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길바닥에 지도가 그려져있네 정겨운 돌담길 지나 70년대식 가게가 줄줄이
|
|
옛 종친부 건물이 있던 곳에 들어선 국군서울지구병원 돌담. |
| |
|
|
|
'길거리 예술'을 표방하는 삼청동 프로젝트에 의해 돌담 조명 장치가 상자 등으로 덮여 있다 |
| |
|
|
전통놀이인 사방치기가 그려져 있는 삼청동의 한 골목. |
| |
|
|
삼청동에서는 카메라를 든 방문객을 흔히 볼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한 여성이 상품을 벽에 걸어놓고 사진을 찍고 있다. |
| |
|
|
삼청동 한 커피가게 앞에 붙은 가게 안내 그림. 손님을 끌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
| |
|
북카페·한옥 와인 하우스 그리고 돌담길
삼청동 역사 한눈에…정독도서관은 꼭 가보세요
취재팀이 서울 삼청동을 답사한 때는 11월 초였다. 삼청동길 양쪽으로 심어진 은행나무에 노란 가을빛이 절정이어서, '일하러 간' 취재팀의 마음을 엄청 설레게 했다. 그러나 삼청동은 노란 가을빛이 지고 난 후에라도 충분히 운치있고 낭만이 있는 동네다. 인구 1천만명, 유동인구를 합하면 2천만명이 넘는 이 거대한 도시의 도심에 이렇게 여유있게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전통과 현대가 질서정연하게 공존하면서, 인사동만큼 북적대지 않아 슬슬 걷기에 딱이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들어가 잠시 쉴 수 있는 카페가 천지인데다, 카페마다 개성이 독특하다. 마음에 드는 박물관 한두 개 쯤 들르고, 소박한 골동품 가게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하루 쯤 더 묵으면서 옆동네인 북촌, 인사동까지 훑는 것도 강추!
서울역에서 삼청동으로 가려면 1호선을 타고 종로3가에 내려 3호선으로 갈아탄 뒤 안국역에 내린다. 국립민속박물관(경복궁 내) 방향 출구로 나와서 10분 정도 걸으면 삼청동길 입구에 닿는다. 대개 삼청동길하면 국립민속박물관 삼거리에서 삼청터널방면 금융연수원 위쪽의 감사원 삼거리까지를 말한다. 왕복 2차로의 이 도로를 양편에 두고 북카페, 세련된 커피집들, 한옥을 개조한 와인 하우스, 그리고 박물관 등 개성있는 작은 가게들이 모여 있다. 가게 외형도 하나같이 독특해 가게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사진 찍는 이들도 이 동네의 한 풍경을 이룬다.
답사는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 병원에서 사망했다. 조선시대말 이 부지에는 조선시대 종친부 건물이 있었다. 종친부는 국왕 친척들의 인사 문제와 이들간의 다툼 등에 관한 문제를 의논하고 처리하던 조직. 지금은 정독도서관 내에 종친부 건물 일부를 옮겨놓았다.
국군서울지구병원 돌담을 끼고 걸으면서 방향을 풍문여고 쪽으로 옮겨보자. 삼청동 답사의 색다른 묘미 중 하나가 다양한 돌담을 비교하는 것이다. 국군서울지구병원은 1920년대 건물로, 돌담이 마름모꼴로 생겼다. 전문가들은 견치(犬齒) 방식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식 돌담이다.
풍문여고 돌담은 우리 전통 돌담이다. 옆으로 길쭉한 돌을 가장 아래에 쌓아 무게 중심을 잡는다. 담장 높이는 낮지도 높지도 않다. 이 길의 역사와 분위기를 살려준다. 반대편 돌담은 미대사관 직원 숙소 담이다. 높다랗고 육중한 담이다. 취재팀을 안내한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문화재 전문위원)은 "우리 전통 돌담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소통의 공간인 반면, 미대사관 직원 숙소 담은 담이라기보다는 벽"이라고 해석했다.
풍문여고에서 다시 정독도서관 쪽으로 올라오면서 이번엔 담을 보지 말고 발 밑을 보자. 삼청동에서는 길바닥에 지도를 예쁘장하게 그려놓은 곳이 꽤 있다. 그만큼 걷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무표정한 길바닥을 간단한 지도로 정겹게 만들어 놓았다. 정독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아트선재센터처럼 서구식의 세련된 미술관, 미니멀 풍의 절제된 서구식 카페 등의 공간도 있지만, 허름한 라면집과 세탁소 등 70년대 향수를 불러 일으킬 만한 가게들도 아직 남아 있다. 그 조화가 매우 이채롭다.
