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칼럼] 청와대 행정관과 국회의원 무게 | |
민주화운동이 이룬 성과의 최대 수혜자는 검찰과 수구언론이다. 역설적이지만,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거나 민주화를 늦추는 데 힘을 보탠 두 집단이 확대된 활동영역에서 마구 힘을 발휘한다. 권위주의 통치 시대에 검찰은 정권의 하수인이었다. 그 시절에 검찰 고위 간부를 지냈던 인사가 스스로 사냥개였다고 고백하니 외부 사람이 가타부타 덧붙일 것도 없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권력을 남용하던 여러 기관들의 위세가 툭 꺾이자 검찰의 위상이 두드러지게 높아졌다. ‘검찰 공화국’의 탄생이다.
요즘 검찰의 칼질이 예사스럽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 이후 주춤했던 대형 기획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몇 기업 상대로 비자금 수사가 벌어지더니 별로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불법로비 사건으로 불이 붙었다. 지난주 현역 의원 11명의 후원회 사무실에 대해 일제히 압수수색이 벌어졌다. 정변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근자에 없었던 일이다. 김황식 총리가 ‘이례적’이라는 표현을 썼으니 민주당 등 야당이 국회 말살 음모라고 방방 뜨는 것도 조건반사적 침소봉대로 폄하하기도 어렵다. 검찰의 시도는 시기적으로 대담하다. 정기국회 회기 중 대정부질문이 벌어진 날, 그것도 현 정권이 국운 상승의 대형 이벤트로 추어올리고 있는 G20 정상회의를 코앞에 두고 전격적으로 실시됐다. 조금이라도 검찰의 생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일제 압수수색에 따른 파장이나 정치권 반발을 검찰이 사전에 고려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검찰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사기관이라고 자부한다. 수사를 지휘하고 기소를 독점하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검찰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회고록이나 저서를 보면 조직에 대한 무한 신뢰와 애정을 보내는 표현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엘리트집단이라는 낯뜨거운 표현도 등장한다. 그런 최고의 검찰이 정치권의 조직적 반발을 다 고려하고 압수수색을 벌였다면 드디어 성역 없는 구악청산에 나선 걸까? 국회의원이 입법 과정에서 로비를 받아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회계처리가 불투명했다면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압수수색을 당한 의원의 거의 절반이 여당 소속이니 야당 의원을 표적 삼아 수사를 벌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간 검찰이 보인 행태를 보면 뭔가 환골탈태하려는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게 민간인 불법사찰을 벌인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한 수사 부실이다.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국가기관의 자료를 조직적으로 폐기하고 그런 과정에서 인질 유괴범 또는 사기범들이나 쓸 대포폰을 사용했다면 이것은 정말 국기를 흔드는 사건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미국 대통령이 권좌에서 떨어진 것은 증거를 은폐하고 거짓말을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총리실과 청와대 직원이 대포폰을 주고받으며 범행 증거를 지우려 한 행위는 의원들의 불법 로비자금 수수 혐의보다 훨씬 중대하다. 청목회 로비 사건이야 혐의가 전부 사실로 입증되더라도 의원들의 불투명한 자금수수 추태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대포폰 의혹은 국가기관의 범죄를 은폐한 국가 범죄가 된다. 이번 파문을 보면서 청와대 행정관이 그렇게 높은 자리인 줄 처음 알았다. 검찰은 이 행정관을 청사로 소환하지 않고 외부에서 만나 해명을 들었다고 한다. 칼을 뽑다가 그냥 거둬들인 것이다. 민간인 불법사찰은 관련자들 대부분이 특정 지역 출신으로 얽혀 있다. 그 뒤에는 대통령의 친형이 보일 듯 말 듯 하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돼 왔다. 뱃심 있는 검찰이라면 이럴 때 청와대 일제 압수수색을 한번 해봐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합리적 의심이 있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무죄추정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법관의 자세라면, 합리적 의심이 생기면 끝까지 추적하는 것이 검사의 자세가 아닌가?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사설]검찰, 정치에 개입하려 하나 정치는 다양한 사회 집단의 지지를 조직하고 상호 충돌하는 다양한 집단의 이익을 절충해 제한된 자원을 어디에 배분할지 결정하는 기능을 한다. 말하자면 정치는 자원 배분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가장 권위있고 강제력 있는 정책 결정 메커니즘인 것이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입법 활동이다. 만일 그런 기능을 수행하는 국회의원, 정당, 국회와 같은 제도들이 없다면 이 사회는 서로의 발목을 잡는 소모적인 대립과 혼란에 빠질 것이며, 민주주의 역시 작동하지 못하고 정글사회로 변할 것이다.
그런데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의 국회 로비 불법성 여부를 수사하는 최근 검찰의 활동을 지켜보노라면, 이와 같이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정치의 기능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국회는 여야 합의로 청원경찰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내용의 청원경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것은 국회의 정당하고도 고유한 역할이다. 모든 입법과정이 그렇듯 청목회라는 이익단체 역시 의원과 정당을 상대로 법개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고, 여야 의원들은 그런 의사를 반영해 개정 필요성에 동의를 했다. 이 과정에서 청목회 회원들은 자기들의 뜻을 대변해준 의원들에게 10만원짜리 소액 후원금을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치후원금이란 무엇인가. 시민들이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동하거나 그럴 것으로 믿는 의원을 위해 제공하는 정치자금이다. 그것은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높이고, 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요소이다. 청목회 회원들은 의원들의 공식 후원회 계좌를 통해 10만원씩 후원했다고 한다. 합법적 절차를 밟은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청목회의 의도를 문제삼고 있다. 법개정을 위해 집단적으로 결의하고 후원했다는 것이다. 물론 청목회 회원들이 후원금 계좌를 통하지 않고 다른 경로로 돈을 제공했다면, 이는 명백한 잘못으로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적법한 후원금인데도 불구하고 특정 의도의 개입 여부로 재단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만일 적법한 후원금도 사법처리 대상으로 간주한다면 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지지를 조직하는 활동 자체가 어렵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개정의 의도와 배경이 무엇이며, 그 내용이 정당한지는 정치적으로 평가받을 사안이다. 검찰이 나서서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검찰은 정치행위를 재단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 검찰은 정치에 개입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려야 한다. 검찰의 눈치를 보며, 검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정치를 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것을 어떻게 온전한 의미의 정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번의 경우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중이었고,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었다. 과잉수사이자 검찰권의 남용이며, 3권분립 원칙에 대한 위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무리한 검찰의 태도로 인해 최근 민간인 불법 사찰 덮기 의혹, 떡값·성상납·스폰서 등의 비리, 정치 검찰 논란 등 나쁜 평판을 은폐하고 관심을 돌리려는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검찰은 알아야 한다. 검찰은 정치 위에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다. 정치와 시민의 감시와 견제가 있을 때만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존재이다.
검찰이 청원경찰친목협의회의 입법 로비 의혹을 밝히기 위해 여야 국회의원 11명의 후원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자 정치권이 들끓고 있다. 민주당은 휴일인 7일 긴급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열어 대통령 사과와 검찰총장 퇴진을 요구했다. 이회창 선진당대표는 성명을 내고 "압수수색은 입법부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이날 당·정·청 9인 회동에서 정부측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
2010.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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