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넘어오니 날이 맑다.
내일로(Rail路)여행중인 아들래미를 광주역에서 만나 해장국 한그릇 먹고 소쇄원으로 향했다.
애양단
오곡문
제월당
정천
연지.
소쇄원감상하기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천득염
흔히 한국의 전통정원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을 받고 있는 소쇄원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소쇄원을 어떻게 이해하고 감상하여야 하는가? 5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간 오늘까지도 우리들은 왜 소쇄원이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가?
전라남도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사적 제304호)은 1520년경에 양산보가 조영한 별서(別墅)원림이다. 별서란 선비들이 세속을 떠나 자연에 귀의하여 은거생활을 하기 위한 곳으로 저택에서 떨어진 산수가 빼어난 장소에 지어진 별저(別邸)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소쇄원은 살림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경치 좋은 곳에 조성된 원림으로 전원생활과 문화생활을 즐기는 곳이라 할 것이다. 소쇄(瀟灑)라는 어려운 한자는 물 맑고 시원하다는 뜻이니 소쇄원이란 물 맑고 시원하며 깨끗한 원림이라고 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소쇄원을 정원(庭園)이라고 해야 할지 원림(園林)이라 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으나 원림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원림이란 정원과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의 뜻은 사뭇 다르다. 정원이란 말은 일본인들이 메이지시대에 만들어낸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일제시대에 이식된 단어이다. 일반적으로 정원이 도심속의 주택에서 인위적인 조경작업을 통하여 동산의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라면 원림은 교외에서 동산과 숲의 자연상태를 그대로 조경으로 삼으면서 적절한 위치에 집과 정자를 배치한 것이다.
양산보의 자는 언진, 호는 소쇄공이라 했으며 연산군 9년(1509) 광주 서창에서 양사원의 세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양산보는 어려서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나 당시 왕도정치를 구현하고자 신진사류들과 함께 정치개혁을 시도하던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남곤 등 훈구파의 대신들에게 몰려 화순 능주로 유배되어 이 때 양산보는 귀양가는 스승을 모시고 낙향했으나 스승인 조광조가 같은 해 겨울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아 세상을 뜨게 되자 큰 충격을 받아 벼슬길의 무상함을 깨닫고 세속적인 뜻을 버린 채 산수경치가 뛰어난 고향에 은둔하게 되었다. 이때 양산보의 나이 17세였으니 창암촌의 산기슭에 소쇄원을 꾸미게 된 동기가 된 것이다.
소쇄원에 대한 예전의 모습은 송시열이 그린 그림을 1755년에 판각한 소쇄원도가 전해지고 있어 짐작할 수 있었으나 얼마 전 안타깝게 분실하고 말았다. 이 목판화에는 양산보의 사돈인 하서 김인후가 당시 소쇄원을 보고 쓴 48수의 시제가 새겨져 있다. 이 시제에는 각각 20자의 한시가 만들어 졌으니 이를 소쇄원48영이라 한다.
이 목판화에서 보면 소쇄원은 약 2,000평의 계곡주변에 조성되었는데 입구에는 투죽위교(透竹危橋)라는 목교가 있고, 황금정(黃金亭)이란 정자와 숲이 있으며 작은 지당(池塘)에 연꽃과 고기가 놀고 있으며 물레방아와 물을 끌어가는 나무 홈대가 설치되어 있다. 제월당, 고암정사, 부훤당, 광풍각, 오곡문, 죽림재, 소정 등 건물이 있다. 제월당 주변에는 단을 지어 매화, 측백, 노송, 도(桃) 등이 심어졌고 계곡가에는 버들, 은행, 자미, 벽오동, 죽, 노송이 심어져 있다. 계곡의 위아래에는 두 개의 외나무다리가 그려져 있고 광석에 누워 달을 보고 상석에 않아 장기를 두며 조담(槽潭)에서 방욕(放浴)을 하고 탑암(榻岩)에서 정좌하는 등의 내용이 아주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화목(花木)으로는 집 마당과 담 안에는 동백, 파초 등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긴 담장 벽에는 하서의 48시제가 걸려 있고 괴석(怪石)과 석가산(石假山)이 그려져 있으며 그림에는 모두 이들의 이름이 써놓고 있다. 지금은 그림에 나타난 것들 중에서 일부만 남아 있다.
