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영남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11] 계산동 -2007/05/24-

思美 2010. 4. 1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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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11] 계산동
'대구 천재의 삼각지대'…이상화·이상정·서상돈·이쾌대 생가터 줄줄이
영남지방 최초 고딕양식 성당 계산성당
대통령 사돈댁·고래등 같은 대저택…
상화 고택, 집 주인 잘 만나 '그대로'
'횟집 사가이' 뒤 대나무 정원 눈길 끌어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집안곳곳에 상화 시인의 향기가 묻어있다.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집안곳곳에 상화 시인의 향기가 묻어있다.
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는 고려예식장 창업자 우종식 저택. 정원이 잘 정돈되어 있다,
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는 고려예식장 창업자 우종식 저택. 정원이 잘 정돈되어 있다,

'계수나무가 있는 산'을 의미하는 계산(桂山)에서 유래된 대구 계산동. 조선말기 현재의 약전골목이 된 대구읍성의 남쪽 성곽 옆에 흐르던 천을 따라 형성된 동네다. 계산동은 도심지에서 유일하게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성과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계산성당 일대와 더불어 민족운동가 서상돈, 민족시인 이상화, 서예가 박기돈 등 수 많은 민족운동가와 예술인들의 고택이 있는 곳. 대구의 근대와 현대사를 증언해 주는 지역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과거보러 가는 길, 격동기 역사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의 고택, 도심지 고목, 일제강점기 건축물 등 골목길 구석 구석 남아있는 역사의 자취를 따라가며 오늘날 계산동의 모습도 담아본다.

영남지방에서 최초로 건립된 고딕양식의 성당인 계산성당. 장엄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의 본당에 평일 낮시간임에도 50여명의 신자가 고요히 기도를 하고 있다. 성스러움에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대구총포사 왼쪽 골목길. 대구를 대표하는 냉면 전문점인 대동면옥이 자리하고 있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식당에 걸맞지 않은 작은 입간판이 다소 의외다. 도심에서 한켠으로 비켜난 동네여서인지 성업을 이뤘던 과거 모습은 쉬이 연상되지 않는다.

골목 입구에 있는 화교 1세대가 문을 연 성립행잡화점.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이곳은 아예 작은 입간판조차도 없다. 물론 수십년을 한자리에서 영업을 해왔기에 굳이 간판이 필요 없을 수 있지만, 특별한 느낌을 준다. 팔순이 가까운 왕수강 사장은 서둘러 어디론가 갈 일이 있음에도 취재진을 귀찮아 하지않고 편하게 맞아 줬다. 사진촬영에 익숙한 듯 여러차례 포즈까지 잡아주며.

왕 사장은 영업에 자신감이 있었던지, 개업할 당시에 있었던 간판이 태풍에 떨어지고 난 뒤에 다시 간판을 달지않고 오늘까지 왔다고 했다.

촘촘히 붙어있는 집과 점포들을 기웃거리다 리베라 모텔 뒤편으로 들어섰다. 흔히 볼 수 있는 일제강점기 건물에 두 그루의 나무가 담에 끼어 함께 담장을 치고 있다. 어쩌다가 벽돌담에 동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고사목이 된 지 오래인 듯하다. 나무의 희생이 애석하지만, 옛 가옥과 어울려 나름의 풍치를 자아낸다.

약령서문 서편도로 네거리. 음악가 박태원·태준 형제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오가는 차량과 행인들은 무심히 지나치나 24세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음악가 박태준이 예술혼을 키우던 곳. 박태준은 가사번역과 작곡·작사 활동을 하며 서구음악을 한국에 도입하는데 큰 몫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클레멘타인' '켄터키 옛집' 등을 번역한 그는 번역의 역사가 짧은 당시에 놀랄만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동생 태준은 '오빠생각' '동무생각' 등 주옥같은 동요를 작곡한 음악가다.

약령서문길 끝나는 지점에 있는 횟집 사가이. 여느 대형 횟집같지 않은 거무튀튀한 도색과 외형이다. 그러나 한참을 바라보면 낡고 헐벗은 싸구려 맛은 전혀 나지않는다. 멋을 담고있는 인테리어다. 식당 뒤편 대나무 정원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요정의 품격을 전해준다.