걸음을 빨리해 정독도서관에 닿는다. 삼청동에 왔다면 카페엔 못 가더라도 정독도서관은 꼭 들러야 한다. 삼청동의 가파른 역사를 보여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당초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인데 경기고가 강남으로 이사하면서 서울시가 1977년부터 도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조선 말기 이 학교 터는 개화파 관료들의 거주지였다. 처음엔 김옥균의 주택지였는데 그 뒤 서재필과 박제순의 집이 합쳐지면서 넓은 부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갑신정변(1884년)이 실패하고 개화파가 일본으로 망명하자 조선 정부는 이들 소유의 집을 몰수하고, 1900년 우리나라 최초의 정규 중등교육기관인 관립중학교를 이곳에 설립했다. 1938년 학교 건물을 새로 세우고 학교명을 경기공립중학교로 바꾸었고, 그게 경기고가 됐다. 현재 정독도서관이 된 이 건물은 철근콘크리트구조에 벽돌로 벽을 쌓아올린 3층 건물로 스팀난방 방식을 도입한 최초의 학교 건축물로, 서울시 등록문화재 2호이다.
급진 개화파 거주지에서 근대 교육의 중심으로, 그리고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들이 다니는 학교가 이제는 지역 주민들의 문화 공간이자 산책 공간이 되었다. 참, 앞서 언급한 조선 종친부 건물도 꼭 보고 가자. 조선 후기 관아건물로는 서울에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건물 중 하나라고 한다.
정독도서관에서 나와서는 어디로든 가도 좋다. 큰 길보다는 골목길이 더 재미있다. 북촌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에는 개성있는 액세서리나 옷가지를 파는 디자이너 숍들이 군데군데서 얼굴을 내민다.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카페들은 이름부터 인테리어까지 모두들 독특하다. 골목은 층계길로 이어지기도 하고 축대길로 연결되기도 한다. 골목길에 들어앉은 가게도 가게지만, 골목길 자체도 각각 개성이 있다.
답사 마지막 장소는 한국금융연수원. 조경이 잘 된 연수원으로 들어가 안쪽으로 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무기공장이던 번사창(飜沙廠)을 만날 수 있다. 중국과 서양의 혼합 건축양식이 이채롭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돼 있다.
너무 열심히 돌아다녀 피곤해져서 지하철역까지 걷기가 힘들다면 금융연수원에서 마을버스 11번을 타면 서울역까지 간다.
인터뷰-삼청새마을금고 부이사장 겸 삼청동번영회 회장 이건선씨
"개발 못하게 한 것이 오히려 동네 살렸죠…덕분에 관광객도 많이 늘고…"
정독도서관 뒤편 삼청새마을금고에서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건선씨(사진)는 삼청동번영회 회장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생일 때부터 삼청동에서 산 것이 지금까지다. 55년째 이 동네에 살면서 동네를 더 잘 가꾸기 위한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으니, 그에게 삼청동은 운명이자 인생인 셈이다.
"이 동네 근처에 청와대, 총리공관 등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개발 제한이 돼 왔던 겁니다. 개발 제한이 오히려 이 동네를 살려놓은 거지요. 저도 이 동네가 워낙 좋으니까 한평생을 살았지요."
취재팀이 방문했을 때는 마침 '삼청로 문화축제'(11월3~18일)가 열리고 있었다. "축제가 올해로 3년째입니다. 우리 번영회에서도 실무를 맡았지요. 축제를 만들었을 때보다 조금 앞서 5년 전부터 문화거리로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 내국인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이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늘었어요."
그는 인사동의 포화 덕분에 옆 동네인 삼청동 일대로 화랑, 골동품 가게 등이 하나둘 넘어왔고, 문화거리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여러 카페들이 생겼다고 했다. "옛 것을 보존하고 있는 동네에 현대적인 게 막 밀려들어와 조화를 이룬 동네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이제는 더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 장소가 없을 정도입니다. '현대'가 밀려오더라도 삼청동 고유의 분위기가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 번영회가 노력할 것입니다."
2007-11-29 |