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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야구의 역사…1906년 계성학교 선교사가 첫 보급 -2009/11/05-

思美 2010. 4. 1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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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야구의 역사…1906년 계성학교 선교사가 첫 보급
 
1910년대 야구. 두루마기 차림으로 시구를 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우리나라에 야구가 소개된 것은 1905년 YMCA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에 의해서였다. 대구에서는 1906년 계성학교를 설립한 선교사들이 야구 글러브를 보급하면서 알려졌으며, 1912년 계성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이 벌인 경기가 첫 시합으로 전해진다.

1914년 7월 말 대구 첫 공식 야구경기가 열렸다. 동경유학생 야구팀이 대구를 방문, 대구의 청년단과 경기를 벌인 것. 1920년에 대구청년회가 결성됐고 여기에 야구부가 만들어져 원정 경기를 다니며 야구 보급의 주역이 됐다. 그해 가을 경남 마산으로 원정 간 대구청년회팀은 일본인들이 많이 살아 야구가 일찍 보급된 마산팀을 맞아 7대2, 17대2로 대승하기도 했다.

1922년에는 대구 첫 야구대회가 열렸다. 참가팀은 대구고보, 희도학교, 해성학교 등 7개팀이나 됐다. ‘부민들의 야구에 대한 관심이 대단해 오전 9시가 못 돼 동운정 야구장은 초만원을 이뤘다. 학교, 단체마다 꽹과리, 징을 든 응원단의 치열한 응원전이 펼쳐졌다. 해성학교는 1회전에서 희도학교를 19대16으로 이긴 뒤 성진단, 광진단을 차례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경북체육사)

야구왕으로 불리는 이영민은 계성학교 출신이었다. 서울 배재고로 옮겨간 그는 1924년 전조선야구대회에서 주전으로 활약해 우승했고, 이어 벌어진 전조선축구대회에서도 오른쪽 공격수로 출전, 우승을 이끌었다. 대한야구협회가 ‘이영민타격상’을 제정할 만큼 명타자였으나 축구와 육상에서도 조선 대표팀으로 뽑혀 활약했다.

1920년대 후반에는 계성학교 외에 대구고보, 대구상업에서도 학생들끼리 야구부를 조직해 중학교 팀이 7개였고, 소학교 팀도 10개나 됐다. 1930년대에는 대구전매국, 경북도청, 대구부청, 남선전기 등 직장야구단이 정기적으로 경기를 벌이며 야구열기를 이끌었다.

김재경기자

기사 작성일 : 2009년 11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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