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영남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3] 경상감영-구석구석 훑어보니 -070329-

思美 2010. 4. 1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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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3] 경상감영-구석구석 훑어보니
가는 곳마다 역사의 흔적 "박물관이 따로없네"
선화당 우물천장 龍그림은 전국 유일…징청각도 건축적 가치 높아
완연한 봄이다. 꽃망울을 터뜨리고 화사하게 웃는 봄꽃들이 손짓한다.

400여 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심속 공원 경상감영공원. 봄바람이 살랑이면서 방문객이 점차 늘어난다. 10여 년 전 담장을 허문 덕분에 깔끔하게 정돈된 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

단청 팔작 기와집인 선화당(宣化堂) 앞쪽엔 두그루의 살구나무가 옅은 붉은색 꽃을 활짝 피우고 방문객 눈길을 잡는다. 공원 둘레를 감싼 왕벚나무도 현란한 꽃물결을 이루고 있다. 영산홍, 철쭉, 라일락, 병꽃나무 등 제철 맞은 봄꽃들도 개화 차례에 맞춰 얼굴 내밀 채비를 하고 있다.

붐비는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어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이 하나 둘 찾는다. 어떤 이는 산책로를 따라 걷고, 어떤 이는 벤치에서 책을 읽는다. 멀리 구석진 벤치에는 간밤에 잠이 부족했던지 노숙인 차림의 50대가 잠을 청하고 있다.

복잡다단한 도시 생활에 찌든 시민들이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거리에 공원이 있어 좋다. 공원을 찾는 이들은 하나같이 여유있는 표정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주변 상가와 달리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이다.

동편 상가 빌딩에선 오전부터 '뿡짝 뿡짝' 트로트 음악이 들려온다. 대구에서 소문난 노인들의 놀이시설 '성인텍'이 20곳가량 있기 때문. 주머니 부담없이 한차례 '스테이지'를 하고 난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공원으로 들어온다. 점심시간이 되자 인근의 직장인들도 자판기 커피를 빼들고 봄기운을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한편에서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유치원생들이 줄을 지어 산책로를 따라 가고 있다. 호기심에 가득찬 표정이다.

1601년에 설치된 경상감영은 400년 영욕의 세월을 보낸 만큼이나 시민들의 쉼터 역할과 함께 적잖은 볼거리도 제공한다. 신도시에 조성된 여느 공원에선 볼 수 없는 '역사(歷史)'를 간직한 때문일 게다.

선화당(宣化堂)은 관찰사가 집무을 하던 건물로 선조 13년 1607년 창건되었다. 세차례 화재로 소실돼 현재 건물은 1807년에 재건된 것. 선화당은 특이하게도 우물 천장에 용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런 우물천장과 용 그림은 현존하는 전국의 다른 감영 선화당에는 없다. 용 문양 바로 밑에 관찰사 집무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선화당 뒤편 왼쪽에 있는 징청각(澄淸閣)은 경상감영 관찰사의 처소다. 선화당과 마찬가지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중건된 건물이나 현재 있는 징청각 건물로는 전국에서 유일해 건축적 가치가 높다.

공원 입구 한켠에는 '절도사이하개하마(節道使以下皆下馬)'라고 쓰여진 비석이 있다. 당시 경상절도사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이 지점부터 말에서 내려 감영에 들어와야 한다는 뜻한다.

징청각 뒤쪽을 가면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비석들이 줄을 서 있는 비림(碑林)이 있다. 경상관찰사와 대구판관 등의 바른 정치와 치적을 기리는 선정비(善政碑) 등 모두 27기가 있다. 선화당 앞에는 측우대라 적힌 대리석이 있다. 영조 4년 1770년에 만든 것으로, 현재 측우기는 없어지고 받침대만 남아있다.


다음 회는 '사라진 대구읍성'입니다.