그렇다면 소쇄원을 어떻게 감상하여야 할까? 흔히 소쇄원을 보고 쉽게 느끼는 감정은 인공이 덜 가해진 원림으로 조그마한 계곡과 그 사이를 흘러 떨어지는 물, 온갖 나무와 화초,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로 이루어진 아름답고 포근한 공간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어찌 보면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소쇄원의 모습을 너무 분석적으로 해석한 나머지 그 내부에 의미를 자꾸 부여하여 오히려 감상하기가 어려워진다. 우선 있는 그대로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현상에 대하여 쉽게 받아들이며 즐기면 된다. ‘아! 참 좋다’로 시작되는 느낌에서 출발하여 누가, 언제, 왜 이 정원을 만들었고 어떤 것들로 구성되었으며, 그 안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었는지 차츰 관심을 확대하여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소쇄원을 찾아가 보면, 우선 입구에서부터 마을 뒤 울창한 대나무 숲 사이로 난 넓고 길다란 오솔길의 분위기에 빨려 들어간다. 뭔가 새로운 세계로 인도되고 이끌려가면서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함과 막연한 기대감에 젖는다. 입구 오솔길은 경사로로 되어 있다. 오솔길의 입구부분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한걸음 한걸음 소쇄원 안으로 걸어 올라가면 사람의 이동과 시간의 흐름이 함께 하여 원림의 구성물들이 하나씩 시야에 전개되며 나타난다. ㄱ자로 꺽인 담장과 조그마한 초정(草亭)이 보이며, 계곡건너편에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광풍각, 제월당 건물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한참은 건물만 보다가 주변에 서있는 나무와 꽃도 느껴지며, 고개를 숙이면 계곡과 조그마한 폭포, 굽이쳐 흐르는 물, 계곡을 건너는 나무다리, 물을 흘러가게 하는 홈이 파인 통나무, 네모난 연못과 넘쳐흘러 연결되는 물길, 즉 도랑 등이 보인다.
몇 개의 낮은 단을 오르며 좀더 안으로 걸어 올라가면 축대 아래로 두 개의 연못이 조금 전 보다 가까이 보이고 맑은 물이 흐르는 물길이 길게 연결되어 흐르고 있다. 축대 위에는 초정이 있는데 소쇄원에서 가장 오래된 터에 근래에 옛 모습을 본 따 새로이 지은 것이다. 이를 대봉대(待鳳臺)라 한다. 봉(鳳)을 기다리는 곳이라 하니 귀한 손님 오기를 기대하는 정겨움이 가득하다. 또 대봉대(待鳳臺) 옆에는 벽오동이 심어졌는데 [봉황은 聖王이 나오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고 오동이 아니면 앉지 않으며 대나무 열매(竹實)가 아니면 먹지 않고 단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는 옛 얘기와 관련 된 것 같다.
대봉대 뒤쪽은 담장으로 돌려진 조그마한 마당이 있다. 담장에 박힌 애양단(愛暘壇)이란 글씨처럼 따뜻하게 둘려 쌓여진 공간이다. 부모님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효(孝)의 공간이다. 소쇄원에서 겨울에 눈이 내리면 가장 빨리 녹는 따뜻한 공간이다. 이 애양단에서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올려보면 제월당과 매대(梅臺)가 우측에 있고 내려보면 멀리 대나무 숲 물줄기와 계곡, 광풍각이 발 아래에 놓여 있다.
애양단을 지나 계곡을 건너려면 조그마한 통나무 하나로 줄타기하듯 지나야 한다. 독목교라는 이 다리는 건너는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누군들 떨어질까 위험하여 위엄을 갖추면서 걸을 수 없다. 통나무 다리 밑으로는 五曲門이라는 글이 새겨진 담장 밑으로 흘러 내려온 물길이 다섯 번 굽이쳐 돌면서 작은 소(沼)를 이루기도 하고 일부는 갈라져 통나무 홈통을 타고 작은 연못으로 내려간다.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바위는 위에서 바둑을 두고 차를 마시며, 거문고를 탈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여유롭다.
계곡물은 소쇄원 영역을 둘로 나누어 놓는다. 풍부하지 않지만 면면히 이어져 소쇄원의 생기를 돋우는 생명수가 되고 있다. 조그마한 연못이라 칭하는 조담(槽潭)에서 머무르고 소폭(小瀑)을 만들어 떨어져 십장폭포를 이룬다. 이 물이 살아야 소쇄원의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요즘은 말라가고 만 있어 안타깝다.
소쇄원의 사랑채와 같은 광풍각에 이르는 길은 위와 아래로 통한다. 손님이 저 아래 버드나무에 말을 매두고 광풍각 아래에 이르러 주인을 부른다. 소쇄원의 출입구는 어디였을까? 동입서출(東入西出)이라 하면 초정과 애양단 쪽을 입구로 하여 독목교를 지나니 위에서 아래로 이동할 것이나 편리하기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지금 넓고 길다란 길은 나중에 만들어진 것일 게다. 아마 계곡을 따라 올라 오면 우측으로 난 길이 광풍각 아래에서 투죽위교(透竹危橋)라는 다리로 이어져 계곡을 건넜을 것이다.