복어 요리로 유명한 거창복어식당을 들러 '눈요기'만 하고, 대통령의 사돈집으로 발걸음을 옮겨봤다. 현재 등심, 삼겹살을 주요리로 하고 있는 대청마루 식당. ㄱ 자형 한옥에 사랑채를 거느린 대저택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돈집으로, 동생 전경환씨 딸의 시집이다. 전씨가 사돈댁을 방문할 때 근처 길목에 관할 경찰서 형사와 정보기관 요원들이 삼엄한 경호를 펴는 바람에 행인과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는 얘기도 있다.

대로를 건너가면 '대구 천재의 삼각지대'가 나온다. 현재 건축중인 주상복합빌딩 미소시티 뒤편과 옛 영남대로 사이에 이상화, 이상정, 서상돈, 박기돈, 신동집, 이쾌대 등 민족운동가와 예술인들의 생가터가 즐비하다. 일부는 개발지에 부지가 편입돼 지번은 바뀌었지만 보존운동으로 조금씩 복원되고 있다.

미소시티빌딩 공사장 소음이 간간이 들리는 이상화 고택. 집을 개축하지 않은 탓에 상화의 흑백사진에 나온 모습 그대로다. 상화가 1939년부터 4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상화고택은 67년 이 집을 매입한 이금주씨가 80년 우연히 상화고택임을 알고 이후부터 집을 크게 뜯어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단아한 한옥에 대청마루, 사랑방 세칸. 마당엔 장미, 석류, 감나무가 장독대와 어우러져 상화의 망중한을 가늠케한다.

이미 아파트 개발부지에 들어가 흔적을 감춘 국채보상운동 선구자 서상돈 고택. 다행히 이상화 고택과 함께 작은 소공원으로 복원될 계획이라 아쉬움을 던다.

명나라 장수로 정유재란 이후 조선에 귀화한 두사충의 집터는 어디일까. 계산동 2가 169로 추정되나 아직은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골목안 2층 건물보다 키가 큰 히말라야시더와 향나무, 은행나무가 솟구쳐 있는 집의 문을 두드렸다. 대청 대들보에 1916년 상량했다는 글이 적혀있다. 이 집이 두사충의 집일까. 수령을 가늠하기 어려운 고목들과 한옥의 규모가 자꾸만 '이 집일 수밖에 없다'는 억측을 하게 한다.

고개를 갸웃하며 이 집을 나와 비좁지만 곧게 뻗은 골목길을 접어드니 고래등 같은 한옥이 한 채 나온다. 도심에서 보기드문 대저택이다. 현재 식당으로 사용되는 이 집은 고려예식장 창업자 우종식씨의 소유. 정원은 석등, 모과, 배롱나무, 영산홍 등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넓은 대청이 시원함을 더한다.

후원 (주) 드림FI

다음회는 '덕산동'입니다

 

2007-05-24

 

꼭 맛보고 가세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좋게 한끼를 즐길 수 있다. 계산동 작은 골목에는 깊고 담백한 맛을 자랑하는 식당들이 꽤 많다.

-계산식당: 매일신문 주차장앞. '말짱 도루묵'으로 불리는 도루묵이 대표 메뉴다. 조미료를 넣지 않는 얼큰한 국물의 도루묵 찌개가 1인분에 5천원이다. 도루묵 구이는 1만5천~2만원(3~5인분).

-거창복어: 약령서문 건너편 골목. 30여년 변함없는 맛의 복요리와 수수전, 물김치 등 밑반찬이 일품. 진하고 칼칼한 은복어탕(사진) 1인분에 7천원이다. 참복어탕은 2만원.

-대청마루: 거창복어 맞은편. 전경환씨(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의 사돈댁 한옥. 생등심 200g 1만원, 생삼겹살 200g 5천원.

-사가이: 약령서문 건너편 골목끝. 춘앵각과 함께 대구 요정계의 쌍두마차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일심관 자리에 있다. 정통일식요리 전문점. 초밥 정식 1만원.

/이애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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