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영남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15] 수창동 -2007/06/21-

思美 2010. 4. 1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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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15] 수창동
일제수탈史와 국채보상운동 발상지
엇갈린 두 역사의 접점
문닫은 KT&G대구공장 이곳도 걸어보니 무려 1만1천평 '휴∼만만찮네'
대구읍성 복원 주장 나오는데도 자갈마당은 여전히 건재 '역사의 비애 씁쓸'
일제시대 계몽운동 구심점 '광문사 터'와 주물공장 '쌍화영 터'도 볼 수 있어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KT& G 대구공장 모습. 현재는 KT& G 물류센터로 이용되고 있다.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KT& G 대구공장 모습. 현재는 KT& G 물류센터로 이용되고 있다.
수창초등 교정에 있는 미국 건축 원조를 기념하는 비.
수창초등 교정에 있는 미국 건축 원조를 기념하는 비.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대구 포교당인 대성사는 국채보상운동 발상지인 광문사터에 세워졌다.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대구 포교당인 대성사는 국채보상운동 발상지인 광문사터에 세워졌다.
대구의 대표적인 집창촌인 속칭 자갈마당 앞에 세워진 '청소년 통행금지구역' 표지판.
대구의 대표적인 집창촌인 속칭 자갈마당 앞에 세워진 '청소년 통행금지구역' 표지판.

골목탐사가 아니었더라면 수창동을 걷는 일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발을 앞두고 있는 옛 담배 공장,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에도 건재한 윤락가가 이 동네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객관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공간이라곤 거의 없는 동네인데, 걸을수록 옛 역사와 현재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이 '험한'동네에 대한 묘한 연민과 애정이 생겨나니 말이다.

# 담배공장→'공원 예정지'→주상복합 개발 예정지

수창동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곳은 '대구연초제조창'이라고 불리던 KT& G 대구공장이다. 1910년 일제 때 연초 제조공장이 설립돼 광복 뒤 국가에서 한국담배인삼공사를 만들어 지금까지 온 것이다. 걸어보니 상당히 공간이 컸다. 1만1천평.

1999년 담배 공장이 영주로 옮겨간 후 대구시가 이 곳을 공원 부지(수창공원)로 묶었지만 예산이 없어 공원으로 만들지 못했다. KT& G가 이 곳 8천여평에 57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1천100가구를 짓고, 그 주변으로 4천500여평의 공원을 조성하고 1천200여평 규모의 5층짜리 노인 복지시설을 지어 대구시에 기부채납하기로 해, 이 공간이 공원 부지에서 해제된 것이 올 초 이야기다. '자본'과 '녹지공간'의 신통찮은 타협이었다. 건설경기가 안 좋아 KT& G는 아직 분위기만 보고 있다. 공장이 문을 닫은 뒤 물류창고로 쓰이는 이 곳을 안내해 준 직원은 "우리도 살고 이 지역도 살고 대구시도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 대구읍성을 허문 흙으로 조성, 도원동 윤락가

옛 담배공장에서 나와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자갈마당'이라고 부르는 도원동 윤락가가 나온다. '밤의 공간'을 오전 10시에 걸어보니 밤과는 전혀 딴 판이다(오해마시라. 수습기자 시절 경찰과 함께 한 밤 이 곳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신문을 보거나 집 앞 청소를 하거나 잡담을 하던 사람들이 채소 파는 리어카가 오자 파도 사고 감자도 샀다. 침구점, 미장원 등 영업 보조 업종 가게들도 하나 둘 문을 열 준비를 한다. 거리 풍경으로만 봐서는 늦게 자고 일어난 일요일, 보통 동네의 여유있는 오전의 한 장면 같다.

구한말 이 곳은 대구의 개천들이 몰려드는 저습지였다.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기는, 쓸모가 없는 땅이었다. 그러다 일제가 대구를 점령한 뒤 대구읍성 성곽을 허무는 과정에서 나온 흙을 이 일대에 매립한다. 당시 경부선 건설로 대구에 온 일본인 노동자 1천여명을 위한 유곽을 이 곳에 지은 것이다. 그게 도원동 윤락가의 시작이었다. 대구읍성의 흙이 식민지 수탈을 위한 공간의 발판이 되고, 그 후 약 100년이 지난 대구읍성을 일부만이라도 복원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요즘에도 도원동 윤락가는 건재하고 있다. 역사의 비애가 이 곳에도 스며있다.