광풍각은 온돌방의 따뜻함과 협소함, 마루의 시원함과 넓음, 작지만 당차고 아담한 공간의 핵심으로 모든 것이 모이고 확산되는 정점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 앉아서 공간을 느끼며 주변을 바라 보는 것은 소쇄원의 백미이다.
제월당은 몇 개의 단을 올라 높이 위치하는데 매대의 길다란 담장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른다. 광풍각과는 ㄱ자로 꺽인 담장으로 굴절되고 桃塢라는 ㄷ자 마당을 지나 고개를 숙여야만 지날 수 있는 조그마한 대문으로 이어진다. 제월당은 안채와 같다. 높은 기단을 오르는 계단이 있고 넓지 않은 토방에는 신방돌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구들방과 개방된 루 마루가 좁고 긴 마당과 나란히 놓여 있다. 마루 위에 걸려진 각종 시문(詩文)에는 시간의 흐름이 쌓여 있다. 특히 김인후가 1548년에 지은 소쇄원48영이 돋보인다. 내려다보는 제월당의 여유는 마당 때문에 더 크다. 제월당 옆의 공지는 공부방인 고암정사와 부훤당의 옛터였으나 복원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예전에는 많은 학도들이 모여 학습하였으리라.
이처럼 일련의 흐름은 뒷산 마을로 이어지거나 혹은 다시 소쇄원 출입구로 되돌아온다. 일부는 담장으로 일부는 대밭으로 그리고 일부는 이름 모르는 나무로 경계를 이룬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 느끼다 눈을 들어 멀리 쳐다보면 뒷산과 주변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 숲과 각종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소쇄원인가? 담장 안에 국한된 소쇄원은 한정되고 눈에 보이는 것만 느껴져 다소 무미건조하다. 멀리 상념의 나래를 펴서 관조하면 무등산도 느껴지고, 보이지 않고 느끼기만 하는 나주의 금성산까지도 확장된다. 선비들의 도가적 이상향이며 염원의 대상인 ‘무이구곡(武夷九曲)’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구곡은 뒷산 꼭대기까지 이른다. 이런 내용들은 소쇄원을 드나들었던 여러 시인묵객들의 글에서 읽을 수 있다.
소쇄원은 보고 느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출렁이는 나뭇가지, 나뭇가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가득한 푸르름, 위로 속삭이듯 빛나는 햇빛 등을 비롯하여 도가적 생활, 이 자연속에 녹아난 한적함과 넉넉함, 이러한 아름다움은 결코 하나 둘에 한정되거나 끝나지 않는다.
‘소쇄원48영’은 소쇄원의 건축적 구성을 명확히 보여주고 각 공간에서 일어난 행위와 감상까지 생생히 전해준다. 시에 나타난 정원의 모습과 이미지는 그 자체를 건축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정도이다. 이 시는 소쇄원의 조영계획 개념을 핵심적으로 간파한 것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대숲의 바람과 소쩍새 울음, 엷은 그늘과 밝은 달, 그리고 취중에 나오는 시와 노래다. 청각적인 소리, 시각적인 빛과 그늘의 대조, 그리고 관람자의 문학적인 감수성으로 소쇄원의 진가를 포착한 것이다. 소쇄원은 시각적 차원을 넘어선 청각적인 정원이며 궁극적으로 시적 감응을 불러일으킬 문학적인 정원이다. 자연의 기운과 인간의 마음이 하나로 합치하는 곳, 그곳을 만들기 위해 동원된 청각과 음영의 효과, 이제는 우리도 문학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소쇄원의 건축적 가치를 찾아야 한다.
이처럼 소쇄원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만이 느끼는 주관적인 감상이 될 수도 있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객관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가벼운 즐김이 있다면 소쇄원의 구성요소와 내재적 의미를 탐구하는 분석적 연구도 있을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알고 보면 그 즐거움이 더욱 크다는 말은 소쇄원 감상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인지 모른다. 소쇄원을 꾸민 양산보는 왜, 여기에다 이런 정원을 조성하였을까 하는 원론적 의문과 함께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물음을 먼저 던져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또한 소쇄원의 계곡과 물, 나무와 화초, 건물과 담, 여러 단의 축대, 나르는 새와 나뭇가지를 건너는 다람쥐가 있다는 것을 보고 흐르는 물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 대나무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진정 소쇄원의 맛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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