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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던 이육사(본명 이원록) 시인이 1927년 장진홍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 있던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수감번호 64번을 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영남일보 로컬퍼스트 골목탐사팀과 거리문화시민연대의 대구신택리지가 공동기획한 '골목'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거나, 기억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이야기들을 전해드립니다. 고단한 현실속에서 희망의 열매를 가꾸며 오늘을 살아가는 대구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주려고 합니다. '제 땅을 밟아보지 않고는 제 나라를 사랑할 수 없다'고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는 말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골목'을 읽다보면 미처 알지못했던 대구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뿐 아니라 대구에 대한 애정도 새롭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영남일보 '위클리포유'를 차곡차곡 모아두시면 외지에서 대구를 찾은 친구나 친지들에게 대구를 알릴 훌륭한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자녀와의 대화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겠죠. 교실에서 미처 배우지 못했던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건축물, 인물 등을 자녀들과 골목을 걸으며 만나본다면 분명 만점 부모가 되실 겁니다. 연인들에게는 기억에 남을 데이트 장소를 찾는데도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던 골목에 '의미'를 부여할 때 골목은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의 가슴에 다가올 것입니다. /이지용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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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산책로 따라 호젓하게…운 좋으면 돌도끼도 발견할 수 있어 담장 너머엔 비산동 낡은 골목길…600년전 석축도 볼 수 있어요
달성에 와서 잘 가꿔진 공원 길로만 돌아다니는 것은 그야말로 놀 줄 모르는 이들이 할 일이다. 달성(達城)은 말 그대로 원래 성(城)이었다. 대구에서 축성된 최초의 성으로 경주의 월성(月城)과 비슷하게 자연적인 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토성이었다. 그러니 달성에서 놀려면 적어도 토성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 달성공원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꺾어 향토역사관을 따라 가면 토성 산책길이 시작된다. 산책길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좀 더 호젓하게 토성의 멋을 음미하려면 공원 담장 안쪽 기슭을 따라 걷는게 좋다. 토성 산책길 입구에서 조금만 가면 '대구 달성' 소개 입간판이 있다. 간판 아래로 오래된 회화나무가 보이는데, 나무 쪽으로 내려가서 출발(①번)하자. 흙길이 가파르니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출발하길. 담장 안쪽을 따라 죽 걷다보면 공원 담장 바깥으로 비산동 낡은 골목의 아기자기한 풍경이 눈앞으로 펼쳐진다. 천왕마을길, 말천왕길, 상천왕길 등 골목 이름도 재미있다. 눈을 안쪽으로 돌려 토성 자락 곳곳에 남아 있는 석축(石築) 일부를 찾아보자. 고려시대 때 토성에 석축을 쌓았다고 하는데, 팥 색깔의 안산암인 석축 흔적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석축을 쌓은 연도가 1390년이니, 여러분은 지난 600여년 세월 동안 이 곳에 있던 돌들과 만나고 있는 셈이다. 운이 좋으면 옛날 토기가 부서진 흔적, 혹은 돌도끼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땅을 파보는 행동은 자제하시길. 이 곳 석축을 쌓은 돌은 대구읍성을 쌓은 돌, 봉산동 거북바위의 돌과 같은 종류, 같은 색깔이다. 팔달교 지나 칠곡 가는 길 기슭에서 이런 색깔의 안산암이 많이 났다는 기록이 있단다. 1㎞ 남짓 걸었을까. 공원 담장 철책이 거의 끝나는 지점(②번)에서 산책길 위로 올라가야 한다. 더 진행하려고 해도 그 쪽으로는 길이 없다. 흙길이 가파르니 다시 한번 신발끈 확인! 올라가면 바로 벤치 두 개가 담장 쪽을 보고 있다. 토성 산책길에서 보면 멀리 북구 침산까지 대구 서북쪽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전후(戰後) 판자촌이 형성됐던 곳, 곳곳에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는 것도 보인다.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여기서부터는 신발끈 신경 안 쓰고 여유롭게 산책길을 걸으면 된다. 근처에 매점이 있으니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으며 소풍 기분을 내는 것도 괜찮겠다. 연못의 오리, 침팬지 등을 구경하며 동물원을 따라 어느 새 토성 한바퀴 다 돌았다. 달성 이천년 세월의 흔적을 밟아본 셈이다. 달성공원은 달성서씨 집성촌(고려시대)→행정·군사 중심지(조선시대)→대구신사(神社·일제강점기)를 거쳐 1970년 대구의 처음이자 유일한 동물원이 됐다. 동물원 설계자는 조선의 마지막 왕위 계승권자였던 영친왕 이은의 아들 이구. 그는 당시 한미합작설계용역회사 회장이었다. 90년대 서구식 놀이공원인 우방타워에 대구의 '대표공원' 자리를 내어준 현재, 전문 사육 시설이 없는 동물원으로 위치가 어정쩡하다. 그래서 달성공원이 아닌 달성토성으로 복원하자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토성이 별 모양으로 생겼다고 한다. 전쟁에서 별 모양의 성은 아군에게 절대 유리하다. 언젠가 달성 토성이 복원되면 토성 한바퀴 돌기에 더해 하늘에서 토성을 내려다보는 것도 꼭 권유하겠다. 다음 회는 달성공원(下) '비석과 음식'입니다. |
200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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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만해도 제법 쏠쏠했지 집에서는 나도 디카로 사진 찍어"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달성공원의 고정된 풍경처럼 수십년 동안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들이 나온 시민들을 맞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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