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영남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1] 달성공원(上) -이렇게 둘러보세요 0315

思美 2010. 4. 1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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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l First 골목] 시리즈를 시작하며
'1909년 1월 12일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대구를 방문한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이 달성공원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이즈카향나무가 아직도 자라고 있는 것을 아십니까?'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던 이육사(본명 이원록) 시인이 1927년 장진홍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 있던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수감번호 64번을 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영남일보 로컬퍼스트 골목탐사팀과 거리문화시민연대의 대구신택리지가 공동기획한 '골목'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거나, 기억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이야기들을 전해드립니다. 고단한 현실속에서 희망의 열매를 가꾸며 오늘을 살아가는 대구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주려고 합니다.

'제 땅을 밟아보지 않고는 제 나라를 사랑할 수 없다'고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는 말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골목'을 읽다보면 미처 알지못했던 대구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뿐 아니라 대구에 대한 애정도 새롭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영남일보 '위클리포유'를 차곡차곡 모아두시면 외지에서 대구를 찾은 친구나 친지들에게 대구를 알릴 훌륭한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자녀와의 대화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겠죠. 교실에서 미처 배우지 못했던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건축물, 인물 등을 자녀들과 골목을 걸으며 만나본다면 분명 만점 부모가 되실 겁니다. 연인들에게는 기억에 남을 데이트 장소를 찾는데도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던 골목에 '의미'를 부여할 때 골목은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의 가슴에 다가올 것입니다.
/이지용기자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1] 달성공원(上) -이렇게 둘러보세요
토성 산책로 따라 호젓하게…운 좋으면 돌도끼도 발견할 수 있어
담장 너머엔 비산동 낡은 골목길…600년전 석축도 볼 수 있어요
'골목'이 선택한 '1번타자'는 달성. 대구의 옛 이름 달구벌은 바로 달성(달구성에서 줄어진 이름)에서 유래됐으니, 충분한 대표성이 있다. 아 참! 잊기 전에 명확히 해 놓을 것은, 여기서 달성은 현재의 달성군이 아니라 달성공원을 말한다는 점.

달성에 와서 잘 가꿔진 공원 길로만 돌아다니는 것은 그야말로 놀 줄 모르는 이들이 할 일이다. 달성(達城)은 말 그대로 원래 성(城)이었다. 대구에서 축성된 최초의 성으로 경주의 월성(月城)과 비슷하게 자연적인 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토성이었다. 그러니 달성에서 놀려면 적어도 토성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

달성공원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꺾어 향토역사관을 따라 가면 토성 산책길이 시작된다. 산책길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좀 더 호젓하게 토성의 멋을 음미하려면 공원 담장 안쪽 기슭을 따라 걷는게 좋다. 토성 산책길 입구에서 조금만 가면 '대구 달성' 소개 입간판이 있다. 간판 아래로 오래된 회화나무가 보이는데, 나무 쪽으로 내려가서 출발(①번)하자. 흙길이 가파르니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출발하길. 담장 안쪽을 따라 죽 걷다보면 공원 담장 바깥으로 비산동 낡은 골목의 아기자기한 풍경이 눈앞으로 펼쳐진다. 천왕마을길, 말천왕길, 상천왕길 등 골목 이름도 재미있다.

눈을 안쪽으로 돌려 토성 자락 곳곳에 남아 있는 석축(石築) 일부를 찾아보자. 고려시대 때 토성에 석축을 쌓았다고 하는데, 팥 색깔의 안산암인 석축 흔적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석축을 쌓은 연도가 1390년이니, 여러분은 지난 600여년 세월 동안 이 곳에 있던 돌들과 만나고 있는 셈이다. 운이 좋으면 옛날 토기가 부서진 흔적, 혹은 돌도끼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땅을 파보는 행동은 자제하시길. 이 곳 석축을 쌓은 돌은 대구읍성을 쌓은 돌, 봉산동 거북바위의 돌과 같은 종류, 같은 색깔이다. 팔달교 지나 칠곡 가는 길 기슭에서 이런 색깔의 안산암이 많이 났다는 기록이 있단다.

