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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아과의원 내부. 개원했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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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들에게 미도다방은 추억의 공간이자 휴식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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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홍백원에서 중앙시네마까지 이어지는 진골목. 300여m 좁은 길의 굽이침이 정겹다. 빛바랜 사진속에서나 봤음직한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붉은 벽돌담과 곱게 둘러쳐진 돌담, 마당에 선 아름드리 나무, 세월의 흔적이 배어나는 나무대문은 잠시나마 마음에 여유를 안겨준다. 진골목은 일제강점기 달성 서씨들이 모여 살며 대구의 부촌으로 이름이 높았던 골목이다. 당시 대구 최고의 부자였던 서병국을 비롯해 서병직, 서병기, 서병원, 석재 서병오, 국채보상회 간부 서병규 등이 이 골목의 주인노릇을 했다. 1970년대부터 음식점이 속속 들어서면서 진골목은 '젊은이의 거리'인 동성로와 대비되는 실버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정소아과의원 60년전 시설 그대로 "박물관이 따로없네"
1937년 지은 대구 최초 2층 양옥, 1947년 사들여 소아과 의원 개원…원장도'인간문화재'로 불릴 정도
정소아과는 진골목에서 독특한 존재다. 정소아과 건물은 물론 정필수 원장(88)도 묘한 공명을 전해준다. 정소아과 건물은 1937년 대구 최초의 2층 양옥인 '서병기의 저택'이었다. 서병기가 살다가 동생 서병직에게 물려준 후 경남의 하 부자(서병국의 자형) 등 주인이 몇번 바뀌었다. 정 원장이 이 건물을 사서 소아과를 개원한 것은 1947년. '신을 가지고 2층으로 올라오십시오.' 안내글에 따라 신을 벗고 나무계단을 오르니 진료실이다. 진료실의 책상과 철제 캐비닛 등 눈길 닿는 물건마다 골동품 아닌 게 없다. 소파도 병원을 열던 당시 그대로의 것이다. 진료기록 작성을 위한 컴퓨터와 에어컨이 없다면 꼭 60년 전의 풍경이다. 세월의 흐름을 잊게 하는 공간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환자대기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정원은 작은 수목원을 연상케 한다. 온갖 새소리에 여러 그루의 아름드리 향나무, 정원 가운데 자리한 연못, 행랑채 등 일제강점기 진골목 부자들의 호사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 정 원장이 살림집으로 쓰는 1층에는 유리로 둘러싸인 일광실과 욕조 딸린 목욕탕이 있다. 일제강점기 이 정도를 갖춘 집이 과연 몇 채나 있었을까. 불편하다고 집을 크게 고치지 않아 원형 보존이 잘된 상태다.
정 원장은 진골목의 인간문화재로 불린다. 대구 전문의 소아과 개원 1호의 주인공이다. 정 원장은 "병원건물과 시설을 보고 '박물관일세'라며 발길을 돌리는 환자도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60년을 한결같이 환자 곁을 지킨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도다방 하루 500명 '은발의 오빠'들이 추억을 사는 곳
단골 시인·서예가들이 선물한 수십점의 작품 '벽면에 가득' 女사장은 아직도 만인의 연인
대구문인협회장을 지낸 고(故) 전상렬 시인은 '미도다방'을 시(詩)로 풀어냈다. 전상렬 시인은 미도다방을 '가슴에 훈장을 단 노인들이 저마다의 보따리를 풀어놓고 차 한잔 값의 추억을 팔며…한 시대의 시간벌이를 하고 있는 곳'으로 표현했다.
미도다방은 일제강점기 달성서씨 집안의 사랑채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진골목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한다. 미도다방은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리도 있다.
미도다방 정인숙 사장(56)은 할아버지들의 '연인'으로 통한다. 1982년 중앙파출소옆 화방골목에서 실버전용 다방을 개업한 정 사장은 93년 진골목으로 옮겨왔다. 한결같은 섬김에 감동을 받은 단골들이 정 사장과 미도다방을 소재로 숱한 시(詩)와 작품을 남겼다.
2001년 서예인생 30년을 다큐멘터리 VCD로 낸 율산 이홍재가 선물한 현판 '美都茶香'을 비롯해 성주문화원장 거암 배춘석의 반야심경 붓글씨,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을 지낸 동애 소효영의 작품, 국전 특선을 수차례 한 왕철 이동규가 쓴 노자 도덕경, 죽농 서동균의 대나무그림 등 수십점의 작품이 그윽한 향기를 뿜어낸다.
하루 400~500명 '은발의 오빠'들이 추억을 사는 미도다방. 어르신들로부터 '정 여사'로 불리는 정 사장의 존재가 미도다방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정 사장이 석유난로로 끓이는 약차에는 살가운 정이 듬뿍 담겨있다.
2007-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