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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구암서원에 의료·선교박물관 줄줄이…대구 근대史 체험장 1899년 달성서씨 소유 민둥산 깎고 다져 선교기지로 독립만세 불렀던 3·1운동길 "꼭 몽마르트 언덕 닮았네" 대문·강당·사당만 남은 구암서원엔 역사의 숨결 그대로 퇴락한 '경앙문'·고즈넉한 달성서씨 종가도 볼 수 있어
대구의 동산(東山)은 서산(西山)이다. 왜 서쪽 산을 동산이라 부른 걸까. 대구시 중구 포정동에 경상감영이 들어서기 전 대구읍지를 보면 그 답이 있다. 달성토성의 중심지에서 서산은 동쪽에 있었고, 자연스레 동산으로 불렸다. 1899년 미국인 선교사 아담스와 존스가 달성서씨 소유의 민둥산이던 이곳을 사서 학교·병원·신학대학을 세워 선교기지로 삼았다. 100여년이 흐른 현재 동산은 대구의 살아있는 근대사 박물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2007-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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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12번 제사 종부 자리는 운명이라 생각
달성서씨 25세 종부 이명호 할머니(77)는 영화(榮華)보단 짐이 무거울 것 같은 종부 자리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듯 담담하게 지난 세월을 돌이켰다. 동산동 구암서원 옆 종택. 곱디 고운 20세에 얼굴도 모르는 남편과 결혼, 대종가의 맏며느리가 된 할머니는 이곳에서 한평생을 살아왔다. 한달에 쌀 두가마와 보리쌀 두말로 밥을 해대도 모자랄 정도로 유림과 일가의 방문이 이어져 북적거렸던 종가. 이젠 한산하다 못해 쓸쓸함이 묻어난다. 맏며느리가 오래전 사고로 숨지고 장남마저 3년전 갑자기 세상을 떠 식솔이라야 대학 휴학중인 손자(22) 뿐, 단둘이서 넓은 저택을 지키고 있다. 1995년 구암서원이 북구 연암산으로 옮겨가면서 큰 제사는 줄었지만 아직도 1년에 12차례에 달하는 제사는 할머니의 몫. 특히 음력 사월 초파일 치르는 낙재서사원(1550∼1615·대구에서 퇴계의 학맥을 이은 석학) 선생 제사땐 20~30명의 손님을 맞아야 한다. 물론 제수 장만부터 손님 접대는 모두 자신의 책무이다. "구암서원이 옮겨가기 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물론 거드는 일손이 많았지만 큰 제사땐 제관이 300여명이나 돼 쉬운 일은 아니었지. 또 과거엔 갑자기 들이닥치는 손님이 많고 교통이 불편해 행사에 오면 자고가는 사람이 아주 많았어." 종부로서 고충과 애환도 적진 않았지만 자식들이 잘 자라줘 그 보람에 힘들 줄 모르고 지내왔다는 할머니. 그러나 50대 이른 나이에 장남이 세상을 저버려 한으로 남는다고. 또 장남 대신 가문의 명맥을 이을 손자의 나이가 어려 내심 걱정스러워했다. 봉제사 몇차례도 마다하는 요즘 세태이기에 자신의 자리를 이을 손주며느리에 대해서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했다. /김기홍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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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집= 한식 전문점으로 조미료를 전혀 안써 깔끔하고 정갈한 맛 자랑. 가격에 비해 양이 푸짐해 직장인들이 즐겨 찾고 단골 손님도 많다. △동경갈비= 전골·갈비 등 다양한 고기 메뉴. 특히 주머니 걱정 안해도 되는 가격의 돼지갈비 정식은 점심시간에 인기. △명성식당= 갈치찌개 맛은 어느 식당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 또 손맛이 가득 담긴 밑반찬이 손님들의 입맛을 돋움. △별미식당= 고소하고 담백한 수육에 옛날 맛이 우러나는 칼국수가 주특기. 특히 김치를 잘게 썰어 넣어 먹는 칼국수 맛이 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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