1㎞ 남짓 걸었을까. 공원 담장 철책이 거의 끝나는 지점(②번)에서 산책길 위로 올라가야 한다. 더 진행하려고 해도 그 쪽으로는 길이 없다. 흙길이 가파르니 다시 한번 신발끈 확인! 올라가면 바로 벤치 두 개가 담장 쪽을 보고 있다. 토성 산책길에서 보면 멀리 북구 침산까지 대구 서북쪽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전후(戰後) 판자촌이 형성됐던 곳, 곳곳에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는 것도 보인다.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여기서부터는 신발끈 신경 안 쓰고 여유롭게 산책길을 걸으면 된다. 근처에 매점이 있으니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으며 소풍 기분을 내는 것도 괜찮겠다. 연못의 오리, 침팬지 등을 구경하며 동물원을 따라 어느 새 토성 한바퀴 다 돌았다. 달성 이천년 세월의 흔적을 밟아본 셈이다.

달성공원은 달성서씨 집성촌(고려시대)→행정·군사 중심지(조선시대)→대구신사(神社·일제강점기)를 거쳐 1970년 대구의 처음이자 유일한 동물원이 됐다. 동물원 설계자는 조선의 마지막 왕위 계승권자였던 영친왕 이은의 아들 이구. 그는 당시 한미합작설계용역회사 회장이었다. 90년대 서구식 놀이공원인 우방타워에 대구의 '대표공원' 자리를 내어준 현재, 전문 사육 시설이 없는 동물원으로 위치가 어정쩡하다. 그래서 달성공원이 아닌 달성토성으로 복원하자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토성이 별 모양으로 생겼다고 한다. 전쟁에서 별 모양의 성은 아군에게 절대 유리하다. 언젠가 달성 토성이 복원되면 토성 한바퀴 돌기에 더해 하늘에서 토성을 내려다보는 것도 꼭 권유하겠다.


다음 회는 달성공원(下) '비석과 음식'입니다.

2007-03-15

 

[인터뷰] 50년 터줏대감 사진사
"70∼80년대만해도 제법 쏠쏠했지 집에서는 나도 디카로 사진 찍어"
달성공원 사진사가 사용하고 있는 즉석카메라.
달성공원 사진사가 사용하고 있는 즉석카메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달성공원의 고정된 풍경처럼 수십년 동안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들이 나온 시민들을 맞는 사람이 있다.

'달성공원 전속사진사' 이용환씨(가명·76). 이씨는 50년 가까이 이 곳 달성공원에서 사진 찍는 일을 하고 있다. '달성공원 50년'을 필름에 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달성공원을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인터뷰는 무슨…"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좀처럼 열리지 않던 그의 입은 달성공원 이야기에서 술술 풀렸다. 1950년대 한국통신부대 주둔과 육군영헌부대 유골봉안소, 공원 조성 공사, 동물원 개원, 무료개방에 이르기까지 막힘이 없다.

그의 '외길 사진인생'은 1957년부터 시작됐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 무작정 사진기를 들고 공원으로 나섰다.

"그렇다고 사진기술은 따로 배우지 않았어. 뭐든 이론부터 배우면 어려운데, 그냥 익히면 쉬워지는 법이지." 기계를 만지는 데 남다른 소질이 있어 달리 배우진 않았지만 사진 찍는 기술은 저절로 터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사로 활동하던 중 59년 결혼도 했고, 70년 동물원 개원과 함께 대구시가 실기 및 이론시험을 통해 선발한 15명의 공원사진사에 뽑혔다. 1970∼80년대만 해도 벌이가 웬만한 직장인보다 나았다.

하지만 요즘 수입은 예전만 못하다. 그는 "최신 놀이시설과 디지털기기가 보편화되면서 평일에는 마수하기도 힘들다"며 "용돈벌이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4월 중순에서 6월 초순까지는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그나마 '일거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영천이 고향인 이씨는 달성공원과 사람이 좋아 한결같이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 50년 가까이 몸이 아파서 쉰 날이 열흘도 채 되지 않는다.

그는 "넉넉지는 않지만 다른 돈벌이를 생각지 않고 사진 찍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이를 즐겼다"고 말했다.

그는 수동카메라를 사용하다가 이젠 즉석카메라로 손님을 맞는다. 그렇지만 디지털카메라는 사용하지 않는다. "누가 디지털 카메라를 돈주고 찍겠수." 디지털 카메라로 바꾸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간단히 설명했다. 하지만 집에선 디지털 카메라를 즐겨 사용한다. "칠순의 아내를 카메라에 담아놓기 위해서"란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늙지 않았다(身老心不老)' 그가 요즘 가슴에 새기는 말이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는 세월을 찍는 '청년 사진사'이다.

