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로 담장 너머 배수지 구경하는 재미 쏠쏠하네 실개천 졸졸졸 흐르는 햇빛촌도 꼭 가보세요 대구 첫 수도시설 '대봉1호기' 돔형탑은 전형적 일제 건축물 비구니만 기거하는 '서봉사'도 놓칠 수 없는 답사 필수코스 환전소·술집 들어선 캠프헨리 맞은편 동네는 또다른 풍경 연출
이천(梨泉)동, '배나무샘골'. 한글로 풀어보니 동네 이름이 정겹다.
건들바위 네거리에서 남쪽으로 수도산 아래에 배나무가 많았으며 그 밑에 맑은 샘이 솟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행정동과 법정동명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일제시대 첫 수도시설이 이 동네에 들어섰으니 예전부터 물이 많은 동네였나 보다. 물론 지금은 샘도, 개천도 다 없어졌지만 말이다.
물이 많았던 동네이니 만큼 답사 출발지는 첫 수도시설로 잡았다. 지금의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로 가려면 이천동 골목의 가파른 오르막길로 올라가는데, 상수도사업본부 건물 뒤편에 있는 대봉배수지가 대구의 첫 수도 공급시설이다. 배수지 일대는 일반인 출입통제구역이지만 배수지 담장을 따라 주민 산책로가 만들어져 천천히 산책하며 안을 바라볼 수는 있다.
1918년에 지어진 대봉1호기(용량 1천580㎥)의 돔형 탑은 전형적인 일제시대 건축물이다. 대리석으로 '日夕新'이라고 적혀 있는데, 낮이나 밤이나 새롭고 맑은 물을 공급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동편으로 2호기(1925년 완성·용량 1천380㎥), 염소투입실, 정합정 등 3개의 근대 건축물이 더 있다. 빨간 벽돌의 근대 건축물과 푸른색 담쟁이가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대봉배수지의 풍경을 완성한다. 1·2호기는 둘 다 원형 배수지인데, 대부분의 배수지가 사각인 점을 감안하면 희귀한 형태라고 한다.
대구지역 수돗물 공급의 시작점인 이곳은 일제 강점기의 만주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병력과 각종 기관을 위한 수돗물을 공급했던 것이다. 영욕의 역사가 교차되는 지점이다. 수도 시설이 점차 많아지면서 대봉배수지는 현재 남산동 일부 지역 1천281가구에만 물을 공급하고 있다. 아 참! 이 일대를 수도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말 그대로 '수도시설이 들어선 산'을 줄여서 부르는 것이다.
상수도본부 뒤쪽 문으로 나오니 바로 서봉사다. 도심 속 숲 속, 아주 명당자리다. 조선 후기 기생으로 지냈던 청신녀(불교를 믿는 여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가 이곳 양반의 재취로 혼인한 후 남편에게 상속받은 재산으로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 창건한 절이다. 비구니 들만 기거하며,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서봉사에서 계단(108계단이라고 하는데 직접 세어보지는 못했다. 아마도 절이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 것 같다)을 타고 내려와 캠프헨리 쪽으로 걸었다. 한참동안 평범한 주택가가 이어지다 캠프헨리 정문 맞은편 동네에 이르러 풍경이 확 달라진다. 러시아 무용수가 나온다고 써놓은 술집, 환전소,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새겨진 각종 감사패들과 외국 여성의 초상화가 내걸린 가게, 내국인의 출입을 금한다고 쓰여진 술집 등. 미군 부대를 바로 앞에 두고 살아가는 동네 풍경은 그랬다.
미군 부대는 건재하지만, 부대 앞 동네에서는 쇠락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한 때 이 동네의 세탁소가 엄청 호황을 누렸는데, 미군들이 제복을 부대 밖에서 세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냥 동네 세탁소로 남은 한 오래된 세탁소 앞에 '점포정리-세탁물 찾아가세요'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그런 동네에 바로 이어서 골동품, 고미술품을 파는 가게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흔히들 '이천동 고미술품거리'라고 부르는데, 1960∼70년대 일본인과 미군들을 상대로 고미술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이 거리가 형성됐다고 한다. 도로변에 맷돌, 농기구, 고가구 등이 나와 있지만 '고풍스러운 거리' 분위기까지는 내지 못하고 있다. 고미술품 특색이 살아난다면 인근의 봉산문화거리와 더불어 활성화될텐데 하는 아쉬움을 준다.
이천동에서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나 들어갈 수 없는 곳, 캠프헨리(약 24만㎡)는 일제시대 일본군 80연대가 주둔한 곳이었다. 광복 이후 미군이 들어오면서 대구중학교와 80연대를 합해 캠프헨리가 되었다. 주한미군의 병참 행정 사령부 역할을 한다. 문헌('부끄러운 미국문화 답사기', 2004년)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며칠만 쓰고 돌려준다고 하며 대구중학교 교정 운동장에 주둔한 캠프헨리가 벌써 60년 넘게 자리잡고 있으니 씁쓸하게도 이천동의 '터줏대감'은 캠프헨리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지금까지 확정된 미군기지 반환 협상에서 캠프헨리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실개천 졸졸졸 흐르는 햇빛촌도 꼭 가보세요
고미술품상가 맞은편 이천동은 '햇빛촌'이라는 예쁜 별명을 갖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불교사회복지회의 복지시설과 조직들이 하나둘 이 동네에 생기면서 나름대로의 지역 복지 공동체를 지향하며 만든 말이다. 여래원(저소득 노인 전문요양시설) 건물안에 노인학대예방센터, 가정봉사원파견센터, 어르신단기보호센터, 치매어르신주간보호센터 등이 있고, 지척에 남구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보현의집(외국인 근로자의 집) 등이 있다. 같은 재단에서 운영 중인 남구시니어클럽과 이 클럽에서 운영하는 행복한나눔가게, 행복한노인일터 등도 걸어서 10분 내외에 있다.
1998년 동인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불교사회복지회는 2003년 여래원을 지으면서 주민들과 큰 갈등을 빚는다.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이 좋을 리 없었다. 그 갈등을 잘 해결한 긍정적 결과가 '담 없는 시설 여래원'을 만들어냈다. 꽃과 나무들, 벤치와 실개천이 여유로워 보이는 여래원 길은 입구와 출구도 없고, 동네 사람들도 자유롭게 지나 다니는 길이 됐다. 시설과 지역사회가 분리되지 않아 보기에 좋았다. '이천복지길'이라는 길 이름을 만들 때도 주민들과 갈등을 빚었다. '복지'라는 말이 부정적 인상을 준다고 생각한 주민들이 반대했는데, 결국 설득 끝에 '이천복지길'이 됐다.
그런 햇빛촌도 요즘은 좀 썰렁하다. 재개발 바람은 여기도 예외가 아니었고, 상당수 이웃들이 집을 팔고 떠났기 때문이다. 골목 골목에 빨간 페인트로 쓴 '철거''이주' 같은 글자가 보였다. 그러나 아직 가시적인 재개발 성과는 없다. 미군 부대 옆에 있어서 아무래도 사업성이 좀 떨어진다. 지역 주민들이 전혀 들어갈 수 없는 '이천동의 섬' 캠프헨리가 햇빛촌을 그나마 지키고 있다니 시대의 역설이다.
2007-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