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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있는 대구 도심] 55년 산증인 성송자씨 | |
“옛날에는 아주 컸어요. 대구 생기고 제일 큰 장이고, 좋은 물건이 제일 많이 났어요. 동아쇼핑 생기고 상인들이 터를 다 내주는 바람에 쪼그라들었죠.” 스물넷에 시집오자 바로 장사를 시작한 성씨는 화장품을 비롯한 잡화를 팔았다고 한다. 서울에서 피란 온 사람이 대주는 화장품과 치약, 속옷 등을 10년쯤 팔다가 건어물 가게로 전환했다. “옛날에는 지금 자리가 뒷골목이고 큰길가가 시장이었어요. 거기서 건어물을 팔았지요. 화장품 장사는 아모레 나오고 안 되기 시작해 빚까지 졌어요. 애들 공부를 시켜야 하니 어떻게든 살게 해 달라고 갓바위 가서 빌었어요. 내려오는데 보니까 젓장사가 지나가길래 새우젓을 사 와서 장사를 새로 시작했어요.” 성씨는 염매시장의 흥성기를 떠올렸다. “염매시장에서는 음식이 제일 고급이어서 요리사들은 모두 이 시장에 와서 좋은 물건들을 사 갔어요. 그러다 보니 포목전도 잘 되고 떡전도 잘 되고 모든 게 잘 됐지요. 대포변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몇백 명이나 됐고 포목점만 30명이 넘었어요.” 동아쇼핑이 들어서면서 성씨는 가게를 큰길에서 골목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떠다니면서도 염매시장 장사로 자녀들 대학공부를 시키고 결혼까지 시켜 손녀가 대학원에 다닌다는 성씨는 이제 장사도 그만둘 생각이라고 했다. “애들도 다 보내고 시장도 이리 됐으니 이젠 내 인생이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요. 1년쯤 하고 장사도 그만 접으려고요.” 염매시장의 성쇠가 그의 고단한 몸에 그대로 비쳤다. 김재경기자 | |
기사 작성일 : 2009년 10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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