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대구 도심]<5>진골목 스토리 ④세월 따라 달라진 풍경 | |||||||||||
▲육개장과 호박전, 골목을 바꾸다
“호박전이 제일 인기였지. 1년에 호박값만 700만원 나갔어. 한 개 8천원 정도. 1년 열두 달 호박을 계속 사야 해. 다른 데 가면 호박전을 조그맣게 굽는데, 연구를 했지. 호박을 삶아가지고 넓적하게 구웠는데 손님들 반응이 너무 좋은 거야. 다른 음식은 팔아봐야 이문이 별로 없는데 호박전은 좀 나았어. 장사하는 데 참 효자였지.” 정예숙(59·여)씨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진골목을 지금의 얼굴로 바꾸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육개장과 육국수, 호박전과 콩나물밥을 전국적인 명물로 만든 주역이다. “염매시장에서 식당 하다가 1986년에 진골목으로 들어왔어. 그때는 식당이라고 해봐야 두 집, 으슥한 골목이었지. 처음엔 국수를 팔았어. 손님이 늘면서 국수만 먹으면 질린다고들 해서 육개장을 끓이기 시작했지. 그런데 너무 맛있어서 낮에 12시40분만 되면 국이 떨어지는 거야. 저녁에는 새로 안 끓이니까 몇 솥을 끓여도 낮에 잠시 팔면 끝이었지. 그러다 보니 오전 11시30분만 되면 어르신들이 오기 시작하더라고.” 맛 내는 비법을 묻자 정씨는 “좋은 재료를 쓰고 많이 넣으면 맛은 절로 난다”고 했다. “한번은 육개장을 조금 더 팔아보잔 욕심에 물을 좀 더 부은 적이 있어. 그랬더니 손님들이 금세 알아차리시더군. 어르신들께 꾸지람 많이 들었어. 그날을 늘 가슴에 새기며 살지.” 종로 일대를 드나들던 중장년층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진골목에 식당이 하나 둘 들어섰다. 1980년대 들어서도 영업을 하던 요정들도 골목의 변화에 따라 하나 둘 간판을 내렸다. 최고급 요정이 떠난 자리를 중저가 식당들이 차지했으니 골목의 변천이 참 묘하다.
▲전통의 삼색 맛이 교차하다
진골목은 1970년대 후반 동서간 소방도로 2개가 뚫리면서 허리가 잘려 푸근함과 정취를 잃고 말았다. 긴 골목이라는 이름도 무색해졌다. 하지만 소방도로는 중앙로와 종로, 그 사이의 진골목을 소통시켜 새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화교들이 정착한 종로에는 일제시대부터 유명한 중국요리집이 많았다. 영생덕, 복해반점, 경미반점 등이 지금까지도 맛과 전통을 자랑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진골목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새로 난 농협 옆 소방도로에 식당들이 들어섰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종로초밥과 미성초밥이 대표적이다. 비싸지 않은 회와 초밥, 오뎅국물과 정종이 수많은 중장년층 단골들을 만들었다. 오랜 솜씨가 빚어낸 독특한 일식요리는 종로의 또 다른 명물이다. 여기에 육개장과 빈대떡, 탕과 찌개를 주요 메뉴로 하는 한식당들이 진골목에 들어서니 전통 있는 한·중·일식을 한곳에서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지역이 됐다. 종로초밥은 물론 일대의 보리밥집과 갈치찌개집 등이 저마다 30년 전통을 내세우는 유래다.
▲중절모와 넥타이
진골목에는 현재 식당이 여럿 들어와 있지만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때문에 골목의 주인은 주민이라기보다 식당과 상가 이용자들로 보는 게 좋을 듯하다. 가장 많이 진골목을 점유하는 건 노년층이다. 진골목 한가운데에 있는 미도다방을 중심으로 하루 500~1천명의 어르신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식당마다 오랜 단골이 있지만 전체적인 평판은 미도다방에서 판가름난다. 대구 각지의 단골 어르신 300~400명이 거의 매일 ‘출근’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식당의 맛이나 서비스는 여기서 금세 소문난다. 정예숙씨는 “이 동네에서는 음식값을 살짝 올린다거나 맛이 바뀌면 점심 식사 후 곧바로 퍼진다”며 “장사 흥하고 망하는 게 어르신들 평가에 달렸다”고 말했다. 정소아과옆에서 등나무식당을 하는 김경희(58·여)씨는 “10년 이상 변함없이 찾아오는 단골들이 많다”며 “70대면 젊고 80대, 90대 어르신도 자주 찾으신다”고 했다. 김씨가 자신있게 내놓는 추어탕에는 뻑뻑할 정도로 고기가 많았다. “조금만 고기를 적게 써도 나무라시니 남는 게 적어도 어쩔 수가 없어요. 12년째 이 식당을 하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달이 모임을 갖는 분도 있어요. 항상 같은 음식만 잡수러 오시니 메뉴를 바꾸기도 쉽지 않아요. 이젠 손님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반찬, 넣으면 안 되는 것까지 알기 때문에 별말씀이 없으시면 집처럼 알아서 상을 차려드리죠.” 진골목의 또 다른 이용층은 직장인들이다. 동아쇼핑, 삼성프라자 등에서 가까운 진골목의 남쪽 식당들에는 점심시간마다 직장인들이 몰려든다. 진골목식당을 비롯해 일대 식당에선 노인들과 직장인들이 뒤섞여 앉은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다. 저녁시간의 경우 종로초밥 골목에서 비슷한 풍경이 벌어진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들어오기엔 아직 힘들어 보인다. 김경희씨는 “중앙시네마가 영업할 때 젊은 사람들을 끌기 위해 분식 메뉴도 넣어봤지만 전부 동성로로 건너가더라”며 “한옥과 어르신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때문에 진골목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진골목은 이제 또 한 번의 변화를 앞두고 있다.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조성공사가 끝나는 올해 말쯤에는 동성로의 상권과 종로의 상권이 어떻게 연결될지, 그 한가운데 있는 진골목이 어떤 얼굴로 바뀔지 자못 기대된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 |||||||||||
기사 작성일 : 2009년 07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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