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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구로에서] 대구사람 전태일과 조영래
- 2015-12-09
1년이란 시차 두고 태어난
한국 현대사의 두 거목…
인권을 향한 불꽃같은 삶
지역서 품고 재조명해야
풍수가들은 대구의 지맥이 비슬산~앞산~삼봉산~연귀산~남산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 가운데 삼봉산은 지금 수도산으로 불린다. 봉덕동, 대봉동, 봉산동은 이 삼봉(三鳳)에서 유래됐다. 삼봉은 3형제 설화를 낳았다. 지금은 복개됐지만 신천에서 갈라진 대구천은 이 동네를 지나고 있다. 대구천 가운데 지점에 대구사람이면 다 아는 유서 깊은 건들바위가 있다. 이 건들바위를 중심으로 북서쪽으로 1.5㎞, 동쪽으로 약 500m 지점에 한국현대사에서 큰 획을 그은 두 거목이 태어났다. 바로 노동자 전태일(1948~70)과 변호사 조영래(1947~90)다.
전태일과 조영래는 한국에서 각각 ‘노동운동의 상징’과 ‘인권옹호의 표석’으로 불린다. 1년이란 시차를 두고 대구시 중구 남산동 50번지와 중구 대봉동 309번지에서 태어났지만 둘은 평생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조영래가 6년간의 수배생활 기간에 고(故) 전태일의 평전을 쓰면서 둘은 만났다. 혹자는 이를 두고 ‘영혼의 만남’이라고 한다. 전태일은 조영래를 통해 부활했고, 조영래는 전태일을 부활시킴으로써 마르지 않는 인권의 샘물이 됐다. 조영래는 전태일이 죽기 전 “법대생 친구가 한 명 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을 듣고 영원한 친구가 됐다. 조영래는 전태일의 죽음을 일러 ‘인간선언’으로 명명했다. 전태일은 분신을 통해 노동자로서 인간답게 살고 싶어했고, 조영래는 법률가로서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전태일은 22세에 분신으로, 조영래는 43세에 시대암(時代癌)이란 폐암으로 요절했지만 둘 다 인권과 정의, 민주주의를 향한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그래서 전태일에겐 ‘아름다운 청년’ ‘꺼지지 않는 불꽃’이란 말을, 조영래에겐 ‘위대한 법률가’ ‘법조인들의 영원한 귀감’이란 수식어를 붙이길 마다하지 않는다. 둘은 온몸으로 시대와 부딪쳐 새 길을 열었다. 두 인물에 대한 평전은 이미 출간됐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란 극영화와 ‘조영래, 꺼지지 않는 불꽃’이란 기록영화도 나왔다. 추모와 기념사업도 매년 이어져 위대한 두 인물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둘의 활동무대와 타계한 곳이 서울이고, 추모사업회도 서울에 있다보니 전태일과 조영래가 서울 출신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뿌리인 대구에서 전태일과 조영래를 불러내 추모하고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무척 고무적이다.
지난달 13일 전태일 열사 타계 45주기를 맞아 대구 시민 500여명이 1천500여만원의 성금을 모아 2·28기념중앙공원에서 대구시민문화제를 열었다. 전태일의 생가터와 생거터를 답사하고 세미나를 여는 한편 공연과 전시회도 가졌다. 앞으로 ‘전태일 시민공원’을 조성하고 ‘전태일 노동역사박물관’도 건립하겠다고 한다.
같은 달 30일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조영래 변호사 25주기를 맞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조영래 변호사 기념전시회’를 개막했다. 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기념책자와 CD도 냈으며 흉상도 만들었다. 최근 대구지역 지식인들은 11일 서울에서 폐막되는 조영래 기념전시회를 대구에서 다시 열고 조영래 변호사의 생가터를 찾아 동판으로라도 표시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전태일과 조영래를 대구에서 품고 대구 출신이란 걸 알리는 건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본향 대구’라는 닉네임 말고도 ‘인권도시 대구’라는 별칭을 얻을 수 있는 인적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하지 않는가.
박진관 주말섹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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