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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22] 남산동 아미산 -2007/08/16-

思美 2010. 4. 1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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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22] 남산동 아미산
순교기념관 관덕정엔 명주실로 짠 교황 초상화가…
언덕배기 작은 골목엔 버려진 초가집이 애처롭게…
문우관길 아담한 기와집에 들어가면
善政 기리는 비석도 구경할 수 있어

지난주 교동권역에서 한참을 이동, 반월당 남편으로 왔다. 반월당 네거리에서 남쪽으로 남산시장 네거리까지, 서쪽으로는 반월당 네거리에서 계산오거리까지가 이번에 답사할 지역이다. 행정상으로는 남산2동, 예부터 부르던 이름으로는 아미산 지역이다. 아미산은 대구적십자병원 뒤편 야트막한 산을 말하는데, 산이라기보다는 구릉 정도에 가까운 주택가이다. 예전엔 무당집, 점집, 철학관 등이 많아 무당골이라고 불렸단다.

적십자병원 주차장 뒤에 자리잡은 관덕정부터 찾았다. 조선시대 이 곳은 군사 훈련장이면서 죄수들의 처형장소. 이윤일 성인(1812~67)을 비롯해 청송, 영양, 봉화 등지에서 붙잡혀 대구감영에 수감 중이던 가톨릭 신자 21명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가톨릭 대구대교구에서 한국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념해 순교기념관으로 1991년 5월에 개관했다.

지하1층, 지상3층의 이 건물은 굳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숙연한 마음으로 볼 만한 자료들이 많다. 골목탐사팀이 꼭 추천하고 싶은 것은 1)명주실로 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초상화(제3전시장·1984년 한 천주교 신자가 명주실로 교황의 초상화를 짜서 바티칸으로 보냈는데 교황이 감동해 친필 사인을 한 뒤 다시 보내주었다 한다) 2)대구대교구의 역사를 이야기로 엮은 다양한 문양의 스테인드글라스(제4전시장) 3)관덕정 누각(옥상)이다. 누각은 당시 관덕당과 함께 있던 정대를 복원한 것인데, 누각의 단청무늬는 한국전통문양과 가톨릭문양이 조화롭게 새겨져 독특하다.

관덕정에서 나와 동쪽으로 향했다. 언덕배기 작은 골목길에 한두개의 초가집이 남아 있다. 동화사 포교당 보현사 바로 아래쪽이다. 230만명이 사는 21세기 대도시에 초가집이라니, 존재 자체가 신기하다. 골목탐사 가이드에 따르면 이 일대에 초가집 20여채가 2002년까지도 남아 있었다 한다. 이엉 위에 슬레이트를 덮어두어서 첫 눈에 초가집임을 눈치채기는 어려운데 자세히 보면 잘 보인다. 당시엔 사람들이 살았다는데 지금은 버려진 듯하다. 재개발 바람에 이 초가집도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다.

보현사에서 남서쪽 맞은편의 현 동부교육청은 옛 복명보통학교(1999년 범물동으로 이전) 자리다. 그 전신이 사립 명신여학교(1910년 설립)인데 1925년 김울산 여사가 전 재산을 기부해 이 학교를 인수, 복명여자보통학교가 됐단다. 김울산 여사는 기생출신으로 여성 교육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인물. 천한 직업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헌신했던 이에게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남산동 아미산에는 또 하나의 민족교육기관이 있었으니 바로 교남학원이다. 현 대륜고의 전신이다. 1924년부터 42년까지 남산동 657(SK허브스카이 주상복합빌딩 부지로 편입됨)에 있었다. 민족시인 이상화가 무보수로 영어와 작문을 가르쳤고, 후에 대륜고의 교가가 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인쇄골목 중간쯤에서 안으로 들어간 문우관길에는 아담한 기와집이 있다. 담장이 야트막해서 밖에서 마당이며 건물이 다 보인다. 마당엔 국화, 봉선화, 배나무 등이 심겨져 있어 이 골목의 풍경을 환하게 만든다.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이 집은 조선의 사립교육기관인 상덕사와 문우관, 그리고 관찰사의 선정(善政)을 기리는 비석까지 함께 있는 곳이다. 문을 빠끔 열고 들어가면 관리하시는 아줌마가 맞아준다. 자유롭게 구경해도 된다. 집 안엔 상덕사를 설명하는 표지판이 있는데 문우관에 대해서는 없고, 있는 설명도 어려운 말로 돼 있어 아쉬움을 준다. 일반인들을 위해 건물 바깥에 안내판을 세우면 더 좋을 듯 하다.

