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의원회관 1층을 지나다 지하1층 중앙정원에 핀 꽃을 보았다.
상사화였다.
선암사에서 만난 그꽃을 여기서도 보다니.
한가운데 고고하게 핀 꽃이 아름답다.
상사화를 둘러싸고 있는 무늬둥굴레.
중앙일보 입력 2011.08.22 00:08 / 수정 2011.08.22 00:17
상사화 Lycoris squamigera
시(詩)를 찾아서 - 정희성(1945~ )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
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시가 무엇인지
시로써 무엇을 이룰지
깊이 생각해볼 틈도 없이
헤매어 여기까지 왔다
(……)
한여름 뜨락에 발돋움한 상사화
꽃대궁만 있고 잎은 보이지 않았다
한줄기에 나서도
잎이 꽃을 만나지 못하고
꽃이 잎을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
아마도 시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인 게라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인 게라고
끝없이 저잣거리 걷고 있을 우바이
그 고운 사람을 생각했다
상사화 피고 지니, 여름도 뒷걸음질이다. 선선해진 바람에 꽃은 생기를 잃었다. 봄부터 초록의 잎으로 햇살을 끌어모아 피운 진분홍 꽃이다. 꽃 피울 힘을 애써 지어낸 이파리는 꽃 피기 전에 스러졌다. 이파리 없이 외롭게 피어난 상사화 꽃에는 그래서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이 담겼다. 바람에 스며든 가을 기미로 상사화 꽃대궁은 고개를 떨구고 기억 저편으로 돌아갈 채비다. 바람이 꽃에게 이제 그만 가라 한다. 그리움 남긴 채 사라지라 한다. 말(言)과 절(寺)로 이룬 시(詩)처럼 가까이 있어도 끝내 만나지 못하는 슬픈 운명이다. 한 번 더 간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예쁜 꽃, 고운 시다.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
시(詩)를 찾아서 정희성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 지금까지 시를 써 오면서 시가 무엇인지 시로써 무엇을 이룰지 깊이 생각해볼 틈도 가지지 못한 채 헤매어 여기까지 왔다 경기도 양주군 회암사엔 절 없이 절터만 남아 있고 강원도 어성전 명주사에는 절은 있어도 시는 보이지 않았다 한여름 뜨락에 발돋움한 상사화 꽃대궁만 있고 잎은 보이지 않았다 한 줄기에 나서도 잎이 꽃을 만나지 못하고 꽃이 잎을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 아마도 시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인 게라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인 게라고 끝없이 저자 거리 걷고 있을 우바이 그 고운 사람을 생각했다 시를 찾아서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발표 안 된 시 두 편만 가슴에 품고 있어도 나는 부자다 부자로 살고 싶어서 발표도 안 한다 시를 두 편 가지고 있는 동안은 어느 부자 부럽지 않지만 시를 털어버리고 나면 거지가 될 게 뻔하니 잡지사에서 청탁이 와도 안 주고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거지는 나의 생리에 맞지 않으므로 나도 좀 잘 살고 싶으므로
정희승(鄭喜成, 1945.2.21∼ ) 1945년 경남 창원 출생. 대전·이리·여수 등지에서 성장했다.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0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변신》이 당선되어 등단. 1960년대에 참여시를 개척한 김수영(金洙暎)·신동엽(申東曄)의 뒤를 이어 민중의 일상적 삶에 내재된 건강성과 생명력을 구체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견고한 사실주의의 시적 성취를 이룩한 1970년대의 대표적인 참여시인이다. 1981년 제1회 김수영문학상과 1997년 시와 시학사상을 수상했다. 저서에 시집 《답청》,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시를 찾아서》 등이 있으며, 번역서 《몽유왕국을 위한 음악》과 김태형과 공저인 이론서 《한국시의 이해와 감상》 등이 있다. 2002년 현재 숭문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및 대기고등학교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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