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영남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26] 삼덕동3가·경북대병원 -2007/09/13-

思美 2010. 4. 16. 14:57
728x90
반응형

[골목탐사팀과 떠나는 워킹투어 .26] 삼덕동3가·경북대병원
익살스러운 인형이 지붕위에…담벼락엔 벽화가…"갤러리가 따로없네"
일본식 주택에 들어선 빛?미술관, 전통한옥 '마고재'와 절묘한 조화
입술·눈 달린'버스 도서관'도 눈길, 삼덕지하도 양쪽 벽면엔 나무그림이
마고재 지붕위에는 고 장욱진 화백의 모습을 한 인형이 누워 있다. 이 인형은 지난 5월 삼덕동인형마임축제때 미술가 등이 참여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마고재 지붕위에는 고 장욱진 화백의 모습을 한 인형이 누워 있다. 이 인형은 지난 5월 삼덕동인형마임축제때 미술가 등이 참여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삼덕동 3가에 나붙은 재개발관련 현수막. 대구의 다른 동네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삼덕동 3가에 나붙은 재개발관련 현수막. 대구의 다른 동네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대구공간문화센터에서 추진하고 있는 '우리집 문패 만들기' 현수막.
대구공간문화센터에서 추진하고 있는 '우리집 문패 만들기' 현수막.
일제시대 삼덕초등 교장 관사로 지어진 빛? 미술관.
일제시대 삼덕초등 교장 관사로 지어진 빛? 미술관.
대구시 청소년 쉼터 담장의 벽화.
대구시 청소년 쉼터 담장의 벽화.

대구시 중구 삼덕동3가는 담장허물기 운동의 진원지다. 담장은 이웃과의 단절을 상징한다. 그 단절을 확 부순 발상이 신선하다.

동덕로를 가로질러 골목길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함께 마을이 시작된다. 커다란 펼침막이 눈에 확 들어온다.

'도시계획조례 층수완화 개정안 통과'. 층수 문제가 해결돼 본격적인 재개발 업무가 가능해졌음을 알리는 내용이다. 병풍처럼 에워싼 고층아파트 숲이 이 마을까지 잠식해갈 것이다. 대구의 중심인 삼덕동3가도 재개발의 물살에 휩쓸리고 있는 것이다.

동덕4길은 1997년부터 줄곧 이어온 '살기 좋은 삼덕동 만들기'의 작품집(作品集)과 같다. 마을 한가운데 들어선 '대구시 청소년 쉼터'는 가출 청소년의 보금자리. 마을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대구시청소년쉼터 맞은편에는 1998년 11월 최초로 담장을 허문 개인주택이 있다. 예쁜 정원을 이웃과 함께 즐기려는 소박한 생각이 '담장 허물기 운동'의 출발이었다. 동사무소, 교회, 초등학교 등의 담장이 사라졌다. 대신 녹지공간이 들어섰다.

이 담장허물기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한 시민의 작은 실천이 놀라운 결과를 만든 것이다.

담장이 사라진 덕분에 이웃간의 정이 오가면서 새로운 마을공동체 문화가 만들어졌다. 빈 점포를 단장해 장난감 및 의류 재활용품을 파는 '녹색가게'와 무료 보육시설 '애기똥풀 놀이방', 일자리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1999년 녹색가게 벽면의 병뚜껑 벽화작업을 시작으로 벽화거리도 완성됐다. 페인트 대신 타일이나 병뚜껑, 항아리 조각 등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한 실험적 작업이 진행됐다. 암각화 벽화, 타일 벽화, 톱밥 벽화. 갤러리가 따로 없다. 벽화 대신 10원짜리 8천여 개를 촘촘히 붙여 모양을 낸 담벼락도 있었다. 10원짜리 동전을 떼어가는 바람에 모양이 좀 사납다. 최근 '우리집 문패 만들기'가 진행되면서 집집마다 내건 문패가 또다른 작품이 되고 있다.

벽화거리를 벗어나자 '빛? 미술관'이 반긴다. 일제시대 삼덕초등 교장 관사이던 이 일본식 주택은 아직도 큰방에 다다미가 깔려있다. 맞은편의 전통한옥 마고재와 함께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고재는 삼덕동3가의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다. 새의 발톱같이 긴 손톱을 가진 신선 마고할미에서 따온 이름이다. 전통 한옥의 맛을 그대로 살려 마을국악원으로 쓰인다. 단소와 검도, 천연염색 등을 배우는 장소로 활용되며 한가위 송편 빚기, 김장 담그기, 마을 잔치가 열리기도 한다. 마당 여기저기 널린 멍석이며 장작을 보노라면 금방이라도 잔치판이 벌어질 듯 하다.

