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떡전골목·화방골목·학사주점… 드문드문 그렇게 버텨온 세월만큼 향도 짙게 배었다
괜스레 가슴 한 구석이 저려온다. '어? 여기에 있었네.' 책상서랍을 정리하다 색 바랜 연애 편지 한 통을 발견한 기분이다. 잊고 살았던 풍경이 한달음에 확 다가온다. '그래, 그때 그랬지.' 알 수 없는 탄성이 새어나온다. 대구시 중구 덕산동에는 추억을 파는 골목들이 존재한다. 염매시장 떡전골목과 화방골목, 학사주점골목. 높이 솟은 고층빌딩과 맞닿은 그 골목에는 '멀고도 가까운 옛날'이 살아 숨쉰다.
2007-05-31 |
| |||||
곡주사 정옥순 할머니
유신 때 대구지역 운동권 학생들이 모여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암울한 시대를 걱정했던 대폿집 '곡주사'의 주인 정옥순 할머니(74). 중구 덕산동 삼성금융플라자 주차장 옆 막다른 골목 허름한 식당. 청년지사들의 '사랑방'과 '할매'는 그때 그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지 일흔 고개를 훨씬 넘긴 할머니는 예전 같지 않은 기력때문에 밥 퍼주기도 막걸리 붓기도 힘에 겹다. 할머니는 운동권 학생들을 늘 반기며 재워주고, 숨겨주고, 먹여주고 했기에 당국에서 주시했고 '운동권 연락책'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때문에 할머니가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받은 게 한두 번도 아니었다. "어느 비 오는 날 학생들이 비를 맞고 왔기에 2층에 막걸리 상을 차려주고 재웠는데 새벽 5시에 형사들이 들이닥쳤어. 얼마나 놀랐는지." 당시 할머니는 수사기관에 끌려가 보름동안 고생을 했다면서 '몹쓸놈의 세월'을 되뇌였다. 할머니는 그러면서도 손님들 중 운동권 학생들이 많았기에 자신이 겪었던 고초보다는, 학생들이 훗날 훌륭하게 돼 결코 후회없는 과거였다고 했다. 허나 핏줄의 아픔은 감출 수가 어려운지 주름진 눈가를 잠시 적셨다. "엄마가 이 장사하는 죄로 둘째 아들이 군대에서 많이 두들겨 맞고 무진 고생을 했어." 할머니의 둘째 아들이 입대했을 때 부대 여장교가 당시 요시찰 대상이었던 곡주사의 아들이었다는 걸 알고 제보를 했고, 이때문에 아들은 군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입원까지 하게 됐다. 아들이 지금도 그때의 후유증에 시달리는지 할머니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할머니의 인연은 운동권 학생들 뿐 아니다. 배고픔과 정에 굶주린 복지시설 아이들에게 베푼 할머니의 사랑도 깊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고아원생들에게 밥을 주고 차비도 건네며 정을 나눴다.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아이들이지만 걱정을 했다. "잘 살고 있는지 못살고 있는지…. 지금 잘 있다면 다행인데 날 찾아오지 않는걸 봐서 어려운 것 같기도 해. 마음이 편치가 않아." 70~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을 가슴으로 몸으로 끌어안고 살았던 할머니. 술값·밥값 신경 안쓰고 마구 퍼줘 남는 게 별로 없는 장사였지만 가끔씩 찾아오거나 안부 전하는 학생들이 있어 행복하다며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김기홍기자 |
'대구이야기 >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영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14] 시장북로 -2007/06/14- (0) | 2010.04.16 |
---|---|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13] 동산 -2007/06/07- (0) | 2010.04.16 |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11] 계산동 -2007/05/24- (0) | 2010.04.16 |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10] 진골목 -2007/05/17- (0) | 2010.04.16 |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9] 동성로 -2007/05/10- (0) | 2010.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