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스토리가 있는 대구 도심(매일신문)

[스토리가 있는 대구 도심]<4>골목이 들려주는 이야기

思美 2010. 4. 1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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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있는 대구 도심]<4>골목이 들려주는 이야기
진골목은 담 높이가 다소 높지만 적절한 폭을 갖고 있어 다니기에 편안한 감을 준다.
 
진골목은 대구 도심의 명소로 꼽히지만 입구가 너무 폐쇄적이고 상징성이 없어 대구 사람들조차 찾기 어렵게 만든다.
 
진골목식당 거실 천장은 유려한 곡선과 짙고 옅은 색깔이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길은 역사다. 단순히 사람과 자동차가 이동하기 위한 통로가 아니다. 사람이 설계하고 공사했다고 존재를 인정받지는 못한다. 오랜 시간 사람의 발자국이 켜켜이 쌓이고 삶이 배어야 길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역사 속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골목길이 진정한 길로 대접받는 이유다. 일제강점기 때 새로 뚫린 종로와 중앙로 사이에서 진골목이 영남제일관과 경상감영을 잇는 통로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좁고 긴 진골목과 그 속 건축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역사가 들려주는 울림이 있을 것이다. 경북대 건축공학과 이정호 교수와 함께 진골목을 답사했다.

◆큰길과 골목

종로 홍백원 앞이 진골목의 한쪽 입구다. 거기서 종로와 진골목을 번갈아 보며 1930년대 어느 날을 상상해보자. 뻥 뚫린 신작로에 즐비한 요정과 화교상점 너머 일본인 헌병들이 눈을 부라리는 장면이 종로 쪽이다. 들어가면 금세 굽어 안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 진골목 쪽. 경상감영 쪽에 볼일이 있다면 어느 길을 선택할까.

일본인들이 신작로를 내기 이전에도 인위적으로 만든 길은 위계를 중시했다. 종로는 4대문 가운데 가장 큰 영남제일관(현재 종로와 남성로가 만나는 곳에 있던 읍성 남문)에서 경상감영에 이르는 길인 만큼 일반인들이 다니기엔 불편했을 것이다. 진골목에 아무리 달성 서씨를 비롯한 부잣집이 많았다고 해도 편하기로 치면 관찰사가 다니던 종로보다 한결 나았으리라 추측된다.

유럽 도시의 길은 고색창연하지만 이야기를 품기 어려운 구조다. 지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3, 4층의 건물 사이로 좁게 난 길은 어김없이 광장을 향해 있고, 거기서 모든 일이 벌어진다. 길은 건물 높이보다 훨씬 좁고 광장은 건물 높이의 2배 정도 폭으로 만드는 게 유럽 도시의 기본 모형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도시는 선형이다. 길은 주거들이 밀집한 사이를 지나며 만나고 헤어진다. 담 높이는 대개 1.5~2m, 길의 폭은 그보다 약간 넓은 2~3m다. 주변 건물과 일 대 일 안팎의 비례를 가진다. 골목길이 편안한 이유는 비례의 묘미에서 비롯된다.

◆진골목의 매력

골목은 단순히 집과 집 사이로 뚫린 좁은 길이 아니라 삶의 공간이다. 골목이 곧 마당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도시에 존재하는 많은 위험들도 쉽게 침범할 수 없다. 골목은 이웃들과 교류하는 사회생활의 장이 되고, 동네 꼬마들이 뛰노는 놀이터가 되고, 집주인과 행상이 생필품을 흥정하는 가게도 된다. 골목길이 정남향이 아니라 적당히 그늘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놓이는 것, 장애물을 피하고 어울리며 이리저리 꺾이는 것 역시 삶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진골목은 이런 요건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자동차로 다닐 수 없어 걸어야 한다는 사실은 진골목을 구석구석 세심하게 보도록 도와준다. 진골목 집들의 담만 잘 봐도 재미가 있다. 부잣집들이 많아서였는지 비교적 높지만 골목의 폭이 적절해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한옥이 개량되면서 엉터리 구조물들도 많이 생겼지만 멋스런 담들이 여러 군데 보인다. 예컨대 진골목 초입의 삼성식당 담의 마감 방식은 20세기 초의 형태다. 수작업을 해서 뿌린 돌 틈에 이끼가 끼고 세월이 담겼다. 요즘 기계로는 아무리 해도 이런 맛이 나지 않는다.

◆건축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들

진골목의 건축물들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옥과 근대 건축이 어우러져 책 한 권은 족히 나올 분량이라고들 한다. 진골목식당 한곳만 봐도 이야깃거리가 무성하다. 이정호 교수는 입구를 두고 ‘건축가 없는 건축’이라고 표현했다. 생활 주변의 재료를 사용해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꾸몄다는 데 의미를 줬다. 식당 문을 열면 발 아래 잘 다듬어진 돌이 보인다. 대구읍성 돌이다. 크기나 모양으로 봐서 읍성의 주요 부분에 쓰였을 것이다. 마당 바닥에 흙이 없는 건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양식이다. 외형은 한옥이지만 내부는 한식과 일식, 서양식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섞여 있다. 한국적 비례인데 서양식 기하로 디자인돼 있는 벽장만 봐도 그렇다. 거실의 천장 들보와 서까래는 굽은 것을 썼다. 방의 천장을 비교적 곧은 나무로 만든 것과 비교하면 한껏 멋을 부렸다.

진골목의 건물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정소아과의원 건물이다. 1937년 화교건축가 모문금이 설계, 건립한 주택인데 유럽의 영향을 받은 일본식 건축풍이라고 하니 당시의 세계적 문화 격변을 짐작할 수 있다.

◆입구와 바닥의 아쉬움

진골목은 대구 도심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유명세에 비해 입구부터 너무 초라하다. 큰길에 닿아 있는 홍백원은 큰길의 폭에 맞춰 지었기 때문에 3층이다. 골목 입구를 폐쇄적으로 만들고 말았다. 큰길과 맞닿은 골목 입구 건축물들의 공통된 문제점이지만, 내버려두기엔 진골목이 갖는 가치가 너무 아깝다. 이 교수는 “어떤 형태로든 공개공지 개념으로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확보해 진입부를 상징하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골목의 분위기를 망치는 또 하나의 주범은 하수도다. 필수적이긴 하지만 숨어서 눈에 띄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수도 위를 시멘트로 덮고, 쇠판을 덮은 게 골목 분위기와 맞지 않아 너무 눈에 거슬린다. 1970년대 이후에 새마을 사업으로 설치된 것이니 한계가 있겠지만 서둘러 정비할 필요가 있다. 부자들이 많이 살았던 진골목이 1970년대 초반까지 하수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비만 오면 진흙구덩이가 됐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기사 작성일 : 2009년 0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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