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가치있는 풍경, 유럽 어느 작은도시 온듯 서상돈이 교황에게 바친 땅에 신학교·수녀원 등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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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드망즈(안세화)주교가 사제 양성을 위해 건립한 유스티노신학교. 현재는 유스티노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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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르드지방의 성모 동굴을 재연한 성모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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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역사관에는 제병틀을 비롯한 수녀원에서 사용했던 각종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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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대구대교구 안에 있는 드망즈(안세화)주교 흉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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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시든 그 도시의 가장 전통적인 특색이 드러나는 동네가 있는가 하면,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는 동네가 있다. 전자(前者)는 친숙해서, 후자(後者)는 낯설어서 가치가 있는 법이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를 비롯해 대구의 가톨릭 관련 기관들이 몰려 있는 이 동네는 종교를 빼고 말할 수 없는 동네이지만, 대구시민이라면 누구라도, 후자의 가치를 앞세우고 종교를 초월해서 걸어볼만한 동네다. 행정구역으로는 남산3동. '남산동 아미산'(워킹투어 22회)에서 다뤘던 관덕정 순교기념관, 그리고 계산성당도 지척이다.
의문 하나. 대구의 가톨릭 관련 기관은 왜 이 동네에 다 모여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에 이 동네 역사의 절반 쯤이 있다. 이 동네 일대는 대구의 부자이자 애국자였던 서상돈(1850~1913)이 종묘원으로 운영하던 임야였다. 서상돈은 교황에게 이 일대 땅을 바쳤고, 그 땅에 가톨릭 소유 건물들이 하나둘 건립돼 지금의 가톨릭 타운이 됐다.
의문 둘. 서상돈은 이 엄청나게 넓은 땅을 왜 교황에게 바쳤을까. 그의 가문은 그의 고조부 시절부터 가톨릭과 인연을 맺었는데, 천주교가 탄압받던 시절 그의 백부, 삼촌 등이 순교할 만큼 독실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이 헌납한 부지에 건물들이 준공(주교관:1913년 12월, 유스티노 신학교: 1914년 10월, 성바오로수녀원 분원: 1915년 10월 완공)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1913년 6월 세상을 떴다.
이국적 풍경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한다. 유스티노 캠퍼스의 잔디 운동장과 프랑스풍의 벽돌 건물, 주교와 신부들이 잠들어 있는 성직자 묘지, 프랑스 루르드 지방의 성모 동굴을 본 뜬 성모당 건물과 넓게 펼쳐진 잔디 등은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이 유럽풍 건물들을 지은 이들은 중국인 기술자들이다. 1913년 드망즈 주교(대구교구 초대 교구장)의 주선으로 몇 명의 화교 건축기술자들이 남산동 교구청 근처 한옥에서 거주하며 주교관, 신학교, 수녀원 등을 지었다. 붉은 벽돌은 남산동 벽돌공장에서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프랑스 풍 건축 설계에 중국인 기술자들의 시공이라! 이 동네야말로 약 100년 전부터 '인터내셔널한' 동네가 아니었던가!
세월은 이 '인터내셔널한' 동네도 가만두지 않는다. 샬트르성바오로 수녀원 뒤편 등 곳곳에서 재개발 붐이 불고 있다. 천주교 소유 땅이 넘어갈 리는 없겠지만, 그 주변으로는 몇 년 내에 풍경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
다음회는 삼덕1·2가 - 공평동입니다
2007-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