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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담배창고부터 쌀 공출 전진기지인 米倉건물… 그리고 운송회사·석탄상점으로 쓰였던 건축물까지 격동의 '수탈史'가 허물어질듯 버티고 있다
태평로(太平路). 곧이 곧대로 풀이하면 '큰 평화의 길'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태평로라는 이름 속에 숨은 일제의 수탈. 그 아픔의 현장이 평화의 길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의 태평로는 그야말로 평화롭다. 평화롭다 못해 무미건조하기까지 하다. 태평로를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매우 삭막하다.
2007-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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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 옛 모습 사라지고 "요즘은 이름만 번개 장사도 예전만 못해" "옛날엔 굉장했지. 새벽 첫 기차오면 시장통이 시끌벅적했어. 시골 할머니·아주머니들이 보따리를 이고 지고 와서 이 골목을 꽉 메웠어." 대구역 옆 번개시장. 이젠 이름만 '번개'일뿐 순식간에 섰다 사라지는 시장이 아니다. 여느 상설 전통시장의 모습이다. 1960년대 초 문을 연 번개시장은 완행열차(비둘기호)가 운행될 때까지만 해도 대구역에 첫 기차가 도착하는 오전 6시쯤부터 서너시간만 장이 섰다. 청도·하양·왜관 등 대구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직접 물건을 파는 직거래이기 때문에 값이 싸고 품질이 좋아 장이 서기 무섭게 물건이 동이났다. 때문에 오전 10시쯤이면 시장은 사라졌다. 2000년 모든 기차역에 정차를 하던 비둘기호가 모습을 감춘 뒤부터는 시골서 오던 상인들이 점차 줄어 소규모 상설시장으로 변했다. 그러나 아직도 새벽부터 대구 인근이나 경북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시골 할머니들이 하나 둘 시장 입구에 좌판을 편다. 깻잎, 호박, 옥수수, 복숭아, 가지…. 물건을 모두 팔아봐야 3만~4만원은 될까. 큰 벌이가 되지않는 이들 물건을 팔기위해 오후 늦도록 손님을 기다린다. 게다가 점포를 못가진 노점상이기에 자리잡기 다툼을 벌여야 한다. 때론 시장 관리인에게 타박을 받기도 한다. 또 농번기가 되면 농사를 위해 물건을 싸게 넘기고 가야할 때도 많다. 완행열차가 끊기면서 버스나 자가용으로 물건을 싣고 오는 상인들도 늘어났다. 수십년 이곳에서 채소 도매를 했다는 한 할머니는 "나라에서 국민들 잘살게 해줘야지. 왜 완행열차를 없애 시골서 상인들이 못 올라오게 만들어 시장을 어렵게 하나"면서 옛날만 못한 장사를 정부탓으로 돌렸다. "돈 못 벌어. 새벽부터 오후 2~3시까지 있어봐야 한 2만~3만원 벌면 다행이야. 기차비하고 밥값 빼고 나면 남는 게 뭐 있겠나. 자식 신세 안지고 그저 용돈이나 하려고 오는거지." 청도에서 오전 6시10분 기차를 타고 사나흘에 한번씩 채소를 팔러 온다는 할머니. '장사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눈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그러나 번개시장 직거래 물량은 줄어 상권이 예전만은 못하지만 품질만은 인정을 받고 있다. 시장을 찾는 이들은 하나같이 "시골서 올라온 채소·과일은 싱싱하고 깨끗하다"며 입을 모은다. 후원 (주) 드림FI 다음회는 '중앙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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