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城의 위세에 놀라고…순대아줌마의 후한 인심에 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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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로 만들어진 화성의 봉돈.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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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성벽에 쓰여진 공사책임자의 이름(위). 8명의 부자들이 살았던 팔부자 거리. 현재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온데간데 없고 서민들의 궁핍한 삶이 느껴지는 거리로 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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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시장 가는 길목에서 만난 철공소. 이곳에서는 대장장이가 직접 만든 농기구 등을 구입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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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시장 주변 성곽 옆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상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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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처럼 파고드는 11월의 햇살, 볕 실한 날에 고성(古城)의 자취를 살피는 일은 매력적이다. 애써 망막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풍경은 고스란히 그 윤곽을 드러낸다. 성곽의 음각과 양각을 쫓아다니며 옛 흔적들을 읽어내는 것도 흥미롭지만, 보는 이를 숨막히게 하는 고성의 위세를 가슴속에 서둘러 담아내는 일은 또다른 특별함이다.
나지막이 불러본다. 팔달문, 장암문, 서장대, 화홍문, 공심돈, 그리고 봉돈. 귀에 익은 이름 같기도 하고, 난생 처음 듣는 이름 같기도 한, 그것을 만난 건 오래전 국사교과서의 어느 행에서였을까. 아니면 전생의 어떤 귀가 들었던 것이, 만추의 바람에 묻어오는 이명(耳鳴)처럼 문득 되울려오는 것일까?
수원화성을 둘러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시간을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따라 코스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화성행궁을 출발해서 서장대, 연무대, 화서문을 거쳐오는 1시간코스가 지루하지 않아 가장 적당하다. 하지만 큰맘 먹고 구석구석 훑어보고 싶다면 화령전, 정조대왕동상, 장안문을 경유하는 2시간코스나 주변의 전통시장까지 둘러보고 오는 3시간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마저도 싫다면 화성관광열차를 추천한다. 용머리 형상으로 제작해서 아이들이 이용하기에도 제격이다. 열차는 매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 운행한다. 탑승요금도 어른 1천500원, 어린이 700원으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 화홍문 그리고 방화수류정
골목탐사팀은 3시간코스를 택했다. 시작은 화홍문(북수문)이다. 이곳에서 눈여겨 볼 것은 한 왕조의 권세를 증언하는 이끼 묻은 돌이 아니다. 정적속에 깃든 정조시대의 긴장과 역동을 읽어내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보다도 늙은 돌들이 움켜쥐고 있는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1순위다. 특히 지척의 방화수류정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코스. 주변에 풍경을 곁눈질로 감상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반드시 신발을 벗고 올라가보는 것이 좋다. 정조가 화성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 머물렀을 만큼 자부심이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누각에서 올라오는 눅진한 냄새도 이곳만의 매력이다. 십자가형으로 만든 지붕과 서쪽벽면에 새겨진 86개의 십자가 문양에서는 천주교박해시절 다산 정약용의 실학정신을 엿볼 수 있다. 연무대에서는 국궁체험도 할 수 있다. 1회 5발당 1천원, 1인당 모두 4회까지 체험이 가능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코스다.
#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동북공심돈
원형으로 만들어 화성 성곽중 가장 독특한 동북공심돈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공심돈은 성곽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만든 곳으로, 정조는 이곳에 올때마다 신하들에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공심돈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만족했던 시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6·25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다. 군데군데 총알이 비켜간 흔적이 아직도 뚜렷하다. 총성이 가끔 들여오는 듯하다. 인간의 심장을 상징하는 과녁을 만들어놓고 거기를 뚫는 훈련들이 쩌렁쩌렁 성곽을 흔든다. 인간을 대신해서 공심돈 복부 어디쯤 강타한 총알이었겠지만 그것조차 하나의 풍경이다.
비상사태를 알리는 통신시설인 봉돈과 마주쳤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봉수대는 성밖 산봉우리에 있지만 화성의 봉돈은 성내에 있는 점이 매우 이색적이다. 흉터처럼 파인 자리에 5개의 연기구멍이 서있고 사방엔 붉은 깃발이 매달려있다. 11월의 기름기 빠진 주위 풍경들은 방어태세로 서 있는 봉돈의 잔상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 성곽 바깥쪽 수취인 불명의 풍경
성곽안쪽으로 걷는 것이 지루하기 시작하면 성곽의 바깥쪽으로 '외유'를 해도 흥미롭다. 발바닥을 타고 은근히 올라오는 흙길의 쾌감과 발끝에서 다리를 타고 뇌로 올라오는 자극이 상쾌하다. 등 두드려 주는 어떤 위안이 걸음 한 가운데 존재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수취인 불명의 풍광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잎들을 슬며시 내려놓고 검은 빛으로 변해가는 11월의 숲. 그곳에는 사유(思惟)의 리드미컬한 호흡이 숨어있다. 나뭇잎에 감춰졌던 까치집이 검은 해오름처럼 돋아있는 풍경, 하늘의 살을 비집고 들어간 핏줄 같은 실가지들, 푸르고 붉은 색깔들을 뭉뚱거려 놓은 채색화가 아니라, 아주 공들여 그어나간 메마른 묵화처럼 성곽밖의 풍경은 또다른 볼거리다. 지치고 힘들 땐 오래된 나무밑에 놓여 있는 벤치에 잠시 머물러도 좋다. 그곳에서는 꾹꾹 눌려있는 생각들, 칭칭 감겨져있는 꿈들, 뒷걸음만 치던 전망들, 이 모두를 '무장해제' 시킬 수 있다.
# 지동시장 순대 안먹으면 후회
허기가 지기 시작하면 주변의 전통시장으로 가보자. 특히 지동시장 순대를 먹지 않고 지나치면 후회할 일. 맛도 맛이지만 가게주인의 후덕한 인심에 반한다. 수원화성과 연계시키기 위해 성곽형 외벽으로 리모델링한 지동시장의 출입문도 볼만하다. 팔달문시장과 영동시장에서는 왁자지껄한 풍경이 일품이다. 주변에 있는 철공소에서는 아직도 손으로 낫을 만들고 호미를 만드는 대장장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 대장금 촬영지 화성행궁
수원화성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화성행궁. 말 그대로 정조가 행차했을 때 머물렀던 임시 거처다. 화성행궁은 1790년 340칸 규모로 완성됐으나 1796년 화성 축성이 시작되면서 576칸으로 증축되었다. 대부분의 행궁이 100칸 정도로 만들어진 것에 비하면 조선시대 최대규모라 할 만하다. 이곳은 특히 대장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화성행궁 곳곳에는 촬영 당시의 세트장을 그대로 남겨두어 관광코스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도 사극촬영지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화성축성시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기 위해 만든 거중기도 행궁안에서 볼 수 있다.
다음회는 '서울 삼청동 일대'입니다
2007-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