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 간곳 없이… 묵묵히,오랫동안…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에서 흙먼지를 덮어쓰며 뛰놀던 어린시절의 추억, 나무는 고향의 향기를 이어주는 길잡이다. 삭막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겐 이런 소중한 추억이 없다.
나무를 찾아 떠나는 골목탐사는 여느 때보다 각별하다. 오래된 나무(古木)를 만난다면 커다란 행운이다. 오래된 큰 나무에서는 세월의 풍상과 옛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사람에게는 100년이라는 세월이 긴 시간이지만, 이런 나무에게는 100년, 200년이 예사다.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고 한다.
이제 매연과 옹색한 공간 그리고 무분별한 개발과 치열한 투쟁(?)를 벌이면서도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도심의 고목들을 만나보자.
달성공원에는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나무들이 많다. 어린이 헌장 옆에는 수령 300년을 자랑하며 하늘로 곧게 뻗은 회화나무가 있다. 달성서씨의 세거지였던 달성(현 달성공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고을 사람들이 나라에서 빌린 환곡의 이자를 경감해 주도록 건의해 성사시킨 서침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대구시가 '서침나무'라 명명했다.
이 나무 아래에는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과 이토 히로부미가 대구를 방문한 기념으로 심었다는 가이즈카 향나무가 나란히 있다. 향나무 아래에는 울퉁불퉁한 줄기를 가진 참느릅나무가 있다. 참느릅나무는 느릅나무의 잎보다 가장자리 톱니가 단순한 것이 특징이다.
공원관리사무소 옆 토성에도 수백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회화나무가 줄기의 절반 가까이 외과수술한 흔적을 간직하고도 늠름한 기상을 뽐내고 있다. 다만, 주변의 나무들로 인해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동산병원 동산에는 특별한 나무가 있다. 대구 하면 떠오르는 '사과의 도시'를 있게 한 나무다. 대구 사과나무 효시의 자손이 선교박물관(스윗즈주택) 왼쪽에서 외과수술로 줄기의 상당 부분을 도려낸 채 받침대에 의지하여 힘겹게 서 있다.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인지 발길을 돌리기가 쉽잖다.
병원 옆 제일교회에는 쌀밥을 연상시키는 수령 200년이 넘은 이팝나무 두 그루가 있다. '이팝'은 쌀밥의 다른 말인 '이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보호수로 지정된 이 나무는 5월이면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눈처럼 하얀 꽃을 나무에 가득 피운다. 꽃이 핀 모습이 너무나 화려해 한 번 보면 쉽게 잊을 수 없다. 내년 봄에 동산에 올라 이팝나무 꽃의 향기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지….
동산 아래 계산성당에는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의 그림 속에 나오는 감나무를 만날 수 있다. 10월이면 먹음직스러운 감이 주렁주렁 달려 군침을 삼키게 한다. '이인성나무'라 명명되었다.
국채보상로를 가로질러 경상감영공원 선화당 앞에 다다르면 세월의 질곡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애처롭게 서 있는 회화나무를 만날 수 있다. 주변의 메타세쿼이아도 볼 만하다.
종로초등 교정에는 동학을 세운 최제우가 경상감영의 감옥에 투옥되었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해 '최제우 나무'라 명명된 수령 4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있다. 경상감영공원 뒤 대안동 천리교당 마당에도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다. 또 서성네거리 인도의 회화나무는 매연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학자수' '선비나무'라 불리는 회화나무가 이렇듯 대구 도심에 많은 것은 근대까지 경상감영이 있던 경상도의 중심지에 살았던 지역민들이 선비 기품을 닮은 회화나무를 좋아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천 살이 넘도록 사는 회화나무는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정자나무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다.
경북대 의대와 한국은행 대구지점 사이 인도에는 높이가 10m 정도인 느티나무가 외로이 서있다.
어디에나 나무는 있다. 빌딩과 아파트 숲에도 우리 이웃과 더불어 울고 웃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나무가 있다. 개발과 무관심속에서도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단풍으로 곱게 치장하며, 항상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나무들이 있다. 나무는 살아있다.
2007-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