어 제작 체험을 통해 고려와 조선 도공의 애환을 함께 느끼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가슴 따뜻한 이야기 하나 함께 전할 수 있다면 축제는 절로 성공하는 것이다.

장소에 얽힌 역사와 기억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특정한 정체성을 형성하게 만드는 방식이 최근 관광은 물론 마케팅, 브랜딩 등 사회 각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인 남이섬은 대표적인 스토리 관광지다. 드라마에 나온 장소성을 최대한 활용해 방문객들에게 작품 속 주인공과 같은 환상을 느끼도록 해주는 방식이 성공으로 직결됐다. 사람들은 이제 특정 장소를 찾아가 멋진 기념품을 사는 게 아니라 오감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체험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대구 도심의 가능성은

대구는 1601년 경상감영이 들어선 이래 400년 가까이 영남의 중심으로 역할을 해 왔다. 단순한 행정 중심지가 아니라 교통과 산업, 문화의 중심이었다. 최근 도심이 쇠락했다고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는 온전히 살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심 재개발이 더뎠던 게 대구의 스토리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된 것이다.

특히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이후 인위적인 훼손이 거의 없는 도심의 1천여개 골목길은 스토리의 보고다. 매일신문사의 의뢰로 지난달 ‘진골목 콘텐츠-스토리 발굴을 위한 사례연구’를 수행한 (재)한빛문화재연구원 여수경 민속팀장은 "길었던 골목길의 허리가 잘리며 물리적으로는 짧아졌지만 골목 곳곳의 가옥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간적으로 긴 골목을 유지하고 있었다"며 "진골목만 해도 여타 도시에서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매력들을 가득 담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있는 관광지로 발전시킬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권역을 크게 보면 대구 도심은 거대한 이야기의 덩어리가 숨쉬고 있다. 동산과 근대건축물, 동산의료원을 배경으로 한 근대의료 이야기, 약전골목 일대의 약령시와 한약 이야기, 북성로 상가들의 성쇠와 애환, 경상감영을 중심으로 한 대구 변천사, 향촌동과 계산동 일대 예술가들의 삶, 성밖길과 과거길 등 드러나지 않은 도심 골목들 등 얼핏 꼽아도 예닐곱개의 이야기 뭉치들이 손에 잡힌다.

대구대 도시지역계획학과 홍경구 교수는 “전국적으로 대구만한 역사성을 내재하고 있는 도시는 서울, 평양 등 한손에 꼽을 정도”라며 “공간을 다듬어 보존하고 스토리를 입히면 대구의 미래를 바꿀 만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기사 작성일 : 2009년 07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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