# 명문 학교 옆 국채보상 운동의 발상지

공구상 골목 안쪽에 자리잡은 수창초등은 개교(1907년) 이래 이름을 바꾸지 않아 이름상으로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다. 유곽 바로 옆에 있는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도 화가 이인성, 정치인 박준규와 이만섭 등 수많은 근현대 인물을 배출한 명문의 자부심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36년 이 학교에서 교생 생활을 했다고 한다. 교사(敎舍) 뒤쪽에는 이 학교를 증축할 때 미국인들이 도왔다는 '미국건축원조기념비'가 있다.

학교 후문으로 나와 왼쪽으로 돌면 공구상이 밀집한 곳에 대성사라는 절이 있다. 절 입구로 들어가 주차장 오른편에 '광문사 터' 기념비가 있다. 인쇄소였던 대구광문사는 일제시대 계몽운동의 구심점이었고, 이 곳에서 만든 건의서가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열게 한 계기가 된다.

광문사 터에서 나와 왼쪽으로 끝까지 가면 코너에 주차장이 나온다. 일제 시대 때 이 곳은 '쌍화영(雙和永)'이라는 주물공장이었다. 한 때 '조선 솥 9할은 화교가 만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화교가 주물업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 곳 역시 화교 공장이었다.

일제 수탈의 역사와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 참으로 대조적인 두 공간이 만나고 있는 동네. 수창동 재개발의 과제는 어두운 역사는 털고 자랑스러운 역사는 가져가는 것이다. 쉽지 않은 숙제를 KT& G도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음회는 '대신동'입니다

후원 (주) 드림 FI

 

2007-06-21

[인터뷰] 금수세탁소 주인 배상환씨
"1980년 초까지 황금기 그땐 밤낮없이 일했지"
금수세탁공장. 시립극단이 공연한 연극 '동화세탁소'의 무대가 된 곳이다.
금수세탁공장. 시립극단이 공연한 연극 '동화세탁소'의 무대가 된 곳이다.
금수(錦繡)세탁소. 멋드러진 이름이다. '수놓은 비단(금수)'. 묵은 때와 찌든 때를 씻어내는 세탁소의 이름으로는 최고다. 대구시 중구의 금수세탁소는 특이한 내력을 갖고 있다. 세탁소의 위치부터 예사롭지 않다. 속칭 자갈마당으로 불리는 집창촌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6·25전쟁 1·4후퇴 때 월남한 고(故) 조운하씨가 45년 전 금수세탁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시작했다. 북한 평양서 하던 금수세탁소를 잊지 못한 탓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고인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있다.

금수세탁소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낡은 모습이다. 소도시 허름한 골목길에서 마주칠 법한 세탁소가 큰 도로변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다. 현 주인은 배상환씨(66·사진). 그는 1979년 조운하씨로부터 금수세탁소를 인수했다.

"열여섯 나던 해 기술도 배우고, 입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작했다"는 배씨는 "예전에 비하면 힘도 덜 들고 세탁물도 비교적 깨끗한 상태로 가져온다"고 밝혔다. 가난했던 시절, 세탁비가 아까워 계절이 여러번 지나서야 세탁물을 맡기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금수세탁소는 호황을 누렸다. 대구 전역에서 거둬온 세탁물을 7명의 종업원이 밤낮없이 처리했다. IMF 외환위기로 현상유지가 어려워졌다는 배씨는 "평생을 한 일인데 그만둘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배씨는 또 "세탁소가 옷의 묵고 찌든 때를 씻어내듯 마음의 찌꺼기도 벗겨내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금수세탁소는 2003년 대구시립극단에서 동명의 제목으로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려졌다. 세탁소 주인과 청소부, 창녀, 건달, 경찰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금수세탁소'는 '동화세탁소'로 이름이 바뀌었고, 2004년 뮤지컬로 리메이크됐다.
/이애란기자

꼭 맛보고 가세요
음식 재료가 같다고 맛도 똑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언제나 손이 마술을 부린다. 기대치 않은 곳에서 정갈한 '손맛'을 만나는 것은 세상살이의 은근한 즐거움이다.

△마당갈비- 중부경찰서 달성지구대 바로 옆이다. 27년 동안 돼지갈비를 옛날식으로 연탄 화덕에 구워낸다. 맑고 시원한 국물의 열무물김치,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찌개는 고향의 맛을 낸다. 돼지갈비 1인분 5천원, 갈비찜 1인분 6천원.

△덕영반점-KT&G 대구공장 건너편. 58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주문과 동시에 즉석에서 조리하는 맑은 국물의 삼선짬뽕(5천원)이 별미. 속풀이를 위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는 단골이 많다. 자장면 한 그릇에 3천원.
/이애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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