2007-03-29

 

명나라 장수 '두사충' 과 경상감영 자리
풍수지리에 일가견 있었던 그가 '하루에 천냥이 나오는 터' 라며 두아들과 귀화후 처음 정착한 곳

다른 나라의 국적을 얻어 다른 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것. 목적이 무엇이든 익숙한 모국어와 정든 고국을 버리고 낯선 곳에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용기'를 필요로 할 터. 지금도 쉬운 일이 아닌데, 교통·통신이 발달되지 않았던 16세기라면 그 용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임진왜란(1592년)때 우리나라에 원병으로 왔던 명나라 장수 두사충(杜師忠)은 7년 뒤 정유재란 때 다시 두 아들과 함께 와서 난이 평정되고 난 후 귀화했다. 풍수지리에 일가견이 있었던 그가 처음 정착한 곳이 바로 현재의 경상감영 자리. 대구의 정기는 비슬산에서 시작하며 그 맥이 최정산(앞산)-삼봉산(수도산)-연구산(자라바위)-아미산(남산동)일대로 와서 멈추는데, 감영 자리는 아미산(지금의 반월당 적십자병원)에서 천 걸음을 걸어 닿은 곳이었다. 두 아들에게 '이 터는 하루에 천냥이 나오는 자리'라고 했다 한다.

선견지명! 일제시대부터 도청이 들어서면서 이곳은 대구 최고의 상권지가 된다. 감영 옆의 향촌동은 광복 이후에도 중심상권으로 말 그대로 '하루에 천냥'을 버는 곳이 되었다.

한편 1601년 감영이 들어서자 그는 현재의 계산동 일대로, 그 후 다시 최정산(앞산) 밑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수성구 만촌동 모명재(慕明齋·사진)는 1912년 그 후손들이 지은 재실. 명나라(明)를 사모(慕)하는 재실이라는 뜻이니, 고국을 잊지 못한 장수의 인간적 아픔이 전해질 것만 같다. 대구시 시티투어 코스. 재실 뒤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형제봉 기슭에 그의 묘가 있다.


 

주변에 어떤 맛집 있나
매콤한 국물이 일품인 돼지국밥집 많아
대구지역 생고기·육회 원조식당도 있어
65년 전통 설렁탕집도 종로초등 뒷길에
경상감영공원에는 실버세대의 느긋함이 녹아 있다. 그래선지 경상감영공원 주변은 50대 이상의 입맛을 사로잡는 맛집이 많다.

공원 인근 중앙상가는 군위식당, 꿀꿀이 등 돼지국밥집으로 유명하다. 깔끔하고 시원 매콤한 국물에 그릇 가득 담긴 부드러운 육질의 돼지고기, 정갈한 새우젓갈, 알맞게 익힌 김치가 일품이다. 한 술 뜨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돼지국밥 한 그릇에 3천500원.

불쑥 소주 한 잔에 생고기가 그립다면 대보백화점옆 좁은 골목길의 너구리와 녹양구이, 달착지근한 막걸리에 홍어가 당기는 날은 중앙상가안의 유경식당이 좋다. 1958년경 문을 연 너구리는 대구 생고기·육회의 원조. 홍탁삼합(막걸리+홍어회+김치+돼지고기·3만~5만원)의 유경식당은 생대구탕(2만원)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종로초등 뒷골목에 있는 65년 전통의 부산설렁탕(5천원·사진)은 공원 주차장 바로옆 마산설렁탕과 쌍벽을 이룬다. 찰진 밥 한 그릇과 맑은 국물에 씹을수록 쫀득한 고기 몇 점, 국수 몇 가닥을 후루룩 말아먹는 맛이 그만이다. 다대기를 넣고 깍두기 국물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

공원 바로 앞의 굴국밥(5천원) 식당인 '싱싱굴·뚝배기 전문점'과 수제비(2천500원)가 대표 메뉴인 '장터라면·국수'는 떠오르는 맛집이다. 대구 전통음식의 상징인 따로국밥(4천원)의 명문 국일·교동·대구식당도 진을 치고 있다. 추어탕 전문의 관음식당, 40년 전통 맥향다방, 마산아구찜, 미가도초밥 등 경상감영공원 주변 음식문화는 재료 특유의 맛에 추억이 양념으로 얹혀 깊은 중독성마저 띤다.
/이애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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