인쇄골목으로 빠져나와 계산오거리까지 거의 다오면 천재화가 이인성의 아틀리에가 있었던 남산병원 자리(초대 병원장 김재명씨는 화가 이인성의 장인이다)다. 지금은 도로에 편입돼 흔적도 없다. 병원의 3층을 작업실로 썼다고 한다. 지금도 인근 골목길에 남아 있는 남산병원 사택엔 2대 병원장(초대 병원장의 장남)의 아내가 살고 있다. 연세와 나이를 물으니 손사래를 치며 "시집온 사람에게 이름과 성이 있습니까. 나이는 이제 8학년 다 됐습니다"라고 했다. 집에 남아 있는 이인성 화가 관련 사진과 병원 사진을 보여주며 옛날 이야기를 전해주는 목소리에서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감춰지지 않는다.

남산2동은 낡은 주택가, 그리고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섬 같은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대비되는 주거 지역이다.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는 세월이 조금은 느리게 흐른 것 같다. 그러나 남은 세월이 어떤 속도로 이 지역을 지나갈지는 모를 일이다.

"대구 경기 좋은지 안 좋은지 이곳에 오면 바로 알 수 있지"

◇ 인쇄골목 가보니…

"이곳을 보면 대구 경기를 가늠할 수 있죠. 지역기업이나 개인사업자의 홍보물량이 바로 경기 바로미터잖아요."

중구 남산동 계산오거리에서 남문시장까지 약 1㎞거리에 700여 개의 크고 작은 인쇄관련업체가 밀집해있는 남산동인쇄골목. 활판인쇄부터 최신 디지털인쇄까지 현대 인쇄문화의 역사를 축소해놓은 대구의 대표적인 명물 거리다. 그러나 끝이 안보이는 불경기 때문인지 무더운 날씨 탓인지 거리에 활기를 느낄 수 없다. 드문 드문 빈 사무실은 새 주인을 기다린지 오래된 모습이다. 그나마 규모있는 몇몇 업체만 최신설비 도입을 알리며 직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기획, 사진제판, 출력, 재단, 코팅, 지함 등 인쇄 관련 모든 업종이 집적돼 80년대까지만해도 장사 재미를 봤지. 영세한 인쇄·기획사도 괜찮았는데 IMF이후부턴 영 아니야." 20여년째 이곳에서 영업을 해온 한 업체 사장은 "이번 대선이 지나면 경기가 좀 나아지리라고 막연하나마 기대를 해본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길가에 내걸린 '인쇄출판지식산업단지 추진'현수막이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는 업계의 절박함을 투영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이 골목에는 아직 납활자 인쇄를 고집하는 곳이 네댓곳 있다. 희한하단 생각을 하고 한 곳을 찾아봤다. 납활자,정판대 등 모두 생경하다. 기계와 기구들은 멈춰선지 오래된 듯 기름 손질한 흔적이 안보인다. 62년 문선기술자로 출발해 46년째 활자인쇄를 하고 있는 여영일 사장(73)은 "요즘도 활자인쇄 물량이 있나"라는 질문에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손님이라고 해봐야 전산인쇄소나 자동기계가 할 수 없는 얇은 화지, 포장지 인쇄물 등이 고작이란 것. 때문에 이젠 영업에는 전혀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납을 만지는 직업이기에 돼지고기를 엄청 먹었다는 여담만 들려준다.

1930년대말 활판인쇄소가 하나 둘 모여들어 형성된 대구의 명물거리 남산동 인쇄골목. 도시재개발의 필요성과 함께 인쇄출판업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는 달서구 산업단지 추진 등으로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갈 채비를 하고 있다.

 

200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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