신천을 향하는 길. 만화에서나 등장하는 독특한 버스를 만나게 된다. 커다란 입술에 두 눈이 달린 삼덕동 어린이 이동도서관 '코코'다. 몸값은 달랑 10원. 버스회사에서 거저 얻다시피해 내부를 개조했다. 마을 잔치때 도로를 달리기도 한다.

코코가 멈춰선 자리에서 동신교 방향으로 가면 삼덕지하보도가 보인다. 통로에 접어드니 또다른 세상으로 열린 문이 나타난다. 벽 가득 꽃이 흐드러진 입구를 지나니 양쪽 벽에 20여 그루의 나무가 줄지어 그려졌다. 힘겨운 날갯짓에도 비대한 몸통 때문에 자꾸 내려앉는 어린 새의 표정이 웃음을 자아낸다. 벽화 보는 재미에 보폭이 저절로 줄어든다. 통로를 벗어나니 대구시민의 공원이자 삼덕동3가 주민들의 산책로인 신천 둔치다. 날카롭게 솟은 메마른 건물들이 주변 풍경을 이루고 있다.

도심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삼덕동3가에도 재개발의 바람이 어김없이 불어왔다. 재개발 찬성과 반대로 주민들의 의견이 맞서면서 담장이 허물어진 자리에 마음의 담장이 더 높게 쳐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2007-09-13

100주년 맞은 경북대병원
대구 현존 가장 큰 근대건축물 …붉은벽돌 사이엔 세월의 흔적이 오롯이
사적 제442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북대 의대의 전신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사적 제442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북대 의대의 전신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올해로 개원 100주년(2월10일)을 맞은 경북대병원. 도심에선 자고나면 불쑥불쑥 고층건물이 솟아오르지만 경북대병원 본관 건물은 옛모습 그대로다. 맞은편 경북대의과대학 본관 건물의 외향 또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세월의 흔적을 담은 붉은 벽돌과 향나무 등 노목과 어울려 고풍스럽다. 건물만 보아도 오랜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경북대병원의 전신은 1907년 중구 동문동 1번지에 문을 연 동인의원. 민간 의료기관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이후 1910년 일제가 각 도에 설치한 식민지 초기병원인 '자혜의원'으로 바뀌었다가 1912년 경북도립대구의원이 됐다. 지역에서 민간이 문을 열었다가 관이 운영하는 유일한 병원인 셈. 1928년 10월 본관건물을 지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사적 443호로 지정된 병원 본관건물은 대구에 현존하는 근대건축물 중 가장 큰 규모. 북향 2층건물의 외관은 정면 중앙부 현관 포치(Porch)를 중심으로 동서로 대칭을 이루고 수평선을 강조한 르네상스풍. 모임지붕에 기와, 평아치·반원아치 창, 도머 창 등이 설치돼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외관뿐 아니라 복도와 호실 표시 등 내부도 건립 당시의 모습을 거의 간직하고 있다. 일부분 변화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원형이 잘 보존돼 식민지시대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병원측은 올해 100주년을 기념한 다양한 행사와 함께 오랜 역사에 걸맞은 의료박물관이나 의료역사관 설립을 준비 중이다. 박물관에는 왕진 가방, 목재 휠체어, 저울 등 동인의원 시절부터의 각종 의료기기와 자료 100여점을 전시할 계획. 현재 본관 중심 최상층 등에 박물관 설립을 검토 중이다.

의과대학 본관 건물은 병원본관 건립 5년 뒤인 1933년에 들어섰다. 원래 이 자리에는 1910년대 초 누에고치 제조소가 있었다. 병원 건물과 마주하고 있는 남향 건물로, 동서로 길게 배치된 붉은 벽돌 조적조 3층 건물. 정면 중앙부에는 4층으로 된 사각탑이 있고 옥탑도 있다. 옥탑은 철제 사다리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올라야 하나 중구 조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와 같다.

의대본관건물 역시 사적 442호로 건물 외관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해 역사적·건축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내부는 리모델링을 통해 원형 구조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김기홍기자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