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 세병관, 충렬사, 통영한산대첩축제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다고 해서 통영이 되었다. 삼도수군통제사는 충청, 전라, 경상 수군을 총 지휘하는 종2품 관직으로 임진왜란 발발 후인 선조26년(1593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 삼도수군통제사의 본영이 삼도수군통제영이며, 약칭으로 통제영, 통영이라 했다. 초대통제사 이순신의 한산도진영이 첫 통제영이었다. 선조37년(1604년) 제 6대 통제사 이경준이 두룡포(현 통영)로 통제영을 옮긴다.
•문화동 벅수(중요민속문화재 제7호)
세병관 입구의 길가에 홀로 세워져 있는 石長丞으로, 마을의 재앙을 막고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주민들이 벅수계를 만들어 1906년에 세웠다.
크기는 높이 201㎝, 둘레 155㎝이다. 원래는 지금의 자리에서 약 25m 정도 떨어진 해안쪽에 좀 더 가까이 위치해 있었으나 도시계획에 의해 1983년 1월에 옮겨 왔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전면에는 “土地大將軍”, 뒷면에는 “光武十年 丙午 八月○日 同樂洞 立”이라 새겨져 있다.
문화동(文化洞)의 동북방에는 세병관(洙兵館)과 산이 있고 서남방에는 충무시내의 높은 지대가 있으며, 벅수는 이 줄기가 이어지는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이는 문화동 벅수가 악귀나 왜구의 침범을 막고 고을을 수호하기 위한 읍락비보의 기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외양을 보면 두상과 몸통의 크기가 대체로 균등한 편이다.
머리에는 탕건을 둘렀으며, 눈은 튀어나올 듯한 퉁방울이다. 입술은 옆으로 크게 찢어진 채 치아를 훤히 다 보이고 있으며, 송곳니 두 개가 뻗어 나와 공포감과 미소를 동시에 짓고 있는 듯하다.
토박이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예전에는 매해 봄과 가을 두 차례 제의를 지냈으나 일제강점기부터 단절되어 현재까지 지내지 않고 있다.(통영시 조사연구보고서 제107책 중에서)
• 통영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통제영지(統制營址)](사적 제402호)
삼도수군통제사가 경상·전라·충청 3도의 수군을 지휘·통할하던 본영이다.
초대 통제사 李舜臣은 한산도에 통제영의 진영을 개설하고 장기전에 임했으나 丁酉再亂으로 閑山鎭營이 폐허가 된 후 통제영은 전세에 따라 여러 곳을 전전하게 되었다.
1604년, 제6대 통제사 李慶濬이 거제 烏兒浦에서 頭龍浦로 통제영을 이설함에 따라 통영의 역사가 열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1605년, 艅山 남쪽 기슭에 洗兵館을 창건하고 運籌堂, 경무당, 백화당, 병고 등 부속 건물을 차례로 건립함으로써 통영은 조선시대 유일한 ‘計劃軍事都市’가 되었다.
2000년부터 2013년에 걸쳐 당시의 통제영을 복원하기 위해 세병관과 주위의 학교와 관청을 포함하는 총 29필지 4만1,022㎡에 이르는 넓은 구역을 사적으로 지정하고, 복원공사를 하였다.(통영시 조사연구보고서 제107책 중에서)
세병관(洗兵館, 국보 제305호)
통제영 제6대 통제사 李慶濬이 宣祖38년(1605년)에 건립한 통제영의 客舍이다.
건물은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민흘림의 圓柱를 세웠다.
包는 외진 평주 위에만 枓을 짜 올린柱心包式이다.
세부적으로는 翼式과 多包式 수법이 절충되어 있다.
규모는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와가이다.
건물의 4면은 창호나 벽체 없이 개방되어 있다.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시설했으며, 뒷면 가운데에는 한 단 높은 마루를 설치하여 임금을 상징하는 殿牌를 모셨다.
세병관은 17세기 초에 건축된 목조건물로 경복궁 慶會樓, 여수 鎭南館과 더불어 현존 조선시대 목조건축물 가운데 가장 큰 건물에 속한다.
위의 건축물과 함께 그 역사성과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건물로 평가되어 2002년 10월 14일, 國寶로 승격되었다.
洗兵은 唐代의 문인 杜甫가 지은 「馬行洗兵」이란 辭에서 따온 것이다.
“安得壯士挽天河 淨洗甲兵永不用”이란 글에서 보듯, 銀河水를 끌어와 갑옷과 兵仗器를 씻고 영원토록 쓰지 않았으면 하는 平和 希求의 염원이 담겨 있다.
현판의 글씨는 제136대 통제사 徐有大의 것이라 전한다.(통영시 조사연구보고서 제107책 중에서)
세병관 글씨는 서유대 제 136대 통제사가 재임시(1779-1781)썼다.
삼도수군통제영을 나와 충렬사로 간다.
통영 충렬사(忠烈祠, 사적 제236호)
제7대 통제사 이운용이 왕명으로 선조 39년(1606)에 충무공 이순신의 업적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현종 4년(1663)에 사액되었고, 현판은 문정공 송준길이 썼다.
이후 동·서제를 비롯한 부속건물들이 후임 통제사에 의해 건축되어 오늘에 이른다.
봉사는 2월과 8월의 중정일에춘추향사를 받들고 있다.
4월에는 충무공탄신제를 봉행한다. (통영시 조사연구보고서 제107책 중에서)
백석 시비. 충렬사 건너편에 있다.
통영한산대첩축제중. 저 너머 세병관이 보인다.
축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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