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영남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17] 서문로·포정동 -2007/07/05-

思美 2010. 4. 1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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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17] 서문로·포정동
한때 기생들이 많이 살았다는 샘밖골목
상품권까지 발행했던 비단상점 '지이홍포목점'
장구·공연복 등 기방용품 공급했던 창신상회
가는 곳마다 일제시대 흔적

대구우체국 앞에 세워진 개국 100주년 기념비.
대구우체국 앞에 세워진 개국 100주년 기념비.
일제시대 서문로 전경.
일제시대 서문로 전경.
일제시대 쇼윈도가 있었던 백화점 무영당으로 사용된 건물.
일제시대 쇼윈도가 있었던 백화점 무영당으로 사용된 건물.
대구의 대표적인 문구센터인 기남상사.
대구의 대표적인 문구센터인 기남상사.
서문로에 있었던 영남일보 옛 사옥.
서문로에 있었던 영남일보 옛 사옥.

일제강점기 대구 정치·경제의 중심지였던 서문로·포정동. 때문에 근대건축물 등 대구에서 일제시대의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 또 서슬퍼런 헌병대 등 일제 관가가 자리잡고 있었기에 대구 3·1만세운동 행진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대구 최초의 신작로인 중부경찰서 앞 십자대로에서 동서로 이어진 이곳은 80년대 도시 확장으로 동성로 일대가 개발되면서 중심지로서 명성을 잃고, 도심 일면의 평범한 거리로 변했다.

서성로 교회에서 시작된 골목 답사 첫머리에 만난 한 염료상은 여느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경기침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70년대 개업, 2대를 이어오며 30여년 영업을 해온 업주는 "섬유경기 활황에 힙입어 90년대초까지 장사를 할만 했는데 요즘은 영판 아니다"며 한숨을 지었다. 뒤이어 만난 화공약품 도매상도 똑같은 푸념을 했다.

민생의 탄식을 뒤로 하고 몇걸음 옮기자 덕영치과 우먼라이프 건물이 보인다. 흰색 외벽의 2층이 멋스럽다. 치과 등 내부의 현대식 인테리어와 희한하게 조화를 이뤘다는 느낌이다. 지역에서 근대건축물을 가장 잘 활용한 건물이라고 알려져있다.

기생들이 많이 살았다는 샘밖골목. 아미고호텔(옛 금호호텔) 주차장자리에서 만경관, 병무청 뒤편으로 이어진 이 골목은 현재 지도상엔 사라졌지만 30년대 지도에는 뚜렷하게 나온다. 나이가 많은 '퇴기'들이 살았고 기생을 훈련시킨 사설학원인 대구권번과 달성권번이 있었다.

동편으로 대로를 건너기 전 왼편으로 돌면 적벽돌의 2층 건물이 있다. 현재 1층에 한진타일상사가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지역에서 가장 잘나갔던 비단상점 '지이홍포목점'. 샘밖골목 기생들이 한복을 해입던 곳으로 당시 최고의 브랜드였다고. 지이홍 사장의 시대를 앞선 마케팅도 이야깃거리다. 지 사장은 혼기에 찬 딸을 둔 지역유지를 상점 근처 금호관에 초청해 홍보를 했으며, 1931년부터 이미 상품권까지 발행했다고 한다. 지 사장은 당시 연예인이었던 기생들을 모델로 활용, 상품권에 등장시켰다고. 기생들은 요정에 출입하는 손님들로부터 지이홍 한복을 선물로 받는 것을 기대할 정도였다고 한다.

길을 건너면 1913년에 한국인이 설립한 대구 최초의 은행 옛 대구은행이 있던 건물이 나타난다. 현재 세종사우나 자리. 당시 대구 10대 재력가였던 정재학은 자본금 50만원으로 이일부, 이병학 등과 함께 이곳에 은행을 건립했다. 대구은행은 1차대전과 함께 찾아온 공황으로 부진을 거듭하다 차입금 부담 등으로 28년에 경남은행과 합병, 이듬해 경산합동은행으로 재출발했다. 이후 41년 한성은행, 43년 조흥은행으로 합병되었다.

80년대 버스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익히 듣던 '문구의 모든것, 기남~상사'도 이곳에 있다. 50여년 역사를 가진 기남상사는 대구도매문구업의 선두주자이자 산증인. 포정동 무궁화백화점 건너편에 터를 잡았던 기남상사는 87년 서문로로 옮겼다. 최근엔 다시 지근거리에 확장 이전했다.

아미고 호텔 주차장 앞 3층 적벽돌 건물이 눈에 띈다. 60년대 세워진 근대식 건물이다.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처럼 서있다. '어떤 용도로 쓰일까'란 의문점을 던지며 눈을 돌리자 산업은행 대구지점을 만난다. 번듯하나 사각형에 마당이 없어 문이 좁은 성냥갑같은 방어적 느낌을 준다. 독일산 타일, 수평선을 강조한 슬래브 등이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남일보도 1945년 이곳에서 창간

일제시대 옛날 상점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창신상회 문을 두드렸다. 2대째 영업을 하고 있는 이곳은 일제시대때 샘밖골목과 달성권번의 기생들에게 포목과 장구, 북, 예복, 공연복, 족두리 등의 기방 필요품 등을 공급했으나 이후 기생문화가 점차 사라지면서 품목도 바뀌게 되었다. 현재는 관혼상제에 필요한 원삼, 사모관대 등 전통물품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 창신상회 맞은편의 서문로소방파출소. 1948년쯤 좌익 소요 당시 약 30m 높이의 망루에서 근무하던 24세의 소방사가 총에 맞아 순직한 역사를 안고 있다. 이곳은 또한 영남일보의 태생지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최초로 순수 민간자본으로 창간된 영남일보는 45년 10월 이곳 2층에서 태동, 환갑을 지나 오늘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2007-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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