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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서 신나게"…예전만 해도 도심에는 달성공원 외에는 시민들이 이용할만한 놀이공간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원목 야치장에서 칼놀이를 하거나 동네골목에서 구슬치기, 말타기 놀이 등을 즐겼다. 노인들은 공터만 있으면 삼삼오오 모여 소일을 했다. 사진은 60년대 달성동 달서천 복개 공사중 거푸집공사가 끝난 다리 콘크리트 상판위에서 놀고 있는 동네 꼬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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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어라∼"…60년대 중구 달성동 자갈마당 근처에 복개중인 달서천. 다리 버팀목 구실을 하는 콘크리트 기둥을 잡고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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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엄마 따라 신천에 나온 아이들. 맨 왼쪽 아이는 모나미 볼펜을 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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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경북 한 어촌 마을의 깡통 든 꼬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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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비산동은 동구 신천동과 함께 6·25 직후 숱한 피란민이 모여 '달동네 판자촌'을 형성했던 서민 동네였다. 아낙네들은 달서천에서 빤 빨래를 널 데가 없어 임시방편으로 철조망 담장에서 말릴 수밖에 없었다. 동네 꼬마녀석들이 올챙이떼처럼 오글오글 모여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생활은 어려워도 아이들의 미소는 티없이 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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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대구의 한 주택가에서 일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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