그렇지만 굳이 실명을 밝히기를 꺼리는 그의 모습에서 간단치 않은 삶의 질곡을 느끼게 된다

 

또 다른 볼거리 고목…300년 수령 서침나무 "꼭 보고가세요"
달성을 국가에 헌납한 서침을 기리기 위해 서침나무라 칭한 회화나무.
달성을 국가에 헌납한 서침을 기리기 위해 서침나무라 칭한 회화나무.
달성공원에는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나무들이 있다. 수령(樹齡)과 수형(樹形)을 뽐낼만한 나무들이 적잖다. 회화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양버즘나무, 느릅나무, 왕벚나무, 잣나무, 가이즈카향나무 등이 공원 곳곳에 자리잡고 시민들에게 그늘은 물론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중 그 어느 나무보다 오랜 세월 달성공원을 지키며, 영욕의 역사를 함께 해온 나무가 있다. 바로 어린이헌장 옆 회화나무이다. 300여 년의 수령도 자랑거리지만, 하늘로 쭉 뻗어올라간 줄기가 장대한 멋을 풍긴다. 일명 '서침나무'로 불린다.

'서침'은 사람의 이름이다. 달성 서씨인 그는 조선 세종 때 세거지인 달성이 대구관아 부지로 정해지자 이에 흔쾌히 협조하였다고 한다. 그의 뜻을 가상히 여겨 세종은 포상을 내리려 했지만 서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포상 대신 대구부민의 환곡(춘궁기에 관아에서 빌려준 양식) 이자를 5되씩 감해 줄 것을 건의한 것이다. 세종은 이를 기꺼이 허락했다. 은덕을 입은 대구지역 주민들(유림)이 서침의 덕을 기리기 위해 구암서원을 세웠다. 구암서원은 대구시 북구 산격동 연암공원에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이 정겹게 느껴질 때면 공원으로 나들이 나온 시민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나무도 있다. 공원 매점 옆 왕벚나무다. 이들이 하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울 때면 달성공원의 봄은 절정에 있다. 연못 옆 산책로에는 회화나무와 고욤나무가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연리지(連理枝)를 볼 수 있다.

공원관리사무소와 관풍루 앞에는 가이즈카향나무 군락이 있다. 그 중 공원 가운데 나란히 서 있는 가이즈카향나무는 1909년 달성을 방문한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과 이토 히로부미가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가이즈카향나무는 측백나무과의 향나무 변종으로 바늘잎이 없고 옆가지가 나선으로 배열되어 나사백(螺絲柏)이라 불린다. '가이즈카(kaizuka)'는 일본말로 '패총(貝塚)', 즉 조개무지를 의미한다.

민족시인 이상화 시비(詩碑)와 의병대장 허위 선생 순국기념비, 독립운동가 이상용 구국기념비 등이 있는 대구의 대표적인 공원에 일본수종(樹種)인 가이즈카향나무가 상당수 자라고 있는 것은 언뜻 이해가 안 된다. 민족정기를 수호한다는 측면에서 식민지 시대의 상징인 가이즈카향나무의 수종 변경을 신중히 고려해볼 만하다.


[tip]
-토성 한바퀴 1.4㎞, 여유있게 걸으면 45분 소요. 공원은 오전5시 문을 열어 오후 8시 문을 닫는다(3·4월 기준).

- 화창한 날, 도시락 싸서 달성공원에 가서 토성 한 바퀴 돌고 공원 안에 돗자리 펴 놓고 도시락 까먹으면 그야말로 꿀맛. '대구신택리지'는 함박눈이 내린 토성을 아침 나절에 돌아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데, 올해처럼 따뜻한 겨울이 계속된다면 함박눈 내린 토성을 보기란 기약없는 일.

- 공원 주변에 가장 사람이 많은 때는 오전 5시부터 7시 30분 사이, 공원 바깥 주차장에서 반짝시장인 달공새벽시장이 열릴 때다. 대구의 활기를 보고 싶다면 이 때 이 곳이 적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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