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울집

통영, 남해 여행(1) -2017/08/10~12-

思美 2017. 8. 1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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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네는 바빠 남은 식구끼리 여름휴가를 맞추어 떠났다.

이번 휴가지는 통영으로 정했다.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통영 조선후기 남녘에서는 가장 큰 도시였다. 근대화되며 철도가 놓이기 전까지는 그러하였을 것 같다.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윤이상등 당대 쟁쟁하던 이들의 고향, 정지용, 백석 등 유명인사가 찾아 자취를 남긴 도시가 통영이다.

 


첫째날 : 미륵도, 해저터널, 동피랑, 서피랑


경상남도의 서남부에 위치하는 통영시는 고성반도의 중남부와 부속도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선시대 후기 수군을 통괄하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위치하고 있었던 곳이다.

통영이라는 명칭은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인 말로 선조 37년(1604) 통제사 이경준이 두룡포(지금의 통영)로 통제영을 옮기면서 시작되었다.(통영시 조사연구보고서 제107책 중에서)


미륵도 케이블카

톹영시내를 내려다 보며 미륵산으로 올라간다.


미륵산 정상가는 길에 여러 볼거리들이 많다.


정지용 시비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 만큼 바닷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통영 주변에는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북쪽에 두루미 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통영

역시 섬과 별다름이 없이 사면이 바다이다. 벼랑 가에 얼마쯤 포전이 있고 언덕배기에 대부분의

집들이 송이버섯처럼 들앉은 지세는 빈약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연 어업에, 혹은

어업과 관련된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면 통영은 해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통영 근처에서

포획하는 해산물이 그 수에 있어 많기도 하거니와 고래도 그 맛이 각별하다 하여 외지

시장에서도 비싸게 호가되고 있으니 일찍부터 항구는 번영하였고, 주민들의 기질도 진취적이며

모험심이 강하였다.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중에서)







명정골 우물에서 서문고개로 가는 길을 되돌아 서면 대밭골이다. 이 대밭골에서 서문고개 가는

길과 갈라진 길을 접어들어 줄곧 나가면 판데로 가게 된다. 판데는 임진왜란 때 우리 수군에

쫓긴 왜병들이 그 판데목에 몰려서 엉겹결에 그곳을 파헤치고 한산섬으로 도주하였으나, 결국

전멸을 당하고 말았다는 곳이다. 그래서 판데라고 부른다. 판데에서 마주 보이는 미륵도는 본시

통영과 연결된 육로였는데 그러한 경위로 섬이 되었다. 미륵도에는 봉화를 올리는 고봉 용화산이

있고 그 아래에 봉수골, 더 내려오면 통영 항구가 바라보이는 해명나루가 있다. 바다에 가서 죽은

남편을 뒤따라 순사한 여인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용화산을 넘어서면 첫개와 그밖에 소소한

어촌이 있고, 넓은 바다를 한눈으로 굽어보는데, 대충 큰 섬만 추려도 사랑섬, 추도, 두미도,

욕지섬, 영화도 등 많은 섬들이 있다. 되돌아와서, 통영 육지도 막바지인 한실이라는 마을에서

보는 판데는 좁다란 수로다. 현재는 여수로 가는 윤선의 항로가 되어 있고 해저 터널이 가설되어

있다. 왜정시에는 해저 터널을 다이꼬보리라 불렀다. 역사상으로 풍신수길이 조선까지 출진한

일이 없었는데 일본인들까지 해저 터널을 다이꼬보리라 불렀으니 우습다.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중에서)


-다이꼬보리(たいこうぼり, 太閤掘) : 토요토미히데요시(높혀 太閤이라 부름)에게 바치는 굴이라는 의미.

임진왜란때 수많은 조상에 죽은 곳을 매일 밟고 지나는 다리를 놓기 싫어서 해저터널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용문달양(龍門達陽):바다를 지나 육지(양지)에 닿는 용문. 터널을 지나 도착하는 곳이 산양이다.











벽화가 되어버린 딸래미.


꽃들!!

•서포루(西舖樓)
북포루와 함께 통영성 동·서·북쪽의 眺望이 탁월한 곳에 세운 세 곳의 포루 가운데 하나이다.

세병관 서쪽 고립구릉의 정상부에 입지해 있다. 서포루의 양측으로는 사면에 기대어 축조한 성벽이 부분적으로 드러나 있다.(통영시 조사연구보고서 제107책 중에서)

서포루에서 바라 본 통영항.

서포루에서 바라